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넥스트에이지 싱크탱크 롱라이프랩을 운영하는 최연희입니다.
직장인 3대 난제. '점심 메뉴'입니다. 아마 두 시간쯤 뒤면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계실 것 같고요.
우리와 늘 함께 하는 이 고민, 나이가 들면 어떨까요?
일본에서는 끝없는 집밥 노동에 이름을 붙였는데요, '調理定年. 직역하면 조리 정년입니다. 요리 정년 혹은 조금 더 와닿는 표현으로는 집밥 정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법이나 제도로 정해진 정년은 당연히 아니고요, 집밥을 끝없이 책임져온 사람들에게 "집밥 노동도 내려놓을 시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생활 언어에 가깝습니다.
중요한건, 이 말이 단순히 밥상 차리기의 어려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집밥 정년'이라는 단어에 숨은 초고령사회 신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트렌드 스캔
👩🍳 '요리 정년' 일본에서 새로운 정년이 생기고 있습니다
고령사회와 여성의 삶을 오래 다뤄온 평론가 히구치 게이코는 몇 년 전 연하장에 적힌 친구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던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이 나이가 되니 그렇게 좋아하던 요리도 귀찮아졌다"고 썼다는 것입니다. 그 뒤 잡지에 이 이야기를 기고하자,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안심했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하쿠호도 생활총합연구소가 진행한 2025년 식생활에 관한 생활자 조사에서 '조리 정년은 손수 만든 요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 외식·테이크아웃·시판 식품 등을 활용해 식사하는 것'라고 정의하였는데요, 이 정의에 대해 66.1%가 찬성했다고 합니다. 전년 동월 조사와 비교하면 찬성률은 8.3%포인트가 늘은 수치라고 하고요.
흥미로운 건 이 조사가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요, 20대부터 60대까지 포함한 조사에서, 세 명 중 두 명이 "직접 만들지 않는 식사도 괜찮다"는 쪽에 가까운 선택을 한 셈입니다.
조리 정년은 고령자의 요리 포기 선언이라기보다,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집밥을 혼자 계속 책임지는 방식에서 직접 만들기, 사 먹기, 가져오기, 데워 먹기, 함께 먹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식생활 패턴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죠.

마음은 56세에, 몸은 63세에 먼저 지친다고 느낍니다
하쿠호도 생활총합연구소는 이 현상을 조금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사했는데요, 요리를 계속할 수 있는 수명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번째는 ココロの調理寿命, 마음의 조리 수명입니다. 요리를 하는 것이 마음으로 귀찮고 부담스러워져,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시점이고요, 두번째는 カラダの調理寿命, 몸의 조리 수명입니다. 체력적으로 요리가 힘들어져, 만들기 어렵다고 느끼는 시점입니다.
2024년 진행된 이 조사에서 응답의 평균값은 마음의 조리 수명은 56세 5개월, 몸의 조리 수명은 63세 1개월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그쯤 되면 요리를 계속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라고 느끼는 때인 것이죠.
재밌는 항목도 있는데요, 대량을 주문할 수 없게 되는 '대량 주문 수명'은 44세 1개월, 줄을 서서까지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줄서서 먹는 라면 수명'은 45세 3개월, 불고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져 먹고 싶지 않게 되는 '불고기 수명'은 50세 11개월로 나타났습니다.
이 대목에서 조리 정년의 현상은 단순히 집밥 노동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나이 듦에 따라 달라지는 입맛이나, 식생활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현상의 일부로 느껴지는데요.
다시 말해 조리 정년은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그만두는 사건"이라기보다, 마음과 몸, 취향과 생활 리듬이 서로 다른 속도로 바뀌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고령기에 들어서면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덜 만들게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계속 잘 먹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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