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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화 님은 전 토스 프로덕트 디자이너이자 영어회화 앱 '엘스(Else)'의 공동창업자예요. 그 전에는 타로·사주 앱 '우주 고양이 보라'로 앱스토어 1위를 찍고 가입자 120만 명, 연매출 20억 원을 만들었어요. 디자이너 출신 창업가 4년 차로, 곧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라는 책도 냅니다.
요즘 AI로 디자인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시대에, 영화 님은 오히려 화이트보드와 손으로 그리는 스케치를 더 자주 씁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미국에서 3개월간 비싼 수업료를 내고 깨달은 "기능 다 넣으면 망한다"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운세에서 영어 회화로
Q. 토스를 나와서 창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토스에 2019년에 입사했어요. 거기서 사내 도구 디자이너로 처음 일을 시작했고, 한 4~50명 정도 규모로 커질 때까지 있다가 나왔어요.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고 개인적으로도 엄청 성장했어요. 그런데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게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아, 퇴사해야겠다"고 결정한 거죠.

Q. 첫 사업이 우주 고양이 보라였죠. 그건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일단 돈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운세 도메인에서 플레이를 하게 됐고, 타로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어요. 전화로 타로를 봐주는 서비스였는데, 타로는 거의 제가 봤거든요. 그래서 한 3일 만에 매출이 바로 났어요. 그런데 이 모델로는 유닛 이코노믹스(개당 수익 구조)가 안 맞아서 유지할 수 없겠더라고요. 대신 사용자를 좀 더 싸게 데려올 방법이 없을까 해서 시작한 게 우주 고양이 보라라는 타로 앱이었어요.

이미지 출처 : 강영화 님 제공
너무 재밌었던 게, 900원짜리 유료 상품 하나를 냈는데 그게 거의 하루 만에 매출이 나는 거예요. 붙이자마자 바로요. 아, 이 시장은 돈이 되는 시장이구나 알게 됐죠.
Q. 이후에 사주를 넣으면서 본격적으로 잘됐다고 들었어요.
운세 시장에서 이미 퇴사하신 분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이 "한국에서 사주를 넣으면 잘 될 거다"라는 얘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2024년 초에 매출이 많이 나면서 같이 일하던 공동 창업자분들도 다 같이 퇴사를 하고 여기에 올인하자고 결정했어요.

결과적으로 잘됐어요. 앱스토어 1위도 찍어보고, 지금도 120만 명 정도 가입하신 제품이에요. 연매출은 작년 기준으로 한 20억 정도가 나왔고요.
Q. 그렇게 잘되는 사업이었는데 왜 다음 아이템을 찾게 됐어요?
막상 계속 하려고 보니까, 제가 창업은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하기가 싫은 거예요. 집에 빨리 가고 싶고, 뭔가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세 도메인이 돈은 잘 벌리는데, 제가 매일 쓰는 제품도 아니고 진짜 풀고 싶은 문제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하면서 매일 겪는 문제, 진짜 제가 쓸 만한 걸 만들어보자고 다른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어요.

2025년 초부터 엘스라는 앱을 운영하고 있어요. 아예 처음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자고 결정해서 팀원들과 함께 3개월간 미국에 갔어요. 그런데 사실 엄청 잘되진 않았어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돌아왔고, 지금은 한국에서 쭉 진행하고 있어요.
Q. 엘스는 어떤 앱인가요?
직장에서 영어를 써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어 회화 앱이에요. 보통 영어 회화 앱이라고 하면 튜터링을 하거나, 쉬운 앱들을 많이 쓰잖아요. 듀오링고 같은 것들요. 그런데 그런 앱들이 사실 나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까, 그냥 제너럴한 영어를 배우게 되는 거예요.

좀 더 나와 관련된, 내 맥락과 딱 맞게 학습할 수 있는 게 너무 AI로 잘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콘텐츠를 소싱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관점에서 만들어 가고 있어요. 처음엔 직장인을 폭넓게 대상으로 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로 타깃을 좁혔고요. 지금은 한 14,000명 정도의 고객이 있는 앱이에요.
디자이너가 AI를 쓰는 법
Q. 요즘 AI를 어떻게 쓰고 계세요?
저는 디자이너인데, 디자이너분들이 AI를 워크플로우 자체가 좀 파편화돼서 쓰시는 것 같아요. 저도 AI 너무 쓰고 싶은데 딱 적절한 도구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 워크플로우를 신경 써서 다 만들어 놓고 하자니 저의 리소스가 너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최대한 내가 생각했을 때 워크플로우 안에서 AI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곳들을 엄청 찾아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지금 쓰는 도구는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챗 UI를 쓰고요. 그리고 클로드 디자인과 클로드 코드를 많이 씁니다.
Q.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스피킹 클럽'이라는 스터디 그룹을 운영했는데, 거기 분들께 상장을 드려야 했어요. 디자인을 해야 되는데 디자인 리소스가 많이 없으니까, 좀 힙한 상장을 만들어보자고 AI랑 같이 시작했어요.

레퍼런스를 받아서 제미나이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좀 수정해봐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적당히 상장 같은 느낌의 내용이 채워졌어요. 그다음에 피그마에서 텍스트를 다 분절시킨 다음에, 좀 더 예쁜 폰트들을 찾아서 각각 적용한 거예요. 구성은 비슷한데 완성도 자체가 많이 올라간 게 비교해 보시면 딱 보이실 거예요.
Q. 핀터레스트 같은 레퍼런스 사이트랑 AI를 어떻게 같이 쓰시는 거예요?
핀터레스트에 자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 넣어서 "어떻게 구조를 짜면 좋을까, 이미지 만들지 말고 구성 계획만 해줘"라고 해요. 왜냐면 따로 프롬프트를 안 하면 바로 이미지를 만들어버리거든요. 제가 마음에 안 들게요.

꼭 클로드 코드에 있는 플랜 모드처럼, 구성을 먼저 텍스트로 짜게 한 다음에 작업을 진행해요. "이렇게 하면 더 힙할 것 같습니다"라고 저한테 얘기하면, 그걸 가지고 "그럼 이미지를 만들어줘"라고 하면 한번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럼 제가 그걸 피그마에 옮겨서 구글 폰트나 눈누에 있는 폰트를 찾은 다음에 배치는 따로 하는 식으로 작업해요. 영문이 예쁘다 보니까 영문 폰트를 많이 찾아서 진행했어요.
Q. 결국 AI한테는 초안을 맡기되, 마감은 사람이 하는 형태군요.
맞아요. 전반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워크플로우를 머릿속에 두고, 그중에서 AI의 상상력을 쓸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쓰고요. 완전 엣지 있고 딱 눈으로 봤을 때 만족스러운, 물성이 괜찮게 디렉팅해야 되는 부분은 사람이 가져간다라고 보시면 돼요.

스티커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티셔츠 굿즈 겸 스티커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쓸 만한 문구도 추천해 달라고 했고, 일러스트도 넣어 달라고 해서 귀여운 고양이가 만들어졌어요. 그다음에 제가 피그마에서 또 수정을 해서 완성했어요.
Q. 일러스트는 AI에서 벡터화도 되잖아요. 왜 굳이 피그마로 다시 가져오시는 거예요?
일단 완성도 자체가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리고 벡터화를 해 주긴 하는데, 인쇄소 같은 데 맡기려면 파일이 굉장히 정교화되어 있어야 되거든요. 그대로 넘기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어쨌든 피그마든 일러스트레이터든 작업으로 옮겨야 되는 부분이 있어서, 가져와서 작업하게 됐어요.
AI한테 화면 맡기는 법
Q. 굿즈 디자인에는 AI를 쓰시는 게 잘 보이는데, 실제 앱 화면을 디자인할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쓰세요?
한 2~3주 전에 클로드 디자인이 새로 나와서, 그 사이에 열심히 써봤거든요. 잘해주더라고요. 비슷하게 제가 가지고 있는 워크플로우에서 일부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건 맡겨보자고 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초안은 AI가 만들어주고, 그다음에 제가 디테일한 부분을 잡는다고 보시면 돼요.

이미지 출처 : claude.ai/design
Q. 클로드 디자인을 써보니 어떤 점이 가장 좋았어요?
이걸 쓰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클로드 디자인이 질문을 해준다는 거예요.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게 필요해? 이런 디자인 혹은 저런 디자인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이런 질문을 해주니까 저도 다시 한번 이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거에 따라 답변하다 보니까 디자인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아예 이 AI가 만들어준 워크플로우를 나의 디자인에도 적용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쓰고 있거든요.
Q.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했어요?
워킹홀리데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제가 PRD(제품 요구사항 문서)를 먼저 넣었어요. "워킹홀리데이 맞춤 실전 영어 앱이다, 이런 목적이고, UX 요건은 이러이러하게 구성되어 있다, 여러 기능들이 있을 것이다"를 텍스트로 정리한 거죠.

그 정리한 텍스트를 제미나이에 넣고 텍스트 바탕으로 진행하다가, 그다음에 피그마에서 초안을 만들었어요. 그 초안을 PRD와 같이 다시 클로드 디자인에 전달했더니, 꽤 그럴싸한 앱 화면이 나오더라고요.
Q. 피그마에서는 와이어프레임 비슷하게 만들어서 PRD와 같이 넣었더니, 완성도 있는 화면이 나왔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그리고 이렇게 나온 화면이 좋은 게, 다 클릭이 되는 거예요. 이런 걸 바꾸면 다 바뀌어요. 저는 PRD에 각 항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 넣었는데, 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은 알아서 구현해버려요. 바리스타, 리테일, 생존 영어 같은 항목에 들어가는 내용들도 다 각각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서 바꿔서 넣어주거든요.

그럼 이걸 보고 저도 상상력이 자극되어서 "아,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넘어가야겠다"라고 생각해서 UI를 최종 확정해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피그마에서 플로우 차트를 그리고, 그 플로우 차트를 가지고 엔지니어분과 소통하고, 제가 직접 구현하기도 하는 식으로 분화되어 있어요.
Q. 왜 이렇게 AI를 디자인 프로세스 곳곳에 녹여서 쓰시는 거예요?
일단 저는 너무 개발자들이 부러웠어요. 왜냐하면 엔지니어분들의 생산성이 말도 안 되게 높아졌거든요. 이런 부분을 디자이너도 따라갈 수 있게끔, 나도 가능한 부분들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저희는 창업 팀이고 완전 초기 팀이다 보니까 리소스가 많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리소스를 최대한 레버리지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해서 진행하는 것도 있어요.
Q. 디자인뿐 아니라 분석 같은 것도 AI에 맡기시나요? 헤르메스 AI를 팀에서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헤르메스 에이전트를 엄청 열심히 쓰거든요. 팀 내에서요. 그냥 헤르메스에 시키면 알아서 잘해줘요. 앰플리튜드 같은 분석 도구도 다 권한 주고 해서, 애초에 그런 건 따로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전에는 크롤링을 해서 직접 만들어볼까 해서 실제 앰플리튜드 로그를 먹여서 정량 분석을 시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걸 굳이 이제는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시간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Q. AI가 결국 디자이너를 대체할까요?
처음에는 저도 "AI가 대체하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클로드 디자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분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던 분의 인터뷰를 봤는데, 제니 웬이라는 클로드의 헤드 디자이너가 계세요. 그분도 똑같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디자이너분들이 당분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디자이너 중에서도 채용이 될 만한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들, 혹은 엄청 열정 있는 주니어분들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아직까지는 룸(여유 공간)이 남아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꽤 많이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화이트보드를 놓지 않는 이유
Q. 디자인부터 분석까지 AI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쓰시는데, 사무실 뒤에 보면 화이트보드에 손글씨가 엄청 많이 써 있더라고요.
저희는 아날로그, 손으로 써야 하는 것들에 가치를 많이 두는 편이에요. 저희 워크플로우는 일단 다 같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이 방법대로 해야겠다"는 논의를 많이 한 다음에, 그걸 가지고 일부 초안을 디자이너가 와이어프레임과 실제 앱처럼 보이는 완성본 사이 어딘가에 디자인해요. 엔지니어들은 기술적인 의사 결정을 하고요. 그 사이에 저는 에이전트랑 같이 개발을 하고 있어요. 완성도 높은 화면 디자인은 제가 직접 하고요.

이 모든 흐름의 출발점은 결국 초반의 의사 결정이거든요. 이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고, 도구를 쓴다면 화이트보드나 포스트잇 같은 걸 쓰는 게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해줘요. 그 도구를 잘 활용해서 사고 정리하는 과정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하게도 AI를 엄청 많이 쓰지만, 이 부분은 내가 완전히 머릿속에 잡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희 팀 내부에 전체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Q. 디자인 의사 결정을 할 때도 손그림으로 먼저 하시나요?
네, 항상 손으로 먼저 해요. 저희가 물리 칸반을 오랫동안 썼었고, 지금은 이거에서 더 단순화해서 그냥 프로젝트만 몇 개 써놓고 말거든요. "어떤 일을 진행할 거야"라는 걸 그냥 보드에 항상 써놓고 보게 해요.

저희는 리모트로 일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다 출근해서 일하는데, 그때 나오는 티키타카, 대화로서 나오는 창의력에 대해서 더 높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아직 손으로 디자인하거든요. 머릿속으로 딱 그려지는 게 있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진행이 잘 안 되더라고요.
미국에서 망한 이유
Q. 이렇게 화이트보드부터 신중하게 시작하시는데도, 정작 AI 때문에 한 번 크게 망해보셨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엘스 첫 버전을 작년 3월부터 5월까지 만들었어요. 그다음 6월부터 한 2주 정도 잡고 두 번째 버전을 만들었고요.
첫 버전에서 저희가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기능이고, 사용자가 원할 정도의 퀄리티가 안 나왔어요. 그러면 사용자가 만족 못 해서 안 쓰는 거예요. 저희가 미국에 가서 3개월 정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결국 흔적으로는 남아 있지만 사용자한테 딜리버리되고 사용자가 쓰지 않는 걸 보면서 뼈아픈 실패를 겪었어요.

Q. 그래서 두 번째 버전은 어떻게 다르게 만드셨어요?
저는 항상 말해요. "그냥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 결국에 사람들이 쓰게 만들어야 된다." 이게 저희가 이 과정 전체를 겪으면서 배운 거예요.

보시면 알겠지만 첫 버전에는 결제할 수 있는 피처도 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버전은 결제도 없어요. 그냥 일단 나가서 핵심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지만 보려고 정말 노력했고, 더 빼고 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더 망할 것 같아서요. 사용자분들이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쓰는 걸 보면서 만들려고, 절대 더 안 넣고 더 쓰시게 만들려고 했어요.
Q. 그러니까 생산성은 높아졌고, 화면도 많이 만들 수 있고, 실험도 가능하지만, 결국 안 쓰는 예쁘기만 한 제품이 양산되는 상황인 거네요.
맞아요. 생산성이 올라간 만큼 우리도 더 발라내는 눈이 중요한 것 같아요.
Q. 바이브 코딩으로 제품 만든 분들이 영화 님께 피드백을 요청한다고 하셨죠. 어떤 피드백을 가장 많이 주세요?
거의 "유저분들을 만나라"고 말씀드려요. 만나면 배우는 게 굉장히 클 거라고요. 실제로 너무 놀랐던 게, 오문님이라고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분이 계세요. 인게이지 랭크(Engage Rank)라는 툴을 만드셨어요. 이분은 그냥 인스타툰 그리시는 분이거든요.

이번 설 연휴 때 만드신 거예요. 한 3개월 정도 됐는데,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클로드 코드로 도구를 만들고 사전 판매를 했더니 돈이 조금 벌리더래요. 그런데 어떻게 더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서 저한테 가져오신 거예요.
Q. 어떻게 피드백을 드리셨어요?
일단 유저를 만나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인터뷰하는 방법을 조금 알려드렸어요. 어렵지 않게요. Y 컴비네이터에 'How to talk to users'라는 영상이 있거든요. 그거를 보여드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이걸 쓰고 있는지를 파악해보세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알아서 AI랑 같이 질문지를 다 만든 다음에 실제로 10명 정도를 만나시니까, 확실히 제품이 디벨롭되어 보이더라고요. 이분은 디자인을 배우신 것도 아니고, 회화 그리시는 분이거든요. 코딩을 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뭐가 필요하고, 뭐가 어려운지를 파악하고, 실제 행동 기반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니까 "아, 어떻게 해야겠다"는 방향이 나오신 거예요.
Q. 토스에서도 비슷한 인사이트를 얻으신 경험이 있다고요.
토스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별로 임팩트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용자가 이걸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건 임팩트가 컸어요. 예를 들어 "송금이 너무 불편해.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야?" 이런 내용이 훨씬 더 임팩트가 크지, "내가 이걸 할 수 있어서 개선하는 거"는 생각보다 임팩트가 작더라고요.

결국 사용자가 어떤 걸 불편하게 생각하고 어떤 걸 어렵게 생각하는지를 볼 수 있는 눈은 사람만 볼 수 있거든요. 사람이 더 이거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어요. 공감력을 가지고 다가가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고, 더 좋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AI한테 못 맡기는 일
Q. AI 시대에도 결국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왜 그럴까요?
디지털 제품은 결국 쓰는 사람이 인간이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해관계자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높은가가 결국 성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빠져 있으면 별로 와닿지 않는 무언가를 내기가 쉬운 것 같아요. 딸깍의 함정 같기도 한데, 만들어지니까 실제 도움이 될 것 같이 느껴지는 거죠. 일단 만들어 놓고 완성이 될 것 같으니까요.

클로드 코드로 디자인하면서 저도 이런 함정에 빠지는 적이 종종 있었거든요. 너무 쉽고 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완성도 있게 되는 제품이고, 어느 정도 완성도 있게 되는 기능이에요. 이런 부분을 견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엘스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다고요.
저희가 엘스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엔 콘텐츠 만드는 걸 자동화해버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카드 뉴스 형식이 많거든요. AI랑 같이 하면 콘텐츠 만들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래서 해보려고 했어요.

이미지 출처 : @else.korea, Instagram
그런데 결국 이걸 하는 사람은 저희 마케터인데, 그분이 가진 감각이 아니면 이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포기했어요.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써야 되는 부분은 사람한테 맡겨서, 실제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마음에 드는 걸 만들어야 한다고요.
비슷한 예시로, 엘스에 매일 세 개의 학습지를 뽑아서 보여주는 기능이 있어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인간 지능으로 하고 있어요. 대신 큐레이션하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면 안 되니까, 쉽게 할 수 있도록 마케터분이 어드민에 들어가서 직접 어드민을 구현해보시고, 더 잘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가시는 거예요. 본인이 학습하고 새롭게 배우면서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사람이 하게 두고, AI가 잘할 수 있는 것 혹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건 도구를 만들어서 해결하고요. 결국 사람들에게 닿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돈도 내고 만족하면서 쓰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이런 감각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좋은 걸 많이 보라고 말씀드려요. 좋은 작품일 수도 있고, 좋은 앱일 수도 있어요. 그런 걸 많이 써보고 "이거 내가 왜 좋아했지?"라는 걸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그걸 텍스트로 정리하고 더 디테일하게 생각해보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말씀드리거든요.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을까요?
저는 AI를 써서 다른 분들이랑 다르게 팬시하거나 압도적으로 새로운 걸 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래도 제 워크플로우를 공유드리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걸 밀고 나가도 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거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그냥 안 해도 되고요. 꼭 모든 사람이 간다는 방향대로 안 가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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