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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3,750억 원짜리 인수가 실제로 값을 매긴 것? Rhode가 판 것은 헤일리 비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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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시작된 Rhode, 3년만에 매각

 

2025년 5월 28일, 미국 뷰티 기업 e.l.f. Beauty가 헤일리 비버의 스킨케어 브랜드 로드(Rhode)를 10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3,75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로드는 2022년에 설립됐고, 판매하는 제품은 단 10개이며, 2025년 3월까지 12개월간의 순매출은 2억 1,200만 달러였습니다. 매장 하나 없이, 오직 온라인으로만 파는 회사입니다.

e.l.f.는 이 회사에 8억 달러를 현금과 주식으로 즉시 지급하고, 인수 후 3년간 로드의 성과에 따라 최대 2억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헤일리 비버는 이 소식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으로 직접 전했고, 매각 이후에도 로드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겸 혁신 총괄로 남았습니다.

많은 매체가 이 딜을 “셀럽이 브랜드를 팔아 대박 났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약은, 정확히 e.l.f.가 왜 이 돈을 지불했는지를 설명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헤일리 비버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

 

e.l.f.가 인수한 것이 단지 ‘헤일리 비버’라는 셀럽 브랜드였다면, 이 거래는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은 계약서에 자산처럼 고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뷰티 데이터 기업 CreatorIQ의 분석은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로드를 둘러싼 온라인 콘텐츠, 즉 소비자와 창작자가 자발적으로 생산한 미디어 콘텐츠 가운데 헤일리의 이름이 직접 언급된 비율은 15%에 불과했고, 그녀 자신의 게시물 가운데서도 로드를 언급한 비율은 30%에 머물렀습니다.

바꿔 말하면, 로드에 대한 대화의 85%는 헤일리 없이도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설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헤일리 비버는 처음부터 그 유명한 이름 ‘Bieber'를 사용해 '비버 뷰티’ 같은 이름을 쓰지 못했습니다. 남편 저스틴 비버가 2010년에 이미 그 이름을 상표 등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미들 네임, Rhode를 택했습니다. 결혼한 이름도, 유명한 성도 아닌 이름. 사소해 보이는 이 선택이 훗날 이 회사가 그녀라는 사람으로부터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분리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e.l.f.가 1조 3,750억 원을 주고 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유명인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 없이도 계속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었습니다.

 

다섯가지 핵심 결정

 

그렇다면 그 시스템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선택과 집중입니다. 로드는 3년 동안 제품을 딱 10개로 제한했습니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 스와스모어 대학)는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소비자의 만족도와 결정력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로드는 이 원리를 정확하게 활용했습니다. 제품 수를 줄이자 마케팅이 흩어지지 않고 한 제품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매 출시가 ‘이벤트’가 됐습니다. e.l.f. CEO 타랑 아민은 인수 발표에서, 3년간 단 10개 제품으로 순매출 2억 1,200만 달러를 만들어낸 것을 인수 이유로 직접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Lemontini Lip Tint와 폼케이스, 타월 & 파우치 세트

둘째는 정교한 감각 설계입니다. 로드는 립글로스를 자석으로 붙일 수 있는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었고, 이 제품 하나만으로도 830만 달러 규모의 온라인 노출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광고비는 들지 않았습니다. 시나몬 롤 향이 나는 립 틴트를 출시할 때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실제 시나몬 롤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찍고 공유하고 싶어지도록 제품 개발 단계부터 반응을 설계한 사례였습니다.

셋째는 창업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계속 확장되는 구조를 만든 점입니다. 로드는 2024년 한 해 동안 스킨케어 브랜드 가운데 전년 대비 온라인 노출 증가율 1위를 기록했고, 그 가치만 2억 4,8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유료 광고 없이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헤일리 비버 한 사람의 게시물에 기대는 대신, 수많은 창작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퍼뜨리는 생태계가 작동한 것입니다.

넷째는, 제품보다 먼저 만든 것이 신뢰였다는 점입니다. 헤일리 비버는 로드를 시작하기 6년 전,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피부과 의사도 화장품 개발자도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남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프로듀서, 마이클 D. 라트너였습니다. 두 사람은 2020년부터 그녀의 유튜브 채널을 '하나의 방송국처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침실에 친구들을 초대해 스킨케어를 이야기하는 〈Who's in My Bathroom?〉 시리즈에는 켄달 제너, 기네스 팰트로 같은 인물들이 출연했고, 거기서 오간 대화는 그대로 소비자 조사가 된 셈입니다. 로드가 2022년 6월에 문을 열기까지, 이 채널은 수억 회의 조회수를 쌓았습니다. 라트너의 표현을 빌리면, "제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완벽을 향한 반복과 실패를 감추지 않는 태도입니다. 립 트리트먼트 하나를 내놓기까지 로드는 제형을 열다섯 번 넘게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초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부 소비자에게 배송된 립 트리트먼트가 온도 변화로 결정화되어 거친 질감으로 변한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을 때, 헤일리 비버는 이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조사해 설명하는 영상을 직접 촬영해 올렸고, 제형을 다시 수정해 내놓았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신뢰라는 것이 완벽함이 아니라 실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매각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수 발표로부터 몇 달 뒤, 로드는 세포라 북미와 영국, 그리고 호주·뉴질랜드의 메카(Mecca)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브랜드 데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26 회계연도 순매출은 2억 6,000만~2억 6,5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수 시점의 숫자가 정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시스템은 선택과 집중, 감각의 설계, 탈중심화된 확산, 제품보다 먼저 쌓은 신뢰, 그리고 실수를 숨기지 않는 태도. 어느 하나도 헤일리 비버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반복 가능하도록 설계해 둔 시스템이였습니다.

 

내가 세상에 내놓는 무언가의 "가치의 구조"

 

그러니까 e.l.f.가 지불한 1조 3,750억 원은 헤일리 비버라는 사람의 값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없어도 반복될 수 있는 구조의 값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브랜드의 얼굴로 남아 있지만, 회사가 실제로 팔린 것은 얼굴이 아니라 얼굴 없이도 무너지지 않는 사업의 뼈대였습니다. 수많은 셀럽 브랜드가 이 벽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빠지는 순간 브랜드도 함께 꺼지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로드는 정반대로 설계됐습니다. 얼굴은 남되, 얼굴에 의존하지 않도록.

이건 사업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매일 붙잡고 있는 회사, 커리어, 관계, 콘텐츠, 그리고 만들어 가고 있는 무언가를 떠올려 보세요. 오늘 당장 당신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계속 존재할까요, 아니면 당신과 함께 사라질까요. 당신이 지금 쌓고 있는 것은, 당신이 떠난 뒤에도 팔릴 수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붙잡고 있어야만 겨우 서 있는 것입니까.

 

Editor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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