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이나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독창적인 미생물 균주를 발견하면 즉시 특허 출원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팀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공인 기관에 균주를 맡기는 '미생물 기탁' 절차입니다. 까다로운 검증 과정과 비용, 그리고 시간 소요 때문에 출원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모든 신규 균주를 반드시 기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허법이 요구하는 '재현성'의 기준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기탁 없이도 얼마든지 강력한 특허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스타트업이 자원 배분을 최적화하기 위해 알아야 할 균주 특허 실무 전략을 공유합니다.
창업자가 빠지기 쉬운 '미생물 기탁'의 두 가지 오류
많은 기술 창업자가 균주 특허를 준비할 때 극단적인 두 가지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첫 번째는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무조건 기탁부터 해야 안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초기 스타트업의 소중한 런웨이(Runway)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균주를 바탕으로 개량한 유산균이라면, 굳이 비용을 들여 기탁하지 않아도 명세서 기재만으로 방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반대로 "우리 연구원이 토양에서 직접 분리해 낸 균주이니, 분리 방법만 잘 쓰면 기탁은 안 해도 되겠지"라는 낙관입니다. 이 경우 십중팔구 특허청으로부터 기재불비 통지를 받게 됩니다. 기재불비란 특허청이 *"이 설명과 데이터만으로는 제3자가 똑같이 재현하기 어려우므로, 회사가 독점하려는 기술의 울타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문제입니다. 자연계에서 우연히 분리한 균주는 타인이 똑같이 찾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험비와 특허범위 사이의 자원 배분 프레임워크
초기 바이오 벤처는 실험 비용을 쏟아부어 완벽한 데이터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청구범위(회사가 독점하려는 기술의 울타리)를 선점할 것인가의 기로에 섭니다. 미생물 기탁 없이 특허를 출원하여 자원을 아끼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출발 균주의 공지성(Availability): 실험의 시작점이 된 균주를 ATCC나 KCTC 등 공인 기관에서 누구나 쉽게 분양받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득 방법의 재현성(Reproducibility): 공지된 출발 균주를 어떻게 변이시키고 배양했는지 명세서만 보고도 통상의 기술자가 똑같이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확실하다면 특허법상 기탁 의무가 면제됩니다. 따라서 무작정 균주를 기탁하기 전에,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가 '글로 서술하여 재현 가능한 수준'인지 먼저 평가하는 프레임워크를 거쳐야 합니다.
[대표 사례] 공지 균주 개량으로 기탁 비용을 아낀 바이오 벤처
실제 유익균 기반의 기능성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던 바이오 스타트업 A사의 사례입니다. A사는 특정 유산균의 효능을 극대화한 변이 균주를 발견하고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신규 균주라는 생각에 수백만 원의 비용과 수개월이 걸리는 미생물 기탁을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실무 검토 결과, 해당 균주는 시판 중인 공지 균주를 출발점으로 삼아 특정 열충격(Heat-shock) 조건과 특수 배지에서 선발된 것이었습니다.
A사는 기탁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명세서의 실시예(명세서에 들어가는 실제 실험 또는 구현 사례)를 극도로 보강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배지 구성 성분의 정량적 수치, 배양 온도 변화 그래프, 그리고 균주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16S rRNA 서열 분석 데이터를 꼼꼼히 채워 넣었습니다. 그 결과, 기탁 없이도 성공적으로 특허 권리를 등록받았으며, 아낀 자원을 후속 파이프라인 확장 연구에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추후 시리즈 A 투자 유치 전 IP 실사에서도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좋은 지표가 되었습니다.
출원 전 체크리스트
[ ] 우리 기술의 출발점이 되는 균주를 외부 공인 기관(ATCC, KCTC 등)에서 누구나 쉽게 분양받을 수 있습니까?
[ ] 균주를 수득하거나 변이시키는 과정의 배지 조건, 배양 온도, 선발 기준이 제3자가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치화되어 있습니까?
[ ] 해당 균주만이 가지는 독창적인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교 실험 데이터(실시예)를 갖추었습니까?
[ ] 이번 특허 출원 전략이 초기 R&D 예산 배분 및 향후 투자 유치 로드맵과 정렬되어 있습니까?
[ ] 기탁 없이 진행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심사관의 기재불비 지적에 대응할 서열 데이터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초기 바이오 스타트업에게 특허는 단순한 법적 권리 보호를 넘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는지 보여주는 경영 전략의 결과물입니다. 기탁 여부를 결정하는 것 역시 법률적 기계적 판단이 아니라, 우리 제품의 출시 타이밍과 R&D 예산의 완급을 조절하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저자 소개]석종헌 변리사 | 특허법인 린 파트너 (15년 차 바이오·화학 전문)
고려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지난 15년간 바이오, 제약, 소재 스타트업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왔습니다. 단순한 등록을 넘어 정부 과제 대응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명세서 설계를 전문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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