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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 틀렸다면, 나는 그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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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바꾼다는 것


올해 4월, 케임브리지의 한 진화고생물학자가 한 인터뷰에서 자기 일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을 여러 번 바꿔 왔고, 그게 어떤 사람들을 늘 기쁘게 하진 않았습니다.”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Simon Conway Morris). 캄브리아기 폭발과 버제스 셰일(Burgess Shale) 화석 연구로 한 시대를 연 학자가 한 말입니다.

Simon Conway Morris
Simon Conway Morris

그가 처음 버제스 셰일의 5억 년 전 생물들을 파냈을 때, 화석 하나가 너무 기괴해서 이름을 할루키게니아(Hallucinigenia, ‘환각’에서 따온 이름)라고 붙였습니다. 꿈에서나 볼 법한 모양이라는 뜻이었죠. 당대 최고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발견을 “생명은 한 번 더 돌리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유명한 주장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콘웨이 모리스는 이후 그 결론을 자기 손으로 뒤집습니다. 알고 보니 할루키게니아는 그렇게 외계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생물 무리 안에 깔끔하게 들어맞았죠.

 

수렴진화

 

여기서 멈추면 ‘학자가 실수를 정정했다’는 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진짜 통찰은 조금 다른 방향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콘웨이 모리스의 대표 이론은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입니다. 출발점이 전혀 다른 생물들이 결국 거의 똑같은 해답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그가 즐겨 드는 예가 눈입니다. 인간의 눈과 문어의 눈은 조상이 완전히 다른데도 거의 동일한 ‘카메라 눈’ 구조로 각각 진화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그게 빛으로 상을 맺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결론은 단호합니다. “생명이 쓸 수 있는 트릭의 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적다.”

그러니까 그의 학문은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세상엔 정답이 정해져 있고, 길은 아무리 멀리 돌아도 결국 그 정답으로 수렴한다는 것.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대체로 이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어딘가에 검증된 베스트 프랙티스가 있고, 그걸 찾아내 충실히 실행하면 된다는 것. 빠르게 가는 사람은 정답을 먼저 찾은 사람이고, 헤매는 사람은 아직 그 정답에 닿지 못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정답으로 수렴한다고 평생을 증명한 바로 그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의 결론만큼은 한자리에 두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아엎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바깥 세계엔 정답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면서, 그 정답을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본 자신은 왜 그토록 자주 틀렸을까요. 더 이상한 건, 그가 이 사실을 감추기는커녕 자기 입으로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모순의 공존

 

그 모순이 사실은 모순이 아닙니다. 콘웨이 모리스가 보여주는 건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깥 세계의 구조는 단단하게 정해져 있지만(수렴), 그 구조를 알아내는 우리 머릿속의 지도는 늘 임시적이고 자주 틀린다(생각 바꾸기). 진짜 전문성은 ‘정답을 안다’가 아니라, ‘내 현재의 답이 임시 가설임을 안다’에 있습니다.

심리학에 이걸 정확히 짚은 개념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과학자처럼 굴라(think like a scientist)”고 말합니다. 과학자는 자기 가설에 애정을 쏟되, 데이터가 반대하면 가설을 버립니다. 가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의견을 ‘소유물’처럼 다룹니다. 그래서 의견이 공격당하면 자기가 공격당한 것처럼 방어합니다. 그랜트가 든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블랙베리를 만든 마이크 라자리디스입니다. 물리적 키보드라는 자기 ‘정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터치스크린이라는 새 데이터가 도착했을 때 가설을 갈아엎지 못했습니다. 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확신이 너무 강해서 망한 경우입니다.

콘웨이 모리스가 위대한 건 답을 많이 맞혀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결론(할루키게니아=괴물, 진화=순전한 우연)을, 새 증거 앞에서 가장 먼저 폐기한 사람이라서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자세가 “어떤 사람들을 기쁘게 하진 않았다”고 인정합니다. 당연합니다. 한 입장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그 입장을 버리면, 추종자도 비판자도 모두 머리가 복잡해지니까요. 생각을 바꾸는 데는 사회적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안 바꿉니다. 틀린 채로 유명한 게, 맞기 위해 흔들리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입니다.

 

몰입 상승

 

일이나 사업도 똑같습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그 한 가지 믿음, 우리만의 가격 정책, 우리만의 채용 기준, '원래 이 바닥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감각, 그것이 바로 다음 단계에서 우리를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믿음은 보통 한때 우리를 살렸던 믿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버리기 어렵습니다. 효과가 없었던 전략이라면 미련 없이 버렸을 텐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성공시킨 전략은 일종의 부적이 됩니다. "이게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문장은 감사의 표현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자기 최면이 되는 거죠.

심리학자들은 이를 '몰입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투입한 것이 아까워서, 틀렸다는 신호가 쌓여도 오히려 더 깊이 발을 들이는 현상이죠. 콘웨이 모리스가 우리에게 남긴 건 정반대의 태도입니다.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결론을 새 증거 앞에서 가장 먼저 내려놓았고, 그 일이 "어떤 사람들을 기쁘게 하진 않았다"는 사실까지 담담히 인정했습니다. 그에게 생각을 바꾸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정답이 바깥에 단단히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오히려 자기 안의 임시 답안은 언제든 찢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죠.

 

깊은 확신은 오히려 유연한 겸손을 가능케 하는 법

 

확신과 겸손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깊은 확신이 오히려 유연한 겸손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오늘 글의 마지막 질문은 우리 자신을 향합니다. 우리가 지금 붙들고 있는 그 믿음은, 여전히 지금 이 시대, 시장의 데이터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입니까. 아니면 언젠가 한 번 맞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검증하지 않게 된, 박제된 정답입니까?

당신을 지금의 자리로 데려온 그 '한 가지 확신'을, 만약 내일 반대되는 데이터나 사실이 발견된다면, 당신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확신은 이제 당신의 의견이 아니라, 당신의 딱딱한 정체성이 되어 버렸나요? 이번주 시간이 되시면 한번  싱크 어게인 (Think Again)》 이번 편의 핵심, ‘확신을 철회하는 능력’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 콘웨이 모리스의 ‘생각 바꾸기’에 학문적 언어를 붙여 줍니다.

 

Editor H.

 

📚 싱크 어게인 (Think Again)》 애덤 그랜트 | 이번 편의 핵심, ‘확신을 철회하는 능력’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 콘웨이 모리스의 ‘생각 바꾸기’에 학문적 언어를 붙여 줍니다.

🎙️ 팟캐스트: “Simon Conway Morris” 편, Sean Carroll’s Mindscape | 콘웨이 모리스가 직접 수렴진화와 인간의 고유함을 말하는 회. 이번 편 화자의 목소리를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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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Good Question OGQ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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