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편의 연극무대, 그 두 달간의 공연을 끝낸 뒤 불이 꺼진 객석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팽팽했던 긴장이 다 풀리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비워진 것처럼 헛헛한 마음이 몰려온다.
지난 두 달 동안 제주도에서 17명의 예비 창업가 청년들을 멘티로 만났다. 청년과 함께 기업가정신부터 아이디어 탐색, 사업계획서 작성, 비용 및 수익 모델 설계, 시장과 경쟁사 분석, 브랜드 네이밍에 이르기까지 창업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치열한 여정을 통과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6시간 동안 강의를 쏟아내고, 주중에는 거의 하루 종일 1시간씩 돌아가며 1:1 밀착 멘토링을 진행했다. 각각의 사업 아이템에 맞는 선행 조사를 하고 주말조차 쉬지 못하고 다음 주 강의를 준비하는 무리한 스케줄이었지만, 내 안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이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교육자이자 한 명의 창업가로서 마주했던 고민과 성찰의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이상적인 커리큘럼과 현실의 간극: 난이도의 조화
처음 설계했던 강의 커리큘럼은 명확한 3단계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1단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MVP(최소 기능 제품) 검증
2단계: AI를 활용한 랜딩페이지 제작 및 사업 자동화·효율화 시스템 구축
3단계: 창업의 전 과정을 기록하여 SNS를 통한 셀프 브랜딩 완성
첫 강의 날, 넘치는 열정으로 멘티들을 강하게 푸시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교육의 난이도를 조화롭게 조율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영역이었다. 난이도를 너무 높이면 기초가 부족한 이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고, 반대로 너무 낮추면 이미 기본기를 갖춘 이들에게 지루한 시간이 되었다.
결국 전략을 수정했다. 전체 강의는 본질적인 기초 창업 이론을 다루되, 개별 멘토링 시간에서 각자의 속도와 아이템에 맞춘 딥다이브(Deep-dive)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유연한 궤도 수정 덕분에 청년들은 각자의 페이스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2. 야생에 나가기 전, 멘토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감독'이 되어야 한다
창업 생태계는 냉혹한 야생이다. 때문에 시장의 매를 먼저 맞는 것이 낫다며 멘토링 역시 얼음처럼 차가운 피드백 위주여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청년들은 이미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피드백을 소화해 낼 당사자의 심리적 상태였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단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정의한 멘토의 역할은 점수를 주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함께 달리는 코치이자 감독이었다. 시합에 나가면 경기를 위해 소리치고 흥분할지언정, 사업을 시작하기 전 준비 단계는 경기 전 '훈련'의 시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를 죽이는 독설이 아니라, 긍정적인 응원과 함께 [사업 아이디어 가설 → 시제품 제작 → 고객 피드백을 통한 가설 검증 → 개선 → 반복]이라는 지루한 루프를 반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훈련 메커니즘을 설계해 주는 일이었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기 확신을 얻은 청년들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 기가 죽어 있던 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부작사부작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거운 공기를 깨기 위해 수년간 단련된 아재개그를 던지고 유행하는 춤을 추며 강의실의 온도를 올렸던 보람이 하나 둘 만들어지는 결과물로 증명되고 있었다.
3. 객관성을 잃어버릴 만큼, 멘티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
창업을 하고, 사업을 전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창업가 본인이다. 멘토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명확한 명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느 순간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하며 두근거려 하는 그 순수한 열정에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너는 네가 가르친 대로 행하고 있어?"
강의를 준비하는 내내, 그리고 멘토링이 끝난 후에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멘티들의 사업 가능성을 차갑게 분석하는 대신 ‘내가 어떻게든 성공시켜야지. 내가 가장 먼저 지갑을 열고, 내가 마케팅까지 뛰어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멘토로서 위험한 '과몰입'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막 창업 아이디어를 상상하고 계획하면서 청년들이 보여주던 설렘은 죽어 있던 내 안의 창업 DNA와 열정을 다시금 세차게 깨웠다.
4. 든든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되기 위하여
마지막 주간 발표 평가 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화구가 날아왔다. 멘티들이 건넨 진심 어린 편지와 롤링페이퍼를 읽다가 피드백을 멈추고 울컥해 잠시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펑펑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아낼 만큼, 지난 두 달 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내게 전혀 예상치 못한 심경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단 한 번도 거대한 사업적 성공을 꿈꿔본 적이 없었던 내가,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이자 비즈니스인 '솔앤유'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강력한 의욕을 품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이 멋진 청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멘토, 아니 자랑스러운 이정표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이 험난한 창업의 여정에서 지치고 흔들릴 때, 언제든 돌아와 기댈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
두 달 동안 멘티들에게 매 순간 강조했던 말이 있다. 성공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이라고. 강의 시작 전 다 함께 스쿼트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점심시간 이후 명상을 통해 일주일에 단 10분이라도 뇌를 비우는 연습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제주도라는 이 아름답고 거친 섬에서 청년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즐겁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개척해 나가며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강의와 멘토링 일정이 끝나고, 하나둘씩 지원사업이나 모두의 창업 1단계 통과 소식을 들려오는 지금,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내가 첫날 했던 말처럼 그들 모두가 결국에는 해낼 것이라고. 진심으로 아낌없이 열정을 불태웠고, 많이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내 창업 여정의 가장 완벽한 페이지로 남기에 충분하다.
- 멘티들이 보내주었던 문자들.
- 마지막 발표날 프레젠테이션에 편지를 써주었다.
- 멘티들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송별파티.
P.S. 제주도에서 창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청년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내게 정말 보석이 가득한 보물섬을 발견한 것과 다름없는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