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칸소의 빈 손님방 한 칸. 그곳에서 시작된 일이, 15년 뒤 액셀이 주도한 5,7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로 이어졌습니다. 혼자서 코드를 쓰는 개발자가, 전 세계 개발자들이 쓰는 프레임워크와 50명 가까운 팀, 900명이 모이는 컨퍼런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테일러 오트웰(Taylor Otwell)은 PHP 생태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웹 프레임워크 라라벨을 만든 사람입니다. 처음 공개됐을 때 이 도구를 써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최한 라라벨 컨퍼런스 라라콘(Laracon) 참석자는 90명. 지금은 2024년 댈러스 행사 기준 900명을 넘겼고, 라라벨은 하루 25만 건 넘게 다운로드되는 도구가 됐습니다.
그런데 테일러가 인터뷰에서 자신을 설명할 때 꺼내는 말은 늘 비슷합니다.
"저는 제가 굉장히 평범한 개발자라고 봐요."
겸손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은 라라벨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평범한 개발자가 만든, 평범한 개발자들을 위한 개발 프레임워크. 매일매일 코드를 쓰는 사람의 하루를 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라라벨은 처음부터 그 방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라라벨(Laravel): PHP 언어로 웹사이트를 만들 때 쓰는 프레임워크. 한국에서 익숙한 장고(Django)나 레일즈(Ruby on Rails)와 같은 역할입니다. PHP 생태계에서는 가장 널리 쓰입니다. 액셀(Accel)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벤처캐피탈에서 5,700만 달러 시리즈 A를 받았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첫 사용자가 자기 자신이었기 가능했던 일
- 빨리 실패해야 오래 만들 수 있다
- 메탈리카는 메탈리카의 노래를 부른다: 구경꾼의 훈수를 무시하는 법
- 그는 왜 자신을 '평범한 개발자'라고 부르는가
- 회사는 세 번 달라졌지만 미션은 그대로였다
첫 사용자가 자기 자신이었기 가능했던 일
미국 아칸소(Arkansas)주 핫스프링스에서 자란 테일러는 학교에서 웹사이트를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아이였고, 친구들이 자기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실제로 만들어 주던 열 살 소년이었습니다.
대학에서는 NASA 출신의 정통파 교수들로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는데, 특정 언어의 유행보다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훈련은 훗날 PHP라는, 당시엔 덜 세련돼 보이던 언어를 붙잡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 바탕이 됐습니다.
졸업 후 그는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테일러는 회사가 요구한 업무 기능을 만드는 일보다 동료 개발자들의 작업 흐름을 빠르게 해 주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더 손이 갔습니다. 머릿속에는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서비스 아이디어가 여럿 있었고, 그걸 빨리 실험하려면 원래 쓰던 것보다 더더욱 좋은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PHP는 서버에 올리기 쉽고 운영 부담도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당시 PHP 프레임워크들이 조금 '낡아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가 쓸만한 도구가 없다는 생각에, 그는 결국 직접 만들기 시작합니다. 첫 사용자는 자기 자신이었던 거죠.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문제를 풀어야 해요. 라라벨에 들어간 거의 모든 건, 결국 제가 직접 부딪힌 문제를 푸는 거였어요. 가능하다면 자기가 그 제품의 첫 고객이 되는 사업을 만드세요."
라라벨을 거의 다 만들었을 무렵, 테일러는 문득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걸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라라벨과 관련된 문서를 다듬어 오픈소스로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거대한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이드 프로젝트용으로 만든 도구를, 남들도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해 둔 정도였습니다.
공개 첫 며칠의 다운로드 수는 손에 꼽혔습니다. 첫 번째 사용자는 당연히 테일러 자신이었습니다.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라라벨을 유지 보수합니다. 스스로가 매일 써야 했으니까요.
자기 문제를 풀려고 만든 도구를 깃허브(GitHub)에 올렸던 일이 라라벨 생태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자기 필요에서 출발한 코드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던 개발자들이 함께 쓰는 도구로 넓어졌습니다.
다만 혼자 일하면 가장 먼저 바닥나는 자원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빨리 실패해야 오래 만들 수 있다
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람들은 대개 '쉬운 것'부터 만듭니다. 로그인 폼, 설정 페이지, 헤더 디자인. 화면이 조금씩 채워지니 뭔가 진척되는 기분도 듭니다. 그렇게 한두 달이 갑니다.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 제품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아직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테일러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을 먼저 하세요.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 제 능력으로 풀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부분이요."
결과는 둘 중 하나입니다. 그 문제를 풀어내면 의욕이 가장 넘치는 시기에,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문제가 안 풀린다면, 2주까지만 시도하고 멈춥니다.
"저라면 2주 동안 온갖 노력을 하고 실패하는 게, 석 달을 그 주변만 빙빙 돌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혼자서 창업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요."
1~2개월이라는 시간을 꼬박 쓴 뒤에야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딱 2주 만에 실패를 판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1인 창업자라면 두 달짜리 실패를 여러 번 감당할 여유는 없습니다. 어려운 부분을 먼저 건드린다는 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입니다.
그렇게 빠르게 핵심을 짚으면서 만든 프로덕트, 서비스가 궤도에 오르고 첫 사용자들이 모이면, 다음 문제가 찾아옵니다. 서비스를 쓰지도 않은 사람들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기 시작하는 거죠.
메탈리카는 메탈리카의 노래를 부른다
: 구경꾼의 훈수를 무시하는 법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운영하면 매일 같이 피드백이 들어옵니다. 날카로운 버그 리포트도 있고, 운영 방향을 송두리째 흔드는 요구 사항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진짜 사용자의 불편을 말하고, 누군가는 자기 취향을 공동체의 뜻처럼 포장합니다. 피드백, 어디까지 들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힌트를 준 사람이 테일윈드CSS(Tailwind CSS)를 만든 애덤 워튼(Adam Wathan)이었습니다. 그 역시 1인 창업자로서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탈리카와 테일러 스위프트를 예로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메탈리카거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라고 해 보세요. 메탈리카가 테일러 스위프트 팬에게 맞추려고 하면, 메탈리카의 진짜 팬을 잃어요. 반대도 같아요.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기 음악을 바꾸면, 콘서트장에 오던 그 팬들이 등을 돌리죠. 여러분의 팬을 위해, 여러분의 히트곡을 연주하세요."
오픈소스 운영자가 매일 경험하는 장면도 이와 닮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구 하나가 받아들여지면 곧장 다음 요구로 넘어갑니다. 좋네요. 그런데 이것도 별로예요.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은 '진짜' 사용자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매일 라라벨을 통해 자기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서비스, 자기 고객, 자기 매출을 이 도구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요. 테일러가 정말 놓치면 안 되는 쪽은 이들이었습니다.
"굉장히 진 빠지는 일이에요. 외부 의견도 듣되, 핵심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테일러 오트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이겁니다. 매일 같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코드를 가져가 자기 것인 것마냥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짜잔! 라라벨 사용자 여러분? 제가 발전시킨 이 서비스가 여러분의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했답니다? 이리 와서 모두 써보세요!"
오픈소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포크(fork). 코드까지 모두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채가기 쉬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1시간 반을 깃허브 운영에 시간을 씁니다. 다른 개발자가 보낸 코드 수정 제안을 직접 검토합니다. 회사가 커진 뒤에도 그 일은 여전히 그의 몫입니다. 라라벨이 수많은 개발자의 하루 8시간 안으로 들어간 이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15년째 반복되는 아침 1시간 반이 그 기반에 있습니다.
라라벨의 초창기, 라라캐스트(Laracasts)라는 라라벨을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는 비디오 강의 사이트가 만들어졌습니다. 라라캐스트를 만든 제프리 웨이(Jeffrey Way)는, 라라벨 하나로 본인의 풀타임 커리어를 만들었습니다. 테일러보다도 먼저 풀타임 커리어를 만든 겁니다. 라라벨을 직접 활용하는 고객이, 곧 라라벨 생태계를 키우는 선순환을 이끈 가장 강력한 채널을 만든 거죠.
그는 왜 자신을 '평범한 개발자'라고 부르는가
테일러가 자신을 설명할 때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굉장히 평범한 개발자라고 봐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PHP 생태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프레임워크의 창업자. 5,700만 달러 시리즈 A를 받은 회사의 대표. 그런 사람이 자신을 평범하다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 '평범한 개발자'라는 표현은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사업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평범한 개발자가 굉장히,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제가 평범하기 때문에, 저 같은 개발자들이 일을 빨리 끝내게 해 주는 도구를 만들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매일 8시간씩 쓰는 도구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일이에요. 그 사람이 일하는 시간 자체를 바꿔 주는 거니까요. 그런 도구는 정말 많지 않아요."
'천재만을 위한 도구'는 반짝반짝 빛날 수는 있어도 목표로 하는 풀이 좁습니다. 반대로 수십만 명이 매일 8시간 쓰는 도구는 조용해보여도 그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도구가 멋있어 보이는가, 아니면 그걸 만든 사람이 '천재'인가, 이런 문제는 결국 부차적입니다. 중요한 건 사용자의 하루가 실제로 바뀌었는가, 문제를 정말로 해결했는가입니다.
라라벨의 성장은 코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제프리 웨이의 교육 콘텐츠, 꼼꼼한 공식 문서, 라라콘에서 자란 커뮤니티가 함께 밀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의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개발자는 언제 제일 막히는가. 어디서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고, 어떤 지점에서 마음이 꺾이는가.
테일러를 오래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 중에는 스스로를 증명해 내겠다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라라벨을 만들기 시작한 2010~11년에도 PHP는 인기 있는 웹 언어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새롭고 화려한 언어들이 등장했고, PHP는 종종 낡은 선택지처럼 취급됐습니다. 하지만 테일러는 그 안에서 빠르게 앱을 만들 수 있는 길을 봤습니다.
"저는 라라벨과 PHP가 늘 웹 개발의 언더독이었다고 느꼈어요. 멋있는 언어가 아니라는 게 새삼스럽지도 않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이게 정말로 빠르게 앱을 만들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어요. 그 언더독 멘탈리티, 오케이, 내가 증명해 보이지, 그게 저를 여러 해 동안 끌고 갔습니다."
그에게 평범함과 언더독 의식은 따로 떨어진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더 새로운 언어와 더 근사한 도구를 말할 때, 그는 오늘도 묵묵히 코드를 고치고 깃허브에서 사람들의 요청을 검토했습니다. 빈 손님방에서 처음 라라벨 개발을 시작했을 때도, 라라벨 팀이 커져 50명 규모로 성장한 뒤에도 기준은 그대로였습니다.
회사는 세 번 달라졌지만 미션은 그대로였다
라라벨을 공개한 뒤 3년 동안, 테일러는 낮에는 회사 개발자로 일하고 밤과 주말에는 라라벨의 유지보수를 진행했습니다. 수익은 0. 완전한 무료 오픈소스였기 때문입니다.
돈은 없었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습니다. 그는 라라벨 포럼을 만들고 매일 들어갔습니다. 사용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새 기능에 대한 반응을 물었습니다. 포럼에 있는 사용자가 누구든, 초보자든 숙련자든간에, 포럼에서 오가는 얘기를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정성껏 답변하고 처리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분위기가 훗날 라라벨 커뮤니티이 커진 후에도 이어집니다.
"모든 사람은 무언가의 일부이고 싶어 합니다. 오픈소스에 기여하면 자기 이름이 기여자 목록에 올라가잖아요. 그 때 새겨진 이름은 영원히 남습니다. 자기가 실제로 이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끼면, 굉장히 강한 소속감과 커뮤니티 의식이 만들어집니다."
2014년, 그는 자신이 수동으로 처리하던 배포 스크립트에 유저 인터페이스를 입힙니다. 라라벨로 만든 앱을 웹에 올려 주는 도구, 라라벨 포지(Laravel Forge)였습니다. 출시 직전까지도 확신은 없었습니다. 고객이 얼마나 생길지 알 수 없었고, 직장을 그만두는 건 아직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출시 한두 달 만에 포지의 매출이 회사에서 받던 월급을 넘어섭니다.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먼저 압박감이 왔습니다. 고객 지원, 버그 수정, 기능 개선까지. 더는 투잡으로 라라벨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겁니다. 그렇게 라라벨 포지 출시 약 6개월 뒤인 2015년 1월 1일. 테일러는 마침내 풀타임 창업자가 됩니다.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저 혼자였어요. 프론트엔드도 제가 짰고, 백엔드도 제가 짰고, 고객 지원도 문서도 다 제가 직접 했어요."
첫 채용은 그로부터 2년쯤 지난 2016~17년 무렵이었습니다. 엔지니어 한 명.
"이건 제가 한 명백한 실수예요. 채용을 너무 미뤘어요. 오픈소스를 만든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 같은데, 자기가 만든 걸 누가 와서 망칠까 봐 너무 보호하려고 해요. 그러다 막상 직원 한 명을 뽑고 나니까 아, 진작 했어야 했네 싶더라고요."
혼자 운영하는 회사는 자유로웠지만 외로웠습니다. 모든 결정을 직접 할 수 있다는 건, 모든 불안을 혼자 떠안는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문제를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은 라라벨을 낳았지만, 그런 굳은 믿음이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일을 늦췄습니다. 그 '외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고 그는 인정합니다.
다음 문턱은 VC 투자였습니다. 그는 원래 투자 제안 메일을 거의 보지 않고 지웠습니다. 액셀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했다고 합니다.
"굳이 외부 자본을 받을 생각이 없었어요. 우리는 작은 팀이었지만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었거든요. 누가 와서 우리가 쌓아 온 걸 망칠까 봐 무서웠어요. 채용처럼 투자를 받는 일도 같은 두려움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용자들의 기대가 달라졌습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작동만 해도 감사한 도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면, 빠르고 매끄러워야 하며, 문서와 지원까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라라벨을 쓰는 사람들의 하루를 계속해서 바꿔내려면, 더더욱 큰 팀이 필요했습니다. 두려움보다 책임이 커지는 순간이 온 겁니다. 그래서 액셀(Accel)과 라운드를 진행합니다.
💡 액셀(Accel): 페이스북·슬랙·아틀라시안 등에 초기 투자한 실리콘밸리의 주요 벤처캐피탈. 한국에서는 토스의 시리즈 투자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액셀이 주도하는 라운드에 들어갔다는 건 글로벌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회사로 평가받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솔로 개발자에서 부트스트랩 회사로, 거기서 다시 VC 투자를 받은 회사로 옮겨 가는 일은 솔직히 말해서 세 단계 모두 완전히 다른 회사에 가까웠어요. 굴러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부트스트랩 회사 시절, 규모를 키워가기 시작했을 때의 조직은 거의 수평적이었습니다. 모두가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였고, 역할의 경계도 느슨했습니다. 그러나 10명에서 50명으로 가는 길에서는 관리자, 보고 체계, 의사결정의 층이 생겨났습니다. 이름은 같은 라라벨이지만, 운영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건 우리의 핵심 미션이에요. 멋진 개발자 도구를 만든다, 라라콘과 라라벨 라이브 같은 행사로 정말 좋은 커뮤니티를 가꾼다. 미션 자체는 처음과 같아요."
솔로에서 부트스트랩으로, 다시 투자받은 회사로. 겉모습은 세 번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중심에는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하루 8시간 동안 실제로 쓰이는 개발자 도구를 만드는 일입니다.
2015년 1월 1일. 미국 아칸소의 한 집, 빈 손님방 한 칸. 그날이 테일러 오트웰의 풀타임 첫날이었습니다. 화려한 사무실도, 동료도, 투자자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그냥 “빈 손님방(spare bedroom)”이었습니다.
모두가 더 화려한 도구와 더 새로운 언어에 꽂혀 있을 때, 테일러는 매일 같이 일하는 평범한 개발자들과 마주했습니다. 먼저 본인 스스로의 문제를 풀었고, 제일 어려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애썼으며, 실제로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회사의 모습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질문은 늘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매일 코드를 쓰는 평범한 개발자는 어디에서 막히는가.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가."
5,700만 달러의 투자는, 위 질문을 완전히 해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15년 동안 그 질문을 버리지 않았다는 흔적에 가깝습니다.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그의 깃허브 알림함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 테일러 오트웰이 직접 말하는 라라벨의 15년 역사, EO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