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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API를 쓰지 않겠다"... 10년 뚝심으로 ARR 1500억 회사를 만들기까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야기를 나눠왔지만, 그 말에 담긴 지식 대부분은 사라졌습니다. 종이에 적힌 것만 남고, 말로 오간 것은 공기 중으로 흩어졌습니다. 샘 리앙은 이걸 '인류 지성의 거대한 손실'이라고 부릅니다.

그 거대한 손실은 그의 일상에서 훨씬 구체적인 불편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회의’였습니다. 

회의록은 늘 회의보다 덜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회사의 결정과 맥락은 회의실에서 곧잘 증발합니다. 기억은 흐려지고, 메모는 개인 노트에 갇히고, 팀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죠.

오터(Otter.ai)가 겨냥한 건 바로 그 증발이었습니다. AI가 회의를 녹음하고 받아 적어, 팀이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결정과 맥락으로 바꾸는 일. 지금 오터는 사용자 3,500만 명에, 연간 반복 매출(ARR, Annual Recurring Revenue)이 1억 달러를 넘긴 회사가 됐습니다.

 

샘 리앙, 오터(Otter.ai) 공동창업자 겸 CEO (출처: EO)


하지만 10년 전 그가 이 아이디어를 처음 꺼냈을 때,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더 편하고 더 빠른 길이 늘 곁에 있었지만, 샘 리앙은 항상 그 '쉬운' 쪽을 거절했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1. 아무도 회의를 녹음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2. 다른 회사의 서비스를 쓰면 빠르지만, 비슷해진다
  3. 말로 일하는 시대가 온다

 

아무도 회의를 녹음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2016년, 샘은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 모든 회의를 녹음하겠다.
  2. 그리고 그 기록을 팀원들과 나누게 하겠다.
     

둘 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녹음당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거북하고, 회의록을 남과 공유하는 일도 낯섭니다. 원래 메모란 종이 노트에 혼자 적는 개인적인 것이었으니까요. 샘이 하려던 건 그 노트에 갇혀 있던 회의를, 팀이 함께 쓰는 자산으로 꺼내는 일이었습니다.

 

 

샘은 사고방식과 문화가 결국 바뀐다고 봤습니다. 제품은 변화를 기다리는 대신 변화를 앞당겨야만 했습니다.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 제품은 한꺼번에 퍼지지 않으니까요. 먼저 받아들인 사람이 먼저 그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빨리 일하고, 더 잘 공유하죠. 그러면 그 모습을 본 동료가 따라옵니다. 그러니 정말 크게 성장하고 싶다면, 아직 대부분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합니다.

샘은 이 안목을 스탠퍼드(Stanford) 박사 시절에 배웠습니다. 

그의 지도교수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아직 회사를 갖추기도 전에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준 사람입니다. 그 회사가 구글이 됐습니다. 이후 샘은 구글에서 구글 맵스의 위치 플랫폼을 이끌었고, 그 뒤 직접 모바일 스타트업을 세웠습니다. 사용자의 모바일 행동을 읽어 서비스를 개인화하는 회사였고, 잘 인수됐습니다. 그리고 2016년, 더 크고 새로운 문제를 찾고 있었습니다.

첫 창업 당시, 샘은 투자자와 팀과 고객과 끝없이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었고, 팀과 공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터는 거기서 출발했습니다.

 


 

다른 회사의 서비스를 쓰면 빠르지만, 비슷해진다

오늘날에는 다른 회사가 만들어둔 음성인식 API를 가져다 쓰면 대학생도 회의 기록 도구를 금방 만듭니다. 빠르고 편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누구나 같은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샘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음성인식을 처음부터 직접 만들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얘기가 달랐습니다. 그때 누군가 그 API를 만들어주길 기다렸다면, 오터는 몇 년이나 늦었을 겁니다. 

물론 직접 만드는 길은 위험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보다 자원도 돈도 사람도 훨씬 적었습니다. 샘에게는 그런 테크 공룡이 먼저 기술을 따라잡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남의 API를 쓴다는 건 단순히 돈을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품의 베이스와 가격 정책을 전부 남의 기술 위에 얹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반대로 원천 기술을 직접 손에 쥐고 있으면 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고, 그 위에서 남들이 못 하는 걸 시도할 여지도 생깁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더 단순했습니다. 만들기 쉬운 것이라면 다른 경쟁자들도 쉽게 만들겠죠.

지금도 음성인식 연구자들이 오래 붙들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수억 건의 음성 데이터로 사람의 대화를 제대로 학습시키는 일, 회의에서 여러 사람이 주고받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델링하는 일.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런 영역은 다른 곳에서 빌려 온 API로는 닿을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결국 하나입니다.

남들도 금방 만드는 기능 말고, 우리만 오래 붙들 수 있는 차이는 무엇인가.

샘은 그 답을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의 깊이에서 찾았습니다.

 


 

말로 일하는 시대가 온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사람의 행동은 바뀝니다. 한때는 이메일이 영원할 것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슬랙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메일을 덜 쓰기 시작했습니다.

샘은 음성 기술도 그렇게, 슬랙처럼 될 거라고 봅니다. 음성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음성이 기업의 결정과 맥락을 다루는 기본 통로가 될 겁니다. 몇 년 안에 사람들은 키보드로 무언가를 거의 쓰지 않게 될 겁니다. 그냥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쓰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사람이 말하면 AI가 알아서 적어줍니다. 이미 시작된 일이고, 앞으로 더 빨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샘은 받아 적는 도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전사 도구에서 AI 회의 비서로, 다시 회의에서 나온 할 일을 정리하고 그다음 업무 흐름으로 이어주는 단계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기업들은 회의 기록을 쌓아두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가 무엇을 결정했고 어떤 약속이 오갔는지 다시 찾을 수 있는 형태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최소 95%, 어쩌면 99%는 아직 음성인식 도구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을 봐야 합니다. 한 세대를 대표하는 회사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얼마 전 샘이 하버드(Harvard)에 갔는데, 많은 교수가 학생들이 오터 같은 음성인식 도구를 활용해서 학습하는 걸 막고 있는 걸 봤다고 합니다. 샘은 그런 방식은 낡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교육은 최소 100년 전에 설계된 틀입니다. 학생들이 어떤 AI 도구든 쓰게 해야 합니다.

 


 

마라톤을 열한 번 완주한 샘 리앙은, 스타트업을 하는 게 마라톤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합니다. 다른 경쟁자 대부분은 빨리 포기했지만, 샘은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갔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건 인내가 아니라, 그가 10년 동안 무엇을 견뎠느냐입니다.

 

마라톤과 스타트업 모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온 샘 리앙

 

그는 사람들이 싫어하던 행동을 골랐습니다. 내 음성이 녹음되는 것, 회의록을 남과 나누는 것, 말로 흘려보내던 내용이 회사의 기록으로 남는 것. 처음엔 불편했지만, 그렇기에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큰 회사를 만드는 사람은 시류를 잘 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직 불편한 일이 언젠가 일상이 될 거라고 먼저 믿는 사람입니다. 모두에게 익숙하고 편한 시장은 이미 진입하기 늦은 시장입니다.

 

📌 샘 리앙이 직접 들려주는 오터의 10년, 더 자세한 이야기는 EO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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