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스타트업 창업자나 연구소장님들과 미팅을 해보면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핵심 파이프라인의 물질특허(원천 화합물에 대한 특허)를 등록받았으니, 이제 임상과 자금 조달에만 집중하면 되겠죠?"
하지만 시리즈 B 이상의 투자 라운드나 글로벌 기술이전(L/O)을 위한 IP 실사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반드시 이렇게 묻습니다.
"이 물질특허가 만료된 이후의 방어 전략은 무엇입니까?"
특허권의 존속기간은 원칙적으로 출원일로부터 20년입니다. 그러나 의약품은 기나긴 임상시험과 식약처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막상 상용화되어 시장에 나오는 시점에는 실질적인 독점 기간이 5~7년밖에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단일 물질특허 1건에 회사의 명운을 거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성공적인 바이오텍은 R&D 초기 단계부터 개량특허를 연속적으로 출원하여 시장 독점 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반드시 함께 설계합니다.
특허 절벽(Patent Cliff)을 방어하는 합법적 포트폴리오
물질특허가 만료되는 순간, 값싼 복제약(제네릭)들이 시장에 쏟아지며 오리지널 신약의 매출과 점유율은 수직 하락합니다. 이를 '특허 절벽'이라고 부릅니다. 에버그리닝은 기존 물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효과나 형태를 찾아내어 후속 특허를 촘촘하게 엮어내는 합법적인 방어 전략입니다.
한정된 R&D 예산을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다음의 실무 프레임 중 자사의 임상 데이터로 입증 가능한 영역을 선택해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제형 변경: 매일 먹는 알약을 한 달에 한 번 맞는 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바꾸어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개선하는 방식입니다. 흡수율이나 지속성 관련 수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신규 용도 발굴: 기존 약물이 A 질환(예: 심혈관)에 쓰였는데, 연구 과정에서 전혀 다른 B 질환(예: 발기부전)에도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여 새롭게 권리화하는 것입니다.
염(Salt) 및 결정다형 변경: 약물의 용해도를 높이거나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화학적 구조의 일부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복합제제 및 제조공정: 두 가지 성분을 섞어 시너지(상승 효과)를 내거나, 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생산 방법을 권리화합니다.
승패를 가르는 기준: “단순 설계 변경”을 넘는 현저한 효과
특허청 심사관은 개량특허 심사 시 "기존 약물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독점권을 또 주면 과도한 혜택 아닌가?"라는 시각으로 매우 엄격하게 접근합니다. 단순히 "구조를 바꿨다"거나 "제형을 변경했다"는 주장만으로는 진보성 부족 통지를 받기 십상입니다.
결국 방어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은 '현저한 효과'를 입증하는 명확한 수치 데이터입니다. 국내 한 제약사가 글로벌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고혈압 약물을 상대로 펼친 에버그리닝 우회 전략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들은 오리지널 약물과 결합하는 '염'의 종류를 바꾸면서, 단순히 종류만 변경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변경된 약물이 빛에 노출되었을 때 분해되지 않고 버티는 '광(光)안정성'이 오리지널 대비 월등히 뛰어나다는 대조군 비교 실험 데이터를 들이밀었습니다. 법원은 이 데이터가 기존 물질 대비 질적으로 다르거나 양적으로 현저한 차이를 입증했다고 보아 진보성을 인정했습니다.
연구비와 특허 범위의 줄다리기: 타임라인 역산 설계
스타트업은 모든 아이디어를 특허로 낼 수 없습니다. 연구개발비용과 국내외 특허 출원 비용 사이에서 치열하게 자원을 배분해야 합니다. 따라서 물질특허 만료일을 기준으로 타임라인을 '역산'하여 R&D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경영진의 역할입니다.
핵심 파이프라인의 후속 임상 진입 시점, 허가 예상 시점, 원천 특허 만료 시점을 나란히 놓고 보호 공백 구간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개량 유형 하나를 타겟팅하여, 그에 맞는 제한된 비교 실험(대조군 설정 등)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바이오 IP 포트폴리오는 연구소 한구석에 쌓아두는 장식용 액자가 아닙니다. 회사의 런웨이를 연장하고 기술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복제약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허둥지둥 방어책을 찾으면 이미 늦습니다. 이러한 에버그리닝 포트폴리오는 복제약이 시장에 들어오기 직전이 아니라, 후속 효능·제형 데이터가 막 나오는 지금 단계에서 점검하는 것이 가장 비용 효율적입니다.
💡 출원 전 체크리스트
우리 회사의 핵심 물질특허의 실질적인 잔여 존속기간(특허권 만료 시점)을 경영진과 연구진이 정확히 공유하고 있는가?
현재 도출된 R&D 실험 결과 중 후속 특허(신규 용도, 제형, 염 변경 등)로 연결할 수 있는 '현저한 효과' 데이터가 존재하는가?
후속 출원 명세서에 들어갈 실시예(실험 데이터)가 오리지널 약물 대비 객관적인 비교 우위를 증명하도록 대조군이 올바르게 설정되었는가?
투자 실사(IP Due Diligence)를 대비해, 물질특허 만료 후 시장을 방어할 에버그리닝 포트폴리오 로드맵이 문서화되어 있는가?
새로운 제형이나 적응증을 논문이나 학회(포스터)에 공개하기 전, 특허 출원을 먼저 완료하여 신규성 상실 리스크를 차단했는가?
[저자 소개] 석종헌 변리사 | 특허법인 린 파트너 (15년 차 바이오·화학 전문)
고려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지난 15년간 바이오, 제약, 소재 스타트업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습니다. 단순한 등록을 넘어 정부 과제 대응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명세서 설계를 전문으로 합니다.
📧 의뢰 및 강연 문의: patentseok@naver.com 📞 010-6663-8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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