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미국 정부가 Anthropic의 최상위 모델 Mythos5와 Fable5에 수출통제 지침(export control directive, 특정 기술·제품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정부가 제한하는 명령)을 적용했습니다. 모델이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눈길을 끈 건 통제의 기준이었습니다. 특정 나라를 찍어서 막은 게 아니라, 미국 국적이 아닌 이용자 전체가 대상이 됐습니다. 모델을 만든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팀원조차 자기 회사가 만든 모델을 못 쓰게 됐습니다. 정부는 안보 우려를 들었고, 회사는 형평성과 실효성을 들어 반론했습니다. 이 조치는 한시적이라, 수 주 안에 풀릴 가능성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Fable5의 성능에 감탄도 잠시, 사용 불가 상황에 슬퍼진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닐 겁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게 마케팅에 불을 지피는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만합니다.
"우리팀에게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어떤 의미지? 최상위 AI 도구의 활용 가능 여부가 국적으로 갈리게 된다면, 어떤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지?"

이번 조치를 왜 살펴봐야 할까
국가가 나서서 기술을 막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미 엔비디아(NVIDIA)·AMD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막아 왔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두 사실이 눈에 띕니다.
첫째, 막은 게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서비스'였습니다. 반도체는 손에 잡히는 물건이라 국경에서 막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막힌 건 인터넷에 연결해 매일 쓰는 SaaS(Software as a Service, 설치하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해 쓰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형태의 AI였습니다. 물론 정부 때문에 상용 서비스가 막힌 사례 자체가 처음은 아닙니다. 중국은 자국 안에서 해외 서비스를 오래 막아 왔고, 미국도 제재 대상국에서는 일부 서비스 접속을 끊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서비스를 막았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닙니다.
둘째, 막은 기준이 '특정 나라'가 아니라 '개인의 국적'이었습니다. 기존 제재는 보통 대상 국가를 정해 놓고 시행되었습니다. 이번엔 '미국 국적이 아니다'라는 이유 하나가 기준이 됐습니다. 한국·일본·유럽 같은 동맹국 국적자도, 미국 안에 합법적으로 사는 사람도 국적 하나로 막혔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배포된 최상위 AI 서비스에 이런 방식의 통제가 걸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다른 개발사들은 이런 직접 제한을 피해 왔다는 평가입니다.
이제 앞선 AI는 생산성 도구를 넘어 국가안보와 지정학, 기술패권 경쟁의 논리 속에서 접근과 활용이 통제되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최근 각국이 강조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AI를 개발하는 능력뿐 아니라 누가 AI에 접근할 수 있는지, 누가 이를 통제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는 사실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만 '사용자 국적 기준은 실제로 집행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H-1B 비자(미국 기업이 외국 전문 인력을 고용할 때 쓰는 취업 비자) 보유자까지 차단됐는데, 이런 방식이 현실에서 얼마나 촘촘히 작동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AI 모델과 도구를 빠르게 적용해 경쟁력으로 바꿔 온 한국 스타트업이라면, 이번 일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한국 스타트업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1. 우리 팀과 AI의 관계 점검하기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팀이 AI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세 가지를 물어보면 됩니다.
- 우리 팀의 경쟁력에서 AI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 우리는 특정 사업자나 특정 모델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 우리 사업 계획이 '앞으로도 AI를 지금처럼 쓸 수 있다'는 전제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세 번째 질문이 핵심입니다. 당연하던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지금 상태를 비춰 보는 점검입니다. 당장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 두는 일이죠. 꼭 필요한 출발점이지만, 점검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2. 선택지를 넓히는 사업 구조 설계하기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변화에 그저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에 앞서 사업 구조를 준비할 것인가. 점검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많은 회사는 규제가 발표된 뒤에 움직입니다. 그러나 흐름을 한발 앞서 읽는다면, 규제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AI 도구를 하나 더 확보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데이터 구조와 업무 방식, 기술 인프라, 법적 구조까지 회사의 토대 전체를 더 넓은 기준에 맞춰 설계해두는 것을 뜻합니다.
회사에 따라서는 해외 법인 설립이나 플립(한국 본사 위에 미국 모회사를 세워서 지분 구조를 다시 짜는 방식)이 그런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당장 해외로 거점을 옮기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투자와 시장, 규제 환경이 바뀔 때 사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열어두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점검할 것과 지켜볼 것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점검할 것
- 우리 팀의 개발·운영이 특정 AI 도구 한두 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적어 봅니다.
- 그 도구가 어느 날 막힌다면,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도구가 있는지 확인해 둡니다.
- 글로벌 진출을 이미 고민하고 있다면, 기존의 시장·매출 관점에 더해 '도구 접근권' 관점도 점검표에 한 줄 추가합니다.
지켜볼 것
- 이번 조치는 한시적일 수 있습니다. 이 한 건에 맞춰 회사 구조를 급히 바꿀 일은 아닙니다.
- 다만 '서비스를 개인 국적으로 막는' 방식이 한 번 등장한 이상,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할지 흐름을 지켜보고 대비책을 설계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점검을 하다 보면, 법인 구조나 인력 구성, 해외 거점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문제는 세무·비자·계약이 한꺼번에 얽혀 있어서, 한 번에 정리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이건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 싶은 지점이 생기면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이번 접속 차단은 며칠 뒤, 혹은 몇 주 뒤에 풀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미 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한 번 그어진 선은 남습니다. 앞으로 이 선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급한 결정이 아니라, 이 변화를 한 발짝 앞서 읽어 두는 일입니다.
AI 접근권의 시대에 중요한 건 더 좋은 기술을 확보하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남겨 두는 능력. 이번 사건이 한국의 스타트업에게 남긴 조용한 숙제입니다.
📍 참고한 글
- 앤트로픽 공식 성명: https://www.anthropic.com/news/fable-mythos-access
- Al Jazeera (Why it matters): https://www.aljazeera.com/news/2026/6/14/us-asks-anthropic-to-block-global-access-to-top-ai-models-why-it-matters
- Fortune: https://fortune.com/2026/06/13/anthropic-disables-fable-mythos-export-controls-national-security-threat/
AI와 불확실성의 시대, 차이는 결국 구조에서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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