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마인드셋 #커리어
인생 쉽게 사는 것 같은 침착맨의 반전 과거 Part 1 (feat. 이말년)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어깨 위에도, 본인만 아는 5년이 얹혀 있다."

2025년 8월의 어느 저녁. 한 남자가 MBC 라디오스타 무대 위에 앉아 있습니다. 416만 구독자의 채널을 가진 인터넷 방송인. 그는 회사를 운영하고, 빌딩 한 동을 운영하며, 아내와 딸이 있는 가정의 가장입니다. MC들은 그에게 "유튜브 수익 49억"이라는 숫자를 꺼냅니다.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침착합니다.

이 한 장면만 보면 그는 한국에서 가장 쉽게 일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게임을 하다가 농담을 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라이브를 켜고, 그 모든 게 어떻게든 콘텐츠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같은 방송에서 그는 한 가지를 정식으로 선언합니다.

"만화가 이말년은 은퇴했다. 다시 그릴 계획은 없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그가 거의 10년 동안 본인에게 실망해 온 시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잘 풀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사실은 본인의 한계 앞에서 작아졌던 네 개의 장소를 따라갑니다.

이 글이 끝날 때쯤, 당신은 잘 풀리는 듯 보이는 모든 사람의 책상 뒤편에도 본인만 아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장소 1.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옆자리에 앉은 교실 (안산동산고등학교, 1990년대 후반)

침착맨, 본명 이병건은 1983년 12월 5일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익산을 거쳐 안산으로 이주한 그는 고잔초등학교, 성포중학교를 거쳐 안산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는 활발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본인 회상에 따르면, 조용하고 튀지 않는 학생. 노트에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잘 그리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교실에서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습니다. 같은 반에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친구들을 보며 본인의 그림을 자주 닫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누구는 재능이 흘러넘치고 누구는 본인이 그저 그렇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쪽이 보통의 우리입니다.


장소 2.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충주의 강의실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디자인과, 2000년대 초반)

대학에 진학할 때, 그는 디자인과를 선택합니다.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학과 친구들이 대부분 미술 전공을 정식으로 밟아 온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 같은 풍경을 만납니다. 옆자리 학우들의 디자인 재능이 본인보다 한 발씩 앞서 있다는 사실. 그는 본인이 디자인 재능이 없다고 느꼈고, 학우들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이때 그를 강의실에 붙들어 둔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짧게 말합니다.

"대학은 일단 졸업해야 한다."

이 한 마디 때문에 그는 강의실에 남았습니다. 본인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낀 자리에서, 본인이 가장 잘 그리는 친구들 옆에서, 2~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끝내 졸업합니다.

이 강의실에서 그가 본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본인이 가장 작아 보이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은, 결국 그 자리를 졸업하게 됩니다.


장소 3. 새벽까지 만화를 그리던 책상과 DVD방 카운터 (안산 DVD 방, 2008~2010)

졸업 시즌, 그는 마지막 시도를 합니다.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카연갤)에 단편을 올리는 일. 처음에는 졸업 작품 같은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갤러리에서 그의 단편들이 화제가 됩니다. 곧 야후가 정식 연재 제안을 보내옵니다.

조건은 잔인했습니다. 월 50만 원. 한 회가 아니라 한 달 전체에 대한 원고료였습니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야후에 「이말년 씨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낮에는 그림을 그렸고, 밤에는 DVD방 카운터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한 직업이 그를 먹여 살리지 못하던 시기. 그가 두 자리에서 동시에 일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그가 본 사실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한 자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 둘째, 그래도 두 자리에서 동시에 버티면 일단 살아진다.

그는 정식 만화가의 자리와 DVD방 카운터의 자리를, 같은 무게로 견뎠습니다.


장소 4. 「이말년 서유기」 완결 후 비워둔 책상(네이버 웹툰), 2016 ~ 2021)

박봉의 시기를 견딘 그는 곧 한국 인터넷 만화의 한 시대를 만듭니다. 「이말년 씨리즈」, 「이말년 서유기」. 그러나 「이말년 서유기」가 2016년 9월 1일 135화로 완결된 뒤, 그의 책상에는 5년 동안 다음 작품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2018년에 「이말년 씨리즈 2018」로 한 번의 복귀를 시도합니다. 본인은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그러나 댓글창에는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단어가 올라옵니다.

노잼.

이때 그는 본인의 마음속에서 한 문장을 듣습니다.

내 만화가, 재미없어졌다.

이 한 문장이 그의 책상을 다시 한 번 5년 가까이 비워 둡니다. 본인의 결과물에 본인이 먼저 실망한 사람은, 다시 펜을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표현력이 부족했어요. 부단히 노력하고 단련해야 했는데, 그 시기에 인터넷 방송의 맛을 알아버렸어요."

이 한 줄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본인의 한계를 본인이 먼저 인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한계 앞에서 다른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는 가장 두려워하던 결론을 본인 입으로 인정한 뒤에야, 다음 자리로 옮겨갈 준비를 시작합니다.


Epilogue

 

우리는 "쉽게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잘 풀리는 사람을 볼 때, 그가 별 노력 없이 그 자리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게으른 표현입니다.

침착맨의 인생은 이 표현의 환상을 깨줍니다.

옆자리 친구의 그림이 부러웠던 교실, 자퇴를 고민한 충주의 강의실, 월 50만 원 박봉을 DVD방 알바와 병행한 새벽, 본인의 만화가 재미없어졌다는 사실을 본인이 먼저 인정한 5년의 빈 책상. 이 네 개의 시기를 통과해 온 사람이 지금 416만 채널의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본인이 가장 작아 보이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만이, 그 자리를 졸업하고 다음 자리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다음주 수요일 오전 8시 Part 2에서는, 본인의 만화가 재미없어졌다고 인정한 그 사람이 어떻게 친구의 작업실에서 다시 일어섰는지, 그 회복의 7년을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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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Mission

오늘, 잘 풀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한 명을 떠올리세요. 동료, 친구, 또는 본인이 부러워하는 누군가.

그리고 그 사람의 지난 시간에 어떤 빈 책상이 있었을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본인이 본인의 결과물에 실망했을 시기, 옆자리 동료가 더 잘해 보였을 강의실, 알바를 병행했을 새벽, 다음 작품이 한 편도 나오지 않던 책상.

본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도, 본인만 아는 힘든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 본인의 빈 책상도, 한 줄로 기록해 보세요. 그 한 줄이 어디로 옮겨갈지는, 다음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 본 뉴스레터의 사실관계는 본명 이병건, 1983년 12월 5일 전주 출생 및 익산·안산 성장, 안산동산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디자인과 진학 및 디자인 재능에 대한 자기 의심으로 인한 자퇴 고민(아버지의 만류로 졸업), 디시 카툰연재갤러리(카연갤) 활동 후 야후 「이말년 씨리즈」 정식 연재(월 원고료 50만 원, DVD방 알바 병행), 「이말년 서유기」 2016년 9월 1일 135화 완결, 2018년 「이말년 씨리즈 2018」 복귀와 평가 부진(공포의 떡볶이 편 등), "표현력이 부족했다"는 본인 인터뷰 발언, 2025년 8월 MBC 라디오스타에서의 만화가 이말년 공식 은퇴 선언 등 공개 보도와 본인 인터뷰를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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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민 화이트크로우 · CMO

여행과 창업에서 얻어지는 인사이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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