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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받은 상표, 쓰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 한국 ‘티르리르’ 불사용 취소 사건과 미국 Maple Leaf


브랜드를 만드는 기업들이 자주 놓치는 지점이 있다. 상표는 출원하고 등록받았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권리가 아니다. 등록증은 출발점에 가깝다. 상표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그 표시를 브랜드로 인식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최근 한국 대법원의 불사용 취소 관련 판결과 미국 상표심판원의 치즈 라벨 사건은 이 단순한 원칙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여준다. 하나는 “등록받고도 쓰지 않으면 권리가 흔들린다”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증거를 제출했더라도 소비자가 상표로 인식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면 등록이 거절될 수 있다”는 문제다. 핵심은 같다. 상표는 등록보다 사용이 중요하고, 그 사용은 ‘올바른 사용’이어야 한다.

많은 기업은 상표권을 일종의 보관 자산처럼 생각한다. 좋은 이름을 정하고,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증을 받아두면 일단 안전하다고 느낀다. 특히 신제품 출시 전에는 경쟁사의 선등록 상표, 유사 브랜드, 분쟁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일단 등록만 받아두고 나중에 쓰자”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나중’이 길어질 때 생긴다. 한국 상표법은 등록상표가 일정 기간 실제로 사용되지 않으면 불사용 취소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상표권은 독점권이지만, 시장에서 쓰이지 않는 독점권을 무기한 묶어두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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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이 점을 잘 보여준 사건이 2026년 3월 대법원의 이른바 ‘티르리르’ 상표 불사용 취소 사건이다. 공개자료상 이 사건은 주얼리 브랜드 ‘티르리르(TIRR LIRR)’와 화장품 브랜드 ‘티르티르(TIRTIR)’ 사이의 분쟁으로 알려져 있다. 티르티르 측은 2017년 12월 화장품류에 대해 ‘티르티르’ 계열 상표를 먼저 등록받았다. 이후 신라보석 측은 2019년 1월 화장품류에 대해 ‘티르리르’ 표장을 출원했고, 같은 해 8월 등록받았다. 즉, 신라보석 측의 화장품류 상표는 티르티르 측의 선등록 화장품 상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특허청 심사를 거쳐 등록된 후출원 상표였다.

다만 “등록되었으니 충돌 위험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허청 심사 단계에서 등록이 되었다는 사실과, 나중에 실제 분쟁에서 두 상표가 충돌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등록상표권자는 원칙적으로 자기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사용할 권원을 갖지만, 그 상표가 선행 등록상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후출원 등록상표라면 선행 상표가 유효하게 남아 있는 동안에는 침해 분쟁의 위험이 남을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신라보석 측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티르티르 측 상표가 유효하게 유지되는 한, 신라보석 측이 화장품류에 ‘티르리르’ 상표를 사용하는 행위가 티르티르 측 상표권 침해로 다투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두 표장이 모두 조어상표로 관념을 대비하기 어렵고 외관은 다르지만, 호칭이 유사해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에게 출처 오인·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유사상표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등록되었으니 안전하다”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등록은 되었지만, 선행 상표가 유효하게 존속하는 동안 실제 사용 단계에서는 여전히 충돌 가능성이 남아 있던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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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신라보석 측은 이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티르티르 측 상표들에 대해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다. 이 부분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신라보석 측이 단순히 “티르리르와 티르티르가 화장품 분야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다툰 것은 아니었다. 핵심은 신라보석 측이 주얼리 분야에서 먼저 사용해 온 ‘티르리르’ 표장이 이미 일정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화장품과 주얼리가 모두 패션·뷰티 소비재 영역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신라보석 측은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티르티르 측 화장품 상표가 수요자에게 출처 혼동이나 기만을 일으킬 수 있고, 선사용상표의 신용에 편승하려는 부정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신라보석 측의 무효심판은 자신의 화장품 진출을 위한 리스크 제거 절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주얼리 분야에서 먼저 알려진 ‘티르리르’ 브랜드를 화장품 분야로 확장하려면, 먼저 화장품류에 존재하던 티르티르 측 선등록상표의 리스크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신라보석 측은 무효심판을 진행하는 한편, 자신의 화장품류 등록상표를 사용하기 위해 포장 디자인 의뢰, 화장품책임판매업 등록, OEM 협의 등 출시 준비도 진행했다. 그러나 티르티르 측 상표가 아직 유효하게 남아 있는 동안 실제 화장품 시장에서 ‘티르리르’ 상표를 사용하는 것은 상표권 침해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효심판 결과를 기다리며 실제 사용을 미뤘다.

이후 티르티르 측 상표들에 대한 무효심결은 최종 확정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 티르티르 측은 신라보석 측의 화장품류 등록상표에 대해 “취소심판청구일 전 3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사용 취소심판을 청구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문제 된 것은 티르티르 측 상표의 무효 여부가 아니었다. 신라보석 측이 등록받은 화장품류 상표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가 핵심이었다.

특허법원은 신라보석 측의 사정을 받아들였다. 티르티르 측은 당시 유효한 선등록상표권자였고, 신라보석 측의 화장품류 ‘티르리르’ 상표는 그보다 늦게 등록된 후출원 상표였기 때문이다. 특허법원은 신라보석 측이 그 상표를 화장품류에 사용하면 티르티르 측 상표권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고, 형사처벌 위험까지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불사용의 정당한 이유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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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그러나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대법원은 침해 우려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법적 분쟁 우려나 침해 위험은 원칙적으로 상표권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관리해야 할 주관적·내부적 사유라고 보았다. 법률상 판매금지, 국가 규제, 수입제한, 천재지변처럼 상표권자가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외부적 장애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티르티르 측 상표들에 대한 무효 사건은 그 상표들 자체에 무효사유가 있는지를 다툰 절차였을 뿐, 신라보석 측에게 ‘티르리르’ 상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법적 의무를 부과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결국 대법원은 불사용의 정당한 이유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가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분쟁 위험이 있는데도 무조건 제품을 출시하라는 뜻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다. 이 판결의 메시지는 무리한 출시를 강요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분쟁 대응과 상표 사용 관리를 별개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무효심판, 협상, 권리범위 검토, 리브랜딩 검토를 진행하더라도 그 사이에 내 등록상표가 지정상품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 사용 증거가 남고 있는지, 3년의 불사용 리스크가 관리되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상표는 준비된 이름이 아니라 사용된 이름이어야 한다.

한국 사건이 “등록상표를 언제, 실제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미국 Maple Leaf Cheesemakers 사건은 “사용했다고 제출한 자료가 정말 상표 사용으로 보이는가”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상표 등록 과정에서 실제 사용에 관한 증거가 중요하다. 사용의사 기반으로 먼저 출원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등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표장이 상품이나 서비스와 관련해 상표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용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름이 라벨 어딘가에 적혀 있는지가 아니다. 소비자가 그 표시를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는 상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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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hatGPT

 

 

Maple Leaf Cheesemakers는 MAPLE LEAF CHEESE CO-OP을 치즈 상품의 상표로 등록하려 했다. 회사는 치즈 포장 라벨을 사용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미국 특허상표청 산하 상표심판원, 즉 TTAB(Trademark Trial and Appeal Board)는 제출된 라벨을 보고 등록거절을 유지했다. 해당 문구가 소비자 눈에 잘 띄는 제품 전면의 브랜드 표시가 아니라, 라벨 하단의 “Distributed By:” 뒤에 주소와 웹사이트 정보와 함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글자 크기와 색상, 배치도 주변 정보 문구와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TTAB가 본 것은 출원인이 그 문구를 상표로 쓰고 싶었는지가 아니었다. 소비자가 그 라벨을 보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MAPLE LEAF CHEESE CO-OP이라는 문구가 치즈의 브랜드라기보다, “이 제품은 이 회사가 유통했다”는 회사명 또는 유통 정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라벨 상단에는 더 크고 눈에 띄는 MAPLE LEAF CHEESE 디자인 표시가 따로 있었다. 이 경우 소비자는 상단의 표시를 브랜드로 보고, 하단의 Distributed By 뒤 문구는 단순한 사업자 정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문제는 문구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사용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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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는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식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생활용품 브랜드에 특히 중요하다. 패키지 디자인 과정에서는 법인명, 브랜드명, 제조원, 판매원, 유통사, 수입원 정보가 한 라벨 안에 함께 들어간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전체 미감을 맞추기 위해 브랜드명과 회사 정보를 비슷한 크기와 톤으로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상표 관점에서는 이러한 배치가 치명적일 수 있다. 소비자가 “이 제품의 브랜드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인식하는 표시와, “누가 만들고 유통했는가”를 알려주는 표시는 구별되어야 한다. 특히 미국처럼 사용증거가 중요한 시장에서는 패키지의 작은 레이아웃 차이가 등록 여부를 가를 수 있다.

여기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미국 출원에서 사용증거를 준비할 때는 제품명, 하우스마크, 회사명, 유통사 표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핵심 상표는 가능하면 제품 전면 또는 소비자가 구매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는 위치에 독립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Distributed by, Manufactured by, Imported by와 같은 문구 뒤에 붙은 이름은 소비자에게 상표가 아니라 사업자 정보처럼 보일 수 있다. 브랜드명으로 보호받고 싶은 표장이라면 크기, 위치, 색상, 반복 사용 방식에서 “이것이 제품의 출처표시”라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결국 두 사건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우리 회사의 상표는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티르리르 사건이 시간의 문제라면, Maple Leaf 사건은 장면의 문제다. 한국 사건에서는 등록상표를 장기간 쓰지 않은 것이 문제였고, 미국 사건에서는 사용증거를 제출했지만 소비자가 상표로 인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표시한 것이 문제였다. 하나는 서랍 속 상표의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란에 파묻힌 상표의 위험이다. 둘 다 브랜드 관리 현장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실수다.

그래서 상표 전략은 IP팀만의 일이 아니다. IP팀은 상표 출원, 등록, 갱신, 불사용 취소 가능 시점, 지정상품별 사용 증거를 관리해야 한다. 마케팅팀은 어느 브랜드를 전면에 세울지, 하우스마크와 개별 제품명을 어떻게 구분할지 결정해야 한다. 디자인팀은 패키지에서 상표가 소비자에게 독립된 출처표시로 보이도록 위치, 크기, 색상, 기호, 반복 사용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해외 진출 기업이라면 이 과정은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통과된 패키지라고 해서 미국의 사용증거 심사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출처: ChatGPT


필자는 상표 관리의 핵심이 “등록 이후의 사용 관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상표출원과 등록은 브랜드 보호의 기본이다. 그러나 등록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어떤 상표를 어느 상품에 등록했는지 관리하는 것과 함께, 그 상표가 언제부터, 어떤 상품에, 어떤 패키지와 광고물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노출되고 있는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상표는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시스템의 문제가 된다. 출시 일정, 분쟁 대응, 패키지 디자인, 해외 출원, 온라인 판매 페이지가 따로 움직이면 상표권은 생각보다 쉽게 약해진다. 등록받은 상표라도 시장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상표는 등록으로 시작되지만, 소비자가 보는 매대, 라벨, 광고, 상세페이지 위에서 올바르게 사용될 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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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태균 파트너변리사는 BLT 전략본부장으로 스타트업들의 IP전략, BM전략, 시장진출(GTM)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48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여러 분야의 스타트업의 IP(특허, 상표, 디자인)업무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공동 필자 
박진호 연구원 / 특허법인 BLT 빌드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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