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나중에 요양원 알아봐 드릴게요" 했다가 정색당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어르신들은 시설이 아니라 살던 집에 남고 싶어 하죠. 이게 한두 사람의 고집이 아니라 유럽과 한국을 동시에 관통하는 숫자라는 게, 최근 조사에서 또 확인됐습니다.
유럽 시니어 83%, '끝까지 내 집에서'
BNP파리바 퍼스널파이낸스의 옵세르바투아르 스텔렘(Observatoire Cetelem)이 유럽 10개국 1만 930명을 조사한 2026년 소비 리포트인데요. 60세 이상 시니어의 83%가 자립이 어려워지더라도 가능한 한 오래 자기 집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건강하게 나이 드는 걸 1순위로 꼽은 비율은 91%였고요. 그리고 둘은 붙어 있죠. 집에 머물려면 건강이 받쳐줘야 하니까요. 주거를 자기 몸에 맞게 고치는 게 자립에 꼭 필요하다고 본 사람도 열에 넷가량(약 42%)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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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와도 그림은 같습니다. 보건복지부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 '건강을 유지하며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노인이 87.2%였습니다(2020년 83.8%에서 오른 수치). 건강이 나빠져 혼자 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가정해도 48.9%가 그대로 내 집에 남겠다고 했고요. 유럽의 83%(자립이 어려워져도 재택 희망)와 거의 같은 자리입니다. 자녀나 형제 집에 들어가겠다는 비율은 2.5%에 그쳤습니다.
'집에서 끝까지'는 유럽만의 정서가 아니라 한국 노인에게 더 또렷한 보편 욕구인 거죠. 그리고 그 욕구 뒤엔 자산이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노인 가구의 부동산 자산은 평균 3억 1,817만 원. 집은 있고, 그 집에서 안 나가겠다는 겁니다.
수요는 있는데, 시장이 비는 이유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욕구가 이렇게 선명한데, '집에서 끝까지'를 받쳐줄 상품 시장은 의외로 얇습니다.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화재·가스 감지기(45.1%), 낙상방지 바닥재(41.9%), 욕실 안전손잡이(38.2%) 같은 설비의 필요성은 다들 높게 느낍니다. 그런데 정작 '거주주택 보수·개조 서비스'를 우선 확대돼야 할 정책으로 꼽은 비율은 0.9%, 꼴찌였어요. 필요는 인정하는데 내 돈과 행동으로는 잘 안 옮겨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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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렘 리포트도 같은 함정을 짚습니다. 시니어는 필요를 느껴도 사지 않을 수 있고, 위험을 알면서도 해법을 거부할 수 있다고요. 무엇보다 '노인 취급'받는 걸 싫어합니다. 부동산은 있어도 현금 지출엔 신중하고요. 시니어가 늘었다고 수요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집에서 끝까지'라는 칸은 분명히 비어 있고, 그 칸은 복지 예산으로 채울 자리가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로 채울 자리입니다. 주거 개조, 낙상·안전 설비, 방문·재택 케어, 원격 건강 모니터링 — 스텔렘 조사에서 시니어 10명 중 4명이 이미 쓰거나(15%) 쓸 의향이 있다고(25%) 한 디지털 건강 기술까지 다 여기 들어갑니다. 다만 이 시장은 '필요'를 외친다고 열리지 않습니다. 가격, 신뢰, 단순한 사용법, 그리고 '나는 아직 돌봄 대상이 아니다'라는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는 설계가 함께 와야 지갑이 열립니다.
저는 시니어 시장을 '돈 많은 노인'으로 요약하는 말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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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이 곧 구매는 아니니까요. 한국에서 '집에서 끝까지'를 진짜 사업으로 바꿀 곳은, 어르신을 환자로 보지 않으면서 살던 집을 더 오래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회사라고 봅니다. 안 쓰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사고 싶게 만든 상품이 아직 없을 뿐입니다.
출처: Observatoire Cetelem de la Consommation 2026(BNP파리바 퍼스널파이낸스·Harris Interactive, 유럽 10개국 1만 930명, 2025.11~12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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