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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을 줄여줄 거라고 믿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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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미국의 한 IT 기업이 직원들에게 AI 도구 구독권을 나눠줬다. 강제가 아니었다. 쓰고 싶으면 쓰고, 아니면 말고. 그런데 8개월 뒤 UC 버클리 연구팀이 직원들의 업무를 들여다본 결과는 뜻밖이었다. 일이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종류의 일을, 더 긴 시간 동안 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 연구를 읽다가 두어 번 픽, 웃었다. 너무 내 얘기여서. 클로드, 챗지피티, 매너스, 제미나이, 노션 AI를 쓰기 시작하면서 예전엔 못 썼던 글을 더 많이 더 빠르게 쓰고 있다. 그리고 일도 더 많이 한다.

AI가 이렇게 일을 잘 해 주니 우리 시간이 남을 거라는 기대, 다들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과 좀 다르다. 그 기대는 어디서 나왔고, 왜 여전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하긴 컴퓨터 나왔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이게 이 글의 질문이다.

 

AI가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늘린다

버클리 경영대학원 아루나 랑가나탄(Aruna Ranganathan) 부교수와 박사과정 연구자 싱치 매기 예(Xingqi Maggie Ye)는 2025년 4월부터 12월까지 미국의 200명 규모 IT 기업을 8개월간 지켜봤다. 직접 사무실에서 관찰하고 사내 협업 툴 데이터를 분석하고 40번 이상 인터뷰했다. 결론은 세 가지였다.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맡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일하는 시간대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모두 회사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직원들이 스스로 그렇게 했다.

한 직원의 말이 이 연구 전체를 요약한다. “AI 쓰면 생산성이 오르니까 시간을 아껴서 좀 덜 일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일을 덜 하게 되지 않았어요.” 이 말은 어떤 이론이나 마케팅 문구로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에 “집약화(intensifica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AI 덕분에 성과가 오른 건 맞다. 문제는 그 성과가 여유 시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다. 더 잘할수록 더 많이 하게 된다.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가 AI로 코드를 짜기 시작하고, 연구자가 엔지니어링 업무까지 흡수한다. 역할 경계가 흐려지고, 그 빈자리를 더 많은 일이 채운다.

 

왜 자발적으로 더 많이 일하는가

이걸 개인의 욕심이나 의지 문제로 볼 수 없다. 연구팀은 두 가지 구조적 압력을 찾아냈다.

첫 번째는 “할 수 있으니까 해야 한다”는 논리다. AI가 어떤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 그걸 하지 않으면 게으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시간이 없어서, 내 영역이 아니라서 못 했던 일들이 갑자기 “안 할 이유가 없는” 일이 된다. 이 기업에서 기획자가 AI로 코딩을 시작한 것도 이 구조 그대로다. “할 수 있게 됐으니까 해야 한다”는 순간이 온 거다.

두 번째는 경쟁 압력이다. 옆자리 동료가 AI를 써서 더 많은 일을 맡기 시작하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기대치를 높이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팀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불과 몇 달 만에 “AI로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됐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집단적 압력이 경계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Upwork의 2024년 조사에서 AI 도구를 쓰는 직원의 77%가 “적어도 한 가지 방식으로” 업무량이 늘거나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다만 이 조사는 프리랜서 플랫폼 Upwork이 의뢰한 거라, “프리랜서를 더 쓰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버클리의 독립 연구와 방향이 같다는 건 의미 있다.

 

세탁기가 빨래를 늘린 것처럼

어쩌면 이건 새로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역사학자 Ruth Schwartz Cowan은 More Work for Mother(1983)에서 세탁기가 보급된 후 오히려 빨래 횟수가 늘어났다고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청결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PC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서 작성이 빨라지자, 써야 하는 문서 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구가 가능성을 넓히면 그 가능성이 새로운 기대치가 되고 결국 해야 하는 일의 양이 늘어난다. AI도 같은 구조다. 버클리 연구는 이걸 처음 만들어낸 게 아니라, 8개월간 현장에 붙어서 처음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 믿음이 살아남은 이유

그렇다면 왜 “AI가 일을 줄여준다”는 기대는 이렇게 오래갔을까.

간단하다. 그 믿음이 이익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AI 도구를 파는 기업들은 “시간 절약”이 구독료를 정당화하는 가장 쉬운 말이다. 컨설팅 회사들은 AI 전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인력 효율화”를 팔아야 한다. 미디어는 복잡한 현장 연구보다 “생산성 300% 향상” 헤드라인이 훨씬 잘 클릭된다.

음모 같은 게 아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가리킨 결과다. 그리고 그게 쌓여서 “AI 생산성 신화”가 됐다. 누구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닌데, 전체로 보면 거짓말이 되는 그런 이야기.

Kosmyna 외(2025)의 MIT 연구는 AI를 써서 글을 쓴 사람들에게서 “인지 부채(cognitive debt)”를 뇌파로 측정했다. AI를 쓴 그룹은 뇌 활동이 세 그룹 중 가장 낮았고, AI 이용자의 83%가 방금 자기가 쓴 글에서 한 문장도 기억하지 못했다. 바쁘고 빠르게 산출물을 만들고 있지만, 정작 뇌는 덜 쓰고 있는 상태. 효율적이라는 느낌과 실제로 일이 줄어드는 것은 완전히 별개다.

 

조직도, 시장도, 설계하지 않은 것

버클리 연구팀이 내놓은 해법은 “AI Practice(행동원칙)”다. 중요한 결정 전에 잠깐 멈추는 시간을 갖고, 업무 전환을 줄이고, 사람과의 연결 시간을 지키라는 것. 회사가 도구는 쥐여줬지만 쓰는 방식에 대한 규칙은 만들지 않았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걸음 더 가야 한다. 조직의 설계 실패이기 이전에, 이건 시장 구조의 문제다.

AI 도구를 파는 회사들은 사용자가 AI 행동원칙을 잘 지키도록 도와줄 이유가 없다. 많이 쓸수록 구독료가 들어온다.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AI로 일을 더 많이 해내는 건 단기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다. 연구팀 스스로도 “이 집약화 현상이 경영자 귀에는 꿈 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고 썼다. 번아웃은 나중의 일이고 성과는 지금 눈에 보인다.

Aflac 2025 직장인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직장인 번아웃은 6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고, Z세대의 74%가 중간 이상의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 Deloitte 2025 Global Human Capital Trends 보고서도 AI가 번아웃, 고독감, 업무 과중이라는 “조용하고 의도치 않은 충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명시했다. AI는 이미 지쳐 있는 직장인들의 세계에 들어오고 있다.

구조가 돌아가는 방식은 이렇다. 도구가 할 수 있는 걸 늘린다 →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기대가 생긴다 → 기대가 표준이 된다 → 표준을 못 따라가면 뒤처진다 →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써야 한다 → 다시 처음으로. 이 흐름 안에서 “나는 일을 좀 줄이겠다”는 결심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경력에 불이익이 되는 행동이 된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법은 이걸 잡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도가 답을 줄 수 있을까. ‘퇴근 후 연락 금지법’이 지키려는 선과 AI가 무너뜨리는 선은 과연 같은 선일까.

고용노동부는 2026년 중으로 퇴근 후 업무 연락을 거부할 수 있는 “연결 차단권”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한국 헤럴드 2025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실제 근로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려는 입법 패키지의 일부다. 2024년 한국의 실제 근로시간은 연 1,859시간으로 OECD 최상위권이다.

연결 차단권은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런데 AI가 만드는 과로는 퇴근 후 카카오톡 문자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근무 시간 안에서, 업무 범위가 조용히 늘어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피하기 어려운 구조 안에서. 연결 차단권이 지키려는 건 “시간”의 경계고, AI가 무너뜨리는 건 “업무의 범위”와 “인지적 밀도”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선 위에 그어져 있다.

이 법적 공백이 얼마나 깊은지는 따로 더 살펴봐야 한다. AI를 도입한 회사에 “업무 강도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는 게 가능한지, 지금 노동법이 이 문제를 다룰 도구를 갖고 있는지.

AI가 일을 줄여줄 거라는 믿음은 나쁜 믿음이 아니었다. 다만 현실과 대면하지 않은 믿음이었다. 그리고 믿음은 대개가 그렇듯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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