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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퍼널을 여행하는 마케터를 위한 위키피디아

위픽에서 마케팅 위키를 시작한 이유

 

나의 메모 상자

나는 산만하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보고, 머릿속에 주제와 질문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곤 한다. 돌아서면 잊는다. 그래서 메모를 한다. 일종의 링크를 남겨놓는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은 포스트잇 메모를 건조기에서 발견하는 일도 자주 있다. 지금은 주로 아이폰 메모장에 쓴다.

영화 메멘토 캡쳐. 몸에 메모로 문신한 금발, 수염자국이 있는 백인 남성이 원탁 테이블 앞에서 서류와 팔의 문신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메멘토’. 사진 네이버영화

 

메모들은 모아두면 서로 끌어 당긴다. 어느 날 우연히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나가거나, 오래전에 풀지 못했던 문제의 논거가 발견되곤 한다. 가끔 일어나는 행운이 아니다. 뭔가 있다. 자주 그렇다. 그래서 메모를 더 열심히 했다. 메모 자체가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메모와 메모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기고, 그 연결이 답이 되거나 새로운 질문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걸 그 유명한 '인사이트'라고 하더라.

제너럴리스트로 살아 오면서 ‘에디톨로지'라고 말 붙인 개념은 내가 추앙하는 방식이 되었다. 모든 새로운 것은 편집에서 나온다. 라는 것. 거기서 제텔카스텐이라는 방법론을 알게 됐다. "메모를 편집하는 것." 무릎을 탁 쳤다. 즉시 매뉴얼과 실천가들의 하우투를 찾아 보고 옵시디언 같은 걸 설치했다.

*옵시디언: 개인의 지식 관리 및 메모를 위해 널리 사용되는 디지털 노트 필기 소프트웨어

*제텔카스트: 메모 상자 라는 독일어

AI 시대의 제텔카스텐

제텔카스텐 설명

제텔카스텐은 운동 같다. 시작은 쉬운데 꾸준히 오래 하는게 어렵다. 제텔카스텐은 꾸준히 오래동안 메모들을 연결하는 것이고, 효과는 한참 지난 후 ‘발견‘되기 때문이다. 여러번 시도했는데 매번 실패했다.

제텔카스텐을 시도하면서 확실히 알게됐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품질 좋은 정보가 너무 많고, 매체와 채널이 너무 많다. 인풋은 압도적인데 연결이 충분히 따라갈 수 없다.

신간서적, 뉴스레터, 블로그, 단톡방, 유튜브, 링크드인, 팟캐스트.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건 맥락이 중요하고 어떤 건 당장 내 일에 응용 할 수 있다. 그리고 쓰레기가 섞여있다. 연결은 고사하고 밀려온 정보를 정제하고 선택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결국 내가 택한 정보는 빅테크 알고리즘이거나 랜덤이다.

AI가 일상이 되면서부터, 매일 태풍이 분다. 매주 새 모델이 나오고, 매달 개념이 바뀐다. 비범함이 평범함이 된다. 전제가 흔들린다.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의 LLM Wiki

카파시(Andrej Karpathy)의 X 게시글을 발견했다. LLM Wiki.

*LLM(대규모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의 약자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인공지능(AI) 기술

대부분의 사람들은 AI를 고도화된 검색엔진으로 쓰는 것 같다. 웹검색을 문장으로 하거나, 자료 한 무더기를 업로드해 두고, 질문이 들어오면 거기서 관련 조각을 찾아 답을 만들도록 시킨다. 사실 이정도도 놀라울 지경…그런데 같은 질문을 나중에 다시하면, 다시 일한다. 축적되지 않는다. 새로운 연결이 어렵다.

LLM Wiki
LLM Wiki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의 제안은 자료와 사람 사이에 위키를 끼우는 것이다. 새 자료가 들어오면, AI가 일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색인에 넣는 게 아니라 자료를 읽고, 기존 위키에 통합한다. 모순이 있으면 표시하고, 어디가 새로 업데이트 되었는지 기록한다. 인풋은 계속 추가되고 매일 연결된다.

이 위키야 말로 제텔카스텐으로 도출해 내는 메모 연결의 결과다. 원래 내가 해야했던 걸 AI가 돕는다. 나는 무엇을 읽을지 고르고, 무엇을 물을지를 정한다. 정리·교차참조·기록은 LLM의 일이다. 나는 발견하고 가끔 삐딱해 지면 된다. 우리는 이제 사람이 잘하는 일에 집중한다.

AI는 나의 제텔카스텐을 완성시켰다. 제텔카스텐의 핵심은 메모들을 다른 메모와 연결하는 일이고, 그 연결의 누적이 결국 창의적인 두뇌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메모는 쌓았는데 연결에 실패했지만, AI는 나보다 더 잘 메모하고 연결한다.

 

개인 위키말고 마케터들의 위키로 만들면 어떨까?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고안한 LLM 위키는 어디까지나 개인을 위한 도구다.

나는 생각했다. 위픽레터에 이 위키를 장착해서 마케터들이 함께 쓸수 있는 두뇌로 만들자.

위키는 본래 함께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누군가 추가하고, 누군가 고치고, 누군가 출처를 단다. 사람 한 명의 두뇌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가 누적의 결과로 나온다. 집단지성이다.

이 LLM위키는 그 작업의 시작을 AI에게 맡긴다. 살아 움직이는 결과물을 모든 마케터들에게 공개한다.

 

위픽 마케팅 위키
위픽 마케팅 위키

 

또 한 가지, 위키는 매일 다시 쓰여지는 글이다. 멈춰 있는 책이 아니라 매일 성장하는 내용이 있는 콘텐츠.

DeepWiki는 GitHub에 올라온 코드 저장소의 문서들을 LLM이 위키로 정리해 두고, 사용자는 자연어로 질문한다. "이 라이브러리는 어떤 인증을 쓰나요?" "이 함수는 어디서 호출되나요?" 소스코드 전체를 다 뒤지지 않아도 위키가 답을 갖고 있다. 코드(자료)와 나 사이에 위키 한 겹이 올라간 셈이다.

코드가 위키가 될 수 있다면, 마케팅 도메인도 위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설에서 위픽 마케팅 위키를 시작했다.

 

매일 120개의 새로운 소스

지금 위픽 마케팅 위키는 120개 이상의 소스를 찾는다.

위픽레터를 포함해서 한국어로 된 각종 웹사이트, 영상, 단톡방, X, Linkedin 30여 곳. 영어 콘텐츠 60곳. 일본 마케팅 매체 30곳. 마케터가 평소 들여다보는 그곳을 거의 다 포함한다. 하루에 수백 건.

똑같이 리바이벌 하는게 아니다. 검증하고 분해해서 합성한다. 모든 정보출처는 원문으로 링크되어 있다.

 

67개의 핵심 마케팅 주제 페이지

이 자료들이 LLM을 거쳐 위키 페이지에 분배된다. 오늘 기준 67개의 페이지가 있다.

페이지의 주제들은 소스 정보에 따라 분류되고 합성된다. "2026 마케팅 트렌드", "에이전틱 커머스", "AI 콘텐츠 생성", "브랜드 스토리텔링", "팝업 스토어 기획". 새로운 이슈와 트렌드, 색인으로 범주화 할 수 없는 주제들. 여러 자료를 합쳐야 나오는 주제들.

한 페이지엔 정의·맥락·국내외 사례·관련 개념·원본 출처 링크가 묶여 있다. 누군가가 다섯 개의 블로그를 읽고 한 페이지로 정리해 둔 상태인 셈이다.

페이지는 매일 복리로 성장한다. 새 자료가 도착하면 LLM이 읽고 기존 페이지를 갱신한다. 어떤 트렌드가 강해졌는지, 어떤 주장이 새로 반박됐는지가 그날그날 반영된다. 한 페이지를 두 달 뒤에 다시 열어보면 같은 주제인데 내용이 더 깊어져 있다.

또 한 가지. 위키엔 글로벌 기준과 국내 현실이 한 페이지에 같이 들어 있다. 영어권에서 자리 잡은 개념이 한국에선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일본 사례는 또 어떤 결로 다른지 같은 페이지 안에서 비교된다.

 

검색이 아니다. 통찰도 가능 예측도 가능

"UCP가 뭐예요" 같은 질문은 구글로 찾으면 된다. 위키의 진짜 가치는 함께 해결하기 어려웠던 두가지 종류의 문제에서 나온다.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할 때 + 단기적인 예측도 필요할 때도.

 

깊이 있는 통찰

"왜 지금 에이전틱 커머스가 뜨는가." 이런 질문엔 블로그 한 편이 답하지 못한다. 답하려면 1년 전 챗GPT가 처음 쇼핑 플러그인을 붙였을 때부터, 그 사이 OpenAI·Anthropic·Google이 각자 어떤 API를 공개 했는지, 한국에선 어떤 커머스 회사가 처음 실험했는지, 어떤 예상이 틀렸고 어떤 가설이 살아남았는지, 시간 축의 흐름이 한 페이지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건 마치 지질학자가 지층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지층을 한 단면만 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이 누적된 단면을 옆에서 봐야 비로소 "이때 화산이 폭발했고, 그 위에 강이 흘렀구나" 같은 분석이 가능해진다. 마케팅 트렌드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한 글만 봐선 왜 이 흐름이 시작됐는지 모른다. 위키는 매일 자료를 누적하면서 그 지층을 만든다.

지층. 출처:https://picryl.com/
지층. 출처:https://picryl.com/

 

슬랙에서 사수가 물어온다. "에이전틱 커머스가 뭔가요?, 우리는 준비가 됐나요?" 검색하면 영문 블로그 다섯 개가 나온다. 다 읽기 전에 답해야 한다. 위키 페이지를 보면 글로벌 흐름·국내 적용 가능성·한계점·시간 축까지 정리된 톤으로 회신할 수 있다. "이건 일시적 트렌드가 아닙니다, 18개월간 이렇게 흘러왔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지층 덕분이다.

 

예측은 이렇게 된다.

"그래서 다음 분기에 뭘 준비해야 하나" 같은 질문. 정확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정량적인 신호를 캐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단어가 최근 몇 주 사이 빈도를 올렸는지, 어떤 개념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어떤 영어권 케이스가 곧 국내 사례로 번질지, 이런걸 잘 잡으려면 매일 100건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 분기 트렌드는 늘 뒤늦게 알게 된다. 보통 두세 달쯤 지나서, 모두가 그 단어를 쓰기 시작했을 때 깨닫는다. 그때는 이미 늦다.

마케팅 위키는 그 간극을 줄여준다. 한 사람이 읽지 못한 양을 매일 추가되는 124개 소스에서 매일 LLM이 읽고, 빈도가 올라간 단어를, 새로 들어오기 시작한 개념을 정리해 둔다. 마케터는 그 신호를 이용해 가설을 세우고, 다음 분기를 기획할 수 있다.

 

다시, 메모 상자

건조기에서 찾은 구겨진 포스트잇, 아이폰 메모장의 흩어진 문장들. 내가 놓쳤던 연결을 AI가 다시 잇는다.
이번엔 내 제텔카스텐이 아니다.

마케터 누구든 와서 열어볼 수 있고, 매일 매일 자라날 것이다.

나는 계속 산만하게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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