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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출원 전 샘플 제공, NDA만으론 안 됩니다

영업팀이 "고객사가 샘플 빨리 달라고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대표는 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일정이 급하니 시제품과 스펙시트를 먼저 보내고, 특허는 다음 분기에 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허출원 전 샘플 제공은 영업 일정 문제가 아니라, 권리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가장 뼈아픈 시나리오는 신규성 상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내가 보낸 조성표를 받은 거래처가, 그 자료를 사내에서 검토하다 비슷한 조성으로 청구항 구조만 바꿔 먼저 출원해버리는 경우입니다. 내가 만든 기술인데 출원일은 상대가 먼저 찍습니다. 이때 내게 남는 카드는 입증이 어려운 영업비밀 분쟁뿐입니다.

 

거래처가 내 기술로 먼저 출원하는 메커니즘

왜 이런 일이 가능한지부터 짚어야 대응이 보입니다. 샘플은 "제품"만 가는 것이 아니라 조성·함량·공정조건·물성이라는 "재현 가능한 기술 정보"가 함께 갑니다. 평가 역량이 있는 대기업 연구소라면, 받은 스펙시트만으로도 기술을 재현하고 변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창업자가 가장 자주 무너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NDA를 받았으니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영업비밀과 특허 신규성은 완전히 다른 잣대로 판단됩니다. NDA로 영업비밀은 지켜져도, 거래처가 받은 정보를 토대로 자기 명의로 출원하면 출원일 경쟁에서는 먼저 찍은 쪽이 유리해집니다. 즉 NDA는 "유출을 다툴 권리"를 줄 뿐, "출원일을 먼저 확보해주지는" 않습니다.

 

변리사로서 제가 발송을 보류시키는 기준

상담에서 "이 샘플, 지금 보내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세 가지를 봅니다. 일반론이 아니라, 실제로 발송 여부를 판단할 때 쓰는 기준입니다.

재현 가능성: 스펙시트만으로 거래처가 기술을 재현할 수 있으면 위험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조성·비율·제조조건이 다 적혀 있으면 사실상 설계도를 넘기는 것입니다.

상대의 출원 역량: 자체 특허팀과 연구소를 가진 대기업·해외기업일수록 회피설계 출원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자료라도 받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위험이 달라집니다.

출원일 확보 여부: 이게 핵심입니다. 출원일이 이미 찍혀 있으면 나머지는 보조 장치이고, 안 찍혀 있으면 NDA가 아무리 두꺼워도 저는 발송을 보류하라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중 두 개 이상이 위험 쪽이면, 영업 일정을 며칠 미루더라도 가출원부터 진행하는 것이 거의 항상 더 쌉니다. 출원 비용은 정해져 있지만, 권리를 잃은 비용은 회사의 핵심 자산 전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계별 대응 — 가장 안전한 순서

상황은 결국 세 가지로 나뉩니다. 안전한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계상황핵심 안전장치
A. 아직 안 보냄 (가장 안전)발송 전가출원이라도 먼저 진행해 출원일 확보, 1년 내 우선권 주장으로 정규출원
B. 먼저 보내야만 함발송 임박서면 NDA(범위·기간·손해배상 명시), 자료에 Confidential 표기, 핵심 조성·비율·제조조건 마스킹 후 최소 정보만 발송
C. 이미 보냄발송 완료본인 공개일로부터 12개월 내 출원 시 공지예외주장, 단 출원서 기재 + 출원일로부터 30일 내 증명서류 제출

A단계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가출원 명세서에 기재되지 않은 데이터는 우선일을 소급받지 못하므로, 가출원이라도 핵심 조성·실시예·효과까지 담아야 실효가 있습니다. C단계의 공지예외주장은 절차를 한 번 놓치면 제도 자체를 못 쓰고, 해외출원은 국가별로 요건이 달라 일부 국가에서는 권리화가 막힐 수 있습니다.

체크리스트로 끝나지 않는 지점 — 가출원 명세서

발송 전 점검은 창업자가 직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가출원이라도 "출원일만 찍힌 가출원"과 "권리범위까지 지켜주는 가출원"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풀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가출원을 급하게 출원번호만 받아두면, 정작 정규출원 때 핵심 데이터가 명세서에 없어 우선일을 소급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화학·소재·바이오 분야는 특히 조성 범위, 실시예 수, 효과 데이터, 청구항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같은 기술도 권리범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거래처가 청구항 구조만 바꿔 회피설계 출원을 시도할 때, 이 설계의 정교함이 방어 논리의 차이를 만듭니다. 이 부분은 발송 일정에 쫓겨 체크리스트만으로 메우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투자 실사 테이블에서 반드시 나오는 질문

이 문제가 단순한 영업 실수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리즈 A 실사에 들어가면 투자자 측 변리사는 핵심 특허의 출원일과 공개 이력을 봅니다. "이 기술의 출원일이 첫 샘플 발송일보다 앞서는가"는 자주 등장하는 확인 항목입니다.

만약 샘플이 출원보다 먼저 나갔고 NDA·발송 기록도 정리돼 있지 않다면, 실사에서 권리 귀속에 대한 방어 논리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발송 전에 출원일을 확보하고 NDA·송장·수령 확인서를 묶어두면, 같은 질문에도 1분 안에 근거를 내밀 수 있습니다. 정부과제나 공동연구가 얽혀 있다면 발명자 기여 자료까지 함께 정리해 두는 것이 실사에서 훨씬 단단한 논리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특허출원 전 샘플 제공, NDA만 받으면 괜찮은가요?
NDA가 있으면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상대에게 전달된 것으로 봐서 신규성 상실 위험은 줄어듭니다. 다만 위반 입증 책임은 보낸 쪽에 있고, 영업비밀과 특허 신규성은 별개로 판단됩니다. NDA는 유출을 다툴 권리를 줄 뿐 출원일을 확보해주지는 않으므로, 출원 후 발송이 가장 안전합니다.

Q. 이미 샘플을 보냈는데 특허출원이 가능할까요?
한국에서는 본인 공개일로부터 12개월 이내에 출원하면 공지예외주장으로 그 공개를 신규성 판단에서 제외받을 수 있습니다. 단, 출원서에 그 취지를 적고 출원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효력이 생깁니다. 해외출원은 국가별 규정이 달라 별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Q. 거래처가 내 자료로 먼저 출원하면 막을 수 있나요?
정면으로 막기는 쉽지 않습니다. 출원일을 먼저 확보하지 못했다면 영업비밀 침해나 무권리자 출원을 다투게 되는데, 둘 다 입증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사후 분쟁보다 발송 전 출원일 확보가 비용 면에서 비교가 안 될 만큼 유리합니다.

 

[체크리스트]

특허출원(가출원 포함)이 완료되어 출원번호가 확보되어 있는가

가출원이라면 핵심 조성·실시예·효과까지 명세서에 들어가 있는가

받는 거래처가 자체 출원 역량(특허팀·연구소)을 가진 곳인가

스펙시트만으로 거래처가 기술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가

서면 NDA에 비밀유지 범위·기간·손해배상 조항이 명시되어 있는가

발송 기록, 송장, 수령 확인서가 보관되어 있는가

해외 거래처라면 해당 국가의 신규성·공지예외 규정을 확인했는가

이 점검은 영업 일정 며칠을 미루는 비용과, 시리즈 A 실사 테이블에서 권리 귀속을 설명하지 못하는 비용을 맞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샘플이 문을 나서기 전, 지금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샘플이나 평가용 자료 발송이 임박했다면, 발송 전에 현재 출원일·NDA 조항·스펙시트 노출 항목 세 가지를 1페이지로 먼저 정리해 두면 어느 카드가 비어 있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특히 가출원 명세서에 무엇이 들어가야 권리범위가 지켜지는지는, 그 한 장을 들고 점검할 때 가장 빠르게 드러납니다.

 

[저자 소개]

석종헌 변리사 | 특허법인 린 파트너 (15년 차 바이오·화학 전문)

고려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지난 15년간 바이오, 제약, 소재 스타트업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습니다. 단순한 등록을 넘어 정부 과제 대응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명세서 설계를 전문으로 합니다.

📧 기술 검토 및 강연 관련 문의: patentseok@naver.com

📞 010-6663-8572

🔗 [IP 실무 노트] 특허출원 전 샘플 제공, 고객사에 보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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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종헌 변리사 특허법인 린 · 기타

15년차 바이오·의약학·화학 전문 변리사 석종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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