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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벼랑 끝, 그리고 NVI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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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목요일, 창업가들의 인사이트를 메일로 전해드립니다.
창업가들의 Day 0로 돌아가, 그들의 ‘처음’에 담긴 고민과 배움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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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기던 게임의 주인공은 납작했습니다. 슈퍼마리오처럼 도트 캐릭터가 제한된 방식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었죠. 자라면서 접한 게임은 3D가 주류였습니다. 생생한 화면과 자유로운 움직임 덕분에 훨씬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고요. 이 변화가 막 일렁이던 시기의 게임 산업, 그곳이 바로 NVIDIA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젠슨 황(Jensen Huang)은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 뛰어들었고, 그만큼 큰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지금이야 '과감한 선제 투자'로 평가받지만, 시대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파산 위기와 시장의 냉담한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NVIDIA를 AI 시대에 없어선 안 될,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업의 창업자에게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시작하겠냐"고 물었을 때, "절대 안 하겠다"는 답이 나오기까지 어떤 고통과 인내가 쌓여 있을까요. 오늘은 NVIDIA 창업자 젠슨 황의 Day 0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안정된 직장을 등지고, 무모한 창업으로
2. 첫 번째 벼랑: 25만 장의 반품
3. 두 번째 벼랑: 폐업까지 D-30
4. 세번째 벼랑: 박수받지 못한 6년

 

1. 안정된 직장을 등지고, 무모한 창업으로

젠슨 황과 아내 로리 밀스 (출처 : 중앙일보) 

젠슨 황의 첫 직장은 AMD*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손으로 직접 칩을 설계한 마지막 세대이자, 소프트웨어로 칩을 설계한 첫 세대’라고 설명합니다. 칩 설계는 상상만큼 화려하지도,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안에서  복잡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죠.

이후 그는 반도체 회사 LSI Logic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유능함을 인정받은 그는 회사를 대표해 여러 관계사와 일할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슈퍼컴퓨터부터 PC 혁명까지 당대의 주요 산업 전환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Sun Microsystems의 엔지니어였던 크리스 말라초프스키(Chris Malachowsky)와 커티스 프리엠(Curtis Priem)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어느 날, 두 사람이 그에게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합니다. "3D 그래픽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뛰어난 칩 엔지니어이고, 당신은 뛰어난 칩 제품 관리자죠. CPU의 부담을 덜어 PC가 3D 그래픽을 처리하게 해주는 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제안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마침 영화 〈쥬라기 공원〉이 3D 그래픽(CGI)을 앞세워 전 세계에서 큰 흥행을 거두던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강하게 흔든 건 '혁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컴퓨터의 범용화는 이미 시작됐고, 3D 그래픽을 개인용 컴퓨터에서 구현해낸다면 분명 무언가 될 것 같았죠. 당시 그에게는 아내와 어린 자녀가 있었지만, 그는 안정을 뒤로한 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강행합니다.

라틴어로 '질투(invidia)'를 뜻하는 이름,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만들겠다는 NVIDIA의 첫 무대는 비디오 게임이었습니다. 그는 비디오 게임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시장이 크면 R&D 예산도 커지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기술로 이어지니까요. 다만 이 선택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랐습니다. 기술은 최첨단이었고 가격은 매우 높았습니다. 게임 속 3D 그래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만 믿은 것이 아니라, 게임 산업 자체가 돈이 되는 산업이 되리라는 데 건 도박이기도 했죠. 확신은 있었지만, 확신이 늘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AMD(Advanced Micro Devices): 미국의 반도체 기업으로, 젠슨 황이 1984년 무렵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2. 첫 번째 벼랑: 25만 장의 반품

엔비디아 공동창업자, 왼쪽부터 커티스 프리엠, 젠슨 황, 크리스 말라코프스키(출처 : 엔비디아) 

2년 반을 쏟아부은 첫 제품의 이름은 NV1이었습니다. 출시되자마자 25만 장이 팔렸지만, 업계에 두고두고 회자될 속도로 전량 반품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좋은 렌더링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틀렸습니다."

NV1은 업계의 주류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3D 그래픽은 작은 도형을 잔뜩 이어 붙여 입체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입혀(이를 '텍스처 매핑'이라 합니다) 완성됩니다. 이때 대부분의 칩은 '삼각형'을 기본 단위로 썼는데, NV1은 곡면을 표현하기 좋은 '사각형'을 택했습니다. NVIDIA 팀은 이쪽이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거대 기업 Sega도 같은 방식을 쓰고 있었으니, 출발부터 큰 파트너사를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죠.

하지만 Microsoft의 발표로 모든 것은 무너졌습니다. 그들이 게임 개발의 필수 도구인 DirectX를 삼각형 방식으로 표준화하여 발표하자, 전 세계 개발자가 삼각형 기준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각형 기반 NV1은 그 흐름과 호환될 수 없는 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2년 반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젠슨 황은 설계가 근본부터 잘못됐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Sega와 맺은 1,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죠. 계약을 이행하려면 근본적 결함이 있는 이 아키텍처를 2년이나 더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훨씬 앞서 나갈 테고요. 그렇다고 계약을 깨면 당장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젠슨 황은 솔직하고 뻔뻔해지기를 택했습니다.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Sega CEO를 만나 사실대로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3D 그래픽은 다른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가길 권한다고요. 그러고는 한 가지 부탁을 덧붙였습니다. 계약은 완수하지 못했지만 그 돈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남은 계약금을 회사에 대한 투자로 전환해 달라고요. Sega CEO가 사업 계획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업 계획이 아직 완전히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CEO로서 제 첫 번째 임무는 회사를 살리고 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도와주신다면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좋은 투자가 될 겁니다." 젠슨 황은 끝내 남은 500만 달러를 투자금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3. 두 번째 벼랑: 폐업까지 D-30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안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500만 달러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6개월. 직원 절반을 해고해야 했고, 여유도 희망도 바닥난 상황에서 다음 칩은 반드시 제대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는 도박을 걸었습니다. 빠듯한 예산을 한 번 더 쪼개 에뮬레이터를 사들인 것입니다. 에뮬레이터는 실제 칩을 만들기 전에 소프트웨어로 칩의 동작을 미리 흉내 내보는 장비입니다.

"우리 회사는 30일 후면 문을 닫습니다."

새 칩을 만들려면 설계하고, 공장에서 찍어내고, 받아서 테스트하기까지 최소 1년 반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벼랑 끝 결정이었죠. 팀 전체가 그 기계에 매달렸습니다. 실제 칩이 나오기 전에, 에뮬레이터 안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게 늘 생사의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저 아주 침착하게, 집중해서 단계별로 생각했어요. 이게 우리가 살아남을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요."

 

RIVA 128 (출처 : 구글이미지)

그렇게 RIVA 128이 탄생했습니다. 앞선 실패로 독자 기술에 대한 자존심과 미련을 완전히 털어낸 NVIDIA는, 이번엔 처음부터 DirectX 호환을 최우선으로 설계했습니다. 게임 개발자들이 쓰는 표준 도구에 모든 것을 맞추고, 가능한 모든 것을 가속하고, 칩을 최대한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보다 빠른 칩은 없을 테니까요. RIVA 128은 출시 당시 가장 빠른 그래픽 칩으로 평가받으며, 출시 넉 달 만에 100만 개 출하를 돌파했습니다.

📒 Editor’s Note:
젠슨 황은 정말 그저 운에 맡긴 것일까.아니다 설계를 공장에 넘기는 순간(이를 테이프 아웃이라 부름.) 그는 이미 칩이 완벽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애물레이터 안에서 전체를 미리 다 돌려봤으니까. 그가 말한 단 한번의 기회는 사실 미래에 닥칠 시행착오를 전부 현재로 당겨와 미리 처리해버린다는 뜻에 가깝다. 도박처럼 보였던 그 결정의 속살은 오히려가장 철저한 사전 검증이었던 셈이다.

 

4. 세 번째 벼랑: 박수받지 못한 6년

위기를 넘긴 NVIDIA는 무서운 속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RIVA 128의 반응이 커지며 뒤이어 GeForce 시리즈가 나왔고, 매출은 오르고 회사에는 안정이 찾아왔죠.

하지만 젠슨 황은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창업 첫날부터 이어진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큰일이 하나 있다고 해보죠. 들여다보면 그 일은 반드시 순서대로 해야 하는 부분과, 동시에 처리해도 되는 부분으로 나뉩니다. 2000년대 초의 컴퓨터는 CPU를 중심으로 일을 처리했는데요. CPU는 복잡한 일에는 강했지만,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고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젠슨 황과 동료들은 바로 이 한계에 주목했습니다. 컴퓨터라면 직렬도 병렬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를 GPU로 풀 수 있지 않을까.

GPU는 본래 게임 그래픽을 위한 칩으로, 수많은 픽셀을 동시에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었습니다. 젠슨 황은 이 능력이 게임 화면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보았고, 뜻밖의 곳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이미 게임용 GPU를 억지로 끌어다 의료 영상 분석 같은 과학 계산에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불편한 방식을 감수하면서도 쓴다면, 문을 제대로 열어줄 경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것이라는 계산이었죠. 게임 시장 덕분에 이미 전 세계에 수천만 개의 NVIDIA 칩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도구만 얹으면 된다는 전략적 확신도 있었습니다.

젠슨 황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렇게 2006년, 일종의 'GPU 번역기'인 CUDA가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CUDA는 게임용으로만 쓰이던 GPU에게 '게임 말고 다른 계산도 해달라'고 쉽게 시킬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억지로 끌어다' 쓰던 그 불편함을 평탄하게 길로 깔아준 셈이죠

그러나 젠슨 황은 CUDA 발표 당시를 '완전한 침묵'으로 기억합니다. NVIDIA는 당시 순이익에 맞먹는 연간 5억 달러를 CUDA에 쏟아부었지만, 그것을 찾는 이는 극소수의 대학 연구자뿐이었습니다. NVIDIA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쓰이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수년 동안 NVIDIA의 주가는 폭락하거나 횡보했습니다. 수익성을 갉아먹는 이 투자를 거둬들이라는 투자자의 압박은 거셌습니다. 젠슨 황은 창피하고 굴욕적이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게임 칩 GeForce에 CUDA를 기본 탑재해 무료로 배포했고, 전 세계 대학을 찾아다니며 CUDA를 알렸습니다. 수익성이 나빠져도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근본 원리를 믿었습니다. CUDA가 반드시 유용해지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제가 그것을 깊이 믿었기에 주변 사람들도 함께 믿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게 문제는 '성공할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터뜨릴 것인가'였죠."

혹독한 시간을 견뎌낸 2012년, 마침내 신호탄이 올랐습니다. 토론토 대학의 한 연구팀이 NVIDIA의 GPU로 훈련시킨 신경망 모델 'AlexNet'으로 그해 이미지 분류 대회(ImageNet)에서 우승한 것입니다. AlexNet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성능이 조금 좋아졌다"가 아니었습니다. 사진 속 객체를 알아맞히는 일을 딥러닝이 실제로 해낼 수 있으며, 앞으로 더 큰 모델과 더 큰 데이터를 다루려면 CPU만으로는 어렵고 GPU가 필수라는 방향성이었습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NVIDIA는 CUDA 생태계를 키우는 쪽으로 나아갔고, 오늘날의 AI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2012년의 그 장면은,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AI와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불러온 출발점이었습니다.

"CUDA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 때, 만들어도 아무도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늘 냉소주의자의 시각이죠. 그러나 낙관주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들지 않으면, 올 수조차 없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 Editor’s Note: 
CUDA를 모든 GeForce에 기본 탑재해 공짜로 뿌린 데에는 노림수가 있었다. 비싼 전용 장비가 없어도 누구든 흔한 게임용 카드 한 장으로 GPU 연산을 해볼 수 있게 된 것. 정작 그 위에서 무엇이 피어날지는 NVIDIA가 정하지 않았다. 그건 연구자들이 직접 '발견'했고, 훗날 젠슨 황은 이를 '희망에 기댄 전략'이었다고 말한다. 다만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근거 있는 희망이었다고.

 

젠슨 황 (출처 : 구글 이미지)

NVIDIA는 게임용 그래픽 칩 회사로 시작해 AI 혁명의 핵심 인프라를 거머쥔,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되었습니다. ChatGPT부터 자율주행, 로봇공학까지 AI가 닿는 모든 곳에 NVIDIA의 칩이 있습니다. 그리고 젠슨 황은 이미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식 AI와 생성 AI를 지나, 이제 우리는 피지컬 AI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추론하고, 행동하는 AI의 시대를요.

AI 시대의 한복판에 선 기업. 그 정점에서, 젠슨 황은 한 공개 인터뷰에서 "다시 돌아가도 NVIDIA를 창업하겠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할게요. 'NVIDIA가 이렇게 됐다는 걸 알고 나서도 다시 하겠냐'는 질문이라면, 답은 '예스'입니다. 하지만 그게 질문의 본질은 아니죠. 지금 아는 것을 서른 살 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직원을 해고해야 하고 폐업 위기까지 온다는 걸 알았더라면, 다시 시작하겠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취약함, 불확실함, 불안감. 
그런데 젠슨 황은 이 감정을 완전히 떨쳐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망하기까지 30일 남은 회사다"라는 말을 33년간 스스로에게, 그리고 직원들에게 되뇌면서요. 고통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기대치를 다스리고, 끝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 기억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제를 잊으려고 제 모든 시간과 삶을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에게 무엇을 가르치나요? 마지막 포인트를 잊어버리라고 하죠. 잊는 것에 관한 겁니다."

실패의 그 감정은 잊되 위기의식만은 기억하라. 감정에 오래 머무르면 다음 결정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긴장감, 그것만큼은 33년 동안 젠슨 황을 움직이게 한 연료였습니다.

 

젠슨 황의 이야기를 통해 실패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부분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 확인하죠. 이번엔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실패에서 무엇을 버렸나요?
 

*이 글은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의 NVIDIA : Jensen Huang. From near collapse to becoming the world's biggest company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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