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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6개월 차 팀원이 AI를 활용해 제법 그럴듯한 기획서를 가져왔다. 팀장은 흡족했다. 구성도 탄탄하고, 데이터도 있었다.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내 시스템 점검으로 AI 도구를 못 쓰는 상황이 생겼다. 팀장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이번 건은 그냥 맨손으로 초안 써봐.” 팀원은 노트북 앞에 앉아 한참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게 팀원의 문제일까, 팀장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냥 AI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AI가 빼앗아 가는 것
AI를 쓰면 결과물이 좋아진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동시에, AI를 쓰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생기고 있다.
심리학에 인지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생각의 일부를 외부 도구에 맡기는 것이다. 계산기로 암산을 대신하고, 내비게이션으로 길 찾는 감각을 외주 주고, 메모 앱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도구를 쓸수록 편해진다. 그리고 도구에 의존할수록, 그 도구가 없을 때의 능력은 약해진다.
그리고 AI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인지 오프로딩 도구다.
MDPI Societies에 발표된 Gerlich(2025)의 연구를 보자. 666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AI 도구 사용 빈도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낮아졌다. 인지 오프로딩이 중간 변수로 작용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미시건 대학의 케이트 헐리(Kate Hurley)는 EDUCAUSE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이것을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AI가 단순 작업을 처리해주면서 우리가 잃는 건 시간이 아니라, 그 작업을 반복하면서 쌓이던 사고 근육이라는 것이다.
AI가 없애는 것과 새로 만드는 것을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 AI가 없애는 것 | AI가 새로 만드는 것 |
|---|---|
| 자료 수집·정리 시간 | 결과물 검토 부담 |
| 초안 작성 반복 | AI 감시 인지 부하 |
| 단순 계산·요약 | 판단 의존도 증가 |
| 자연스러운 학습 구간 | 학습 없는 성과 구간 |
AI 이전에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쓰는 반복 과정 자체가 배움의 시간이었다. 지루했지만, 그 지루함이 도메인 감각*을 쌓았다. AI는 그 지루한 구간을 없애줬다. 그리고 동시에, 그 구간에서 생기던 성장도 없애버렸다.
*도메인 감각(Domain Sense): 특정 산업, 업무, 또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전문성
감각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감각’이 뭔지 정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문가가 AI와 다른 점은 ‘빠름’이 아니다. AI는 이미 사람보다 빠르다. 전문가가 AI와 진짜 다른 점은 하나다. 결에 맞지 않거나 틀린 걸 알아차리는 능력.
AI는 그럴싸한 틀린 답을 확신 있게 내놓는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성은 논리적이고, 숫자도 있다. 그런데 핵심이 틀렸다. 맥락을 놓쳤거나, 업계 관행을 모르거나, 우리 회사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걸 잡아내려면 도메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감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수백 번의 직접 경험, 수십 번의 실패, 그것을 수정하는 반복, 그 과정에서 내면화된 판단의 기준.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AI는 이 과정을 건너뛰게 만든다. AI 없이는 결과물을 못 내지만, 감각 없이는 결과물을 검수하지 못한다.
검수 못 하면 어떻게 될까. AI의 오류가 그대로 결과물이 된다.
| 성장 요소 | AI 이전 | AI 이후 리스크 |
|---|---|---|
| 실수를 통한 학습 | 초안을 직접 쓰다 틀리며 배움 | AI 초안 수정으로 실수 없이 통과 |
| 맥락 독해력 | 자료를 직접 읽으며 전체 그림 파악 | 요약본만 소비, 맥락 감각 미형성 |
| 판단 근육 | 크고 작은 결정 반복으로 강화 | AI가 대안을 주면 고르기만 함 |
| 전문가 직관 | 수백 번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형성 | 형성 기회 자체가 줄어듦 |
그렇다고 AI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를 쓰되, 감각이 만들어지는 구간을 의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걸 설계하는 것이 팀장의 역할이다.
팀장이 설계해야 하는 것 4가지
AI 시대에 더 중요해지는 역량이 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힘, AI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편집하는 눈, 맥락을 읽고 책임지는 판단력. 이것들은 AI가 키워주지 않는다. 직접 부딪혀봐야 생긴다. 팀장이 그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첫째, AI 없는 구간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이번 기획서 초안은 AI 없이 먼저 써봐. 그다음에 AI로 보완해.” 처음엔 팀원이 불편해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 불편함이 근육이 된다. 맨손으로 써봐야 어디가 약한지 보인다.
둘째, 결과물 리뷰를 과정 리뷰로 바꾼다.
“잘 나왔네요”로 끝내지 않는다. “이 방향을 선택한 이유가 뭐야?“를 묻는다. 결과물이 아닌 판단 과정을 리뷰하는 것이 진짜 성장 대화다.
셋째, AI가 틀렸을 때를 교육 도구로 쓴다.
AI가 오류를 냈을 때 그냥 수정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이게 왜 틀렸을까요?”를 같이 분석한다. 틀린 지점을 짚는 것이 최고의 도메인 교육이다.
넷째, 감각 체크 질문을 루틴으로 만든다.
“이거 AI가 틀렸다면 어떻게 알아챌 수 있어?” 이 질문을 정기적으로 던진다. 처음엔 답을 못 한다. 반복하면 팀원 스스로 검수 기준을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 상황 | 팀장의 대응 |
|---|---|
| 신입이 AI로 기본기를 건너뛰는 것 같다 | AI가 못 하는 경험 의도적 설계 (고객 직접 인터뷰, 맨손 리서치) |
| AI 의존도 높은 팀원의 실력이 걱정된다 | 결과물 리뷰 → 과정 리뷰로 전환 (“이 판단은 왜 내렸어요?”) |
| 팀원이 “AI가 해줬어요”를 남발한다 | “그 결과를 왜 선택했어요?”를 기본 질문으로 설정 |
| AI를 전혀 안 쓰는 팀원이 있다 | 강요 대신 성공 사레 공유, 작은 업무에서 시도 유도 |
팀장이 가져갈 것
AI가 대신 해주는 것이 많아질수록, 팀원이 직접 해봐야 하는 것을 팀장이 설계해야 한다. 결과물 품질은 AI가 높여주지만, 그 결과물을 판단하는 사람의 실력은 AI가 키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팀장이 관리해야 하는 건 팀원들이 ‘AI를 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팀원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 그렇게 성장한 팀원의 역량이 팀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FAQ
AI를 많이 써도 실력이 늘 수 있지 않나요?
AI를 쓰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AI 결과를 그대로 쓰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AI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왜 이 결과를 선택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면 성장한다. 핵심은 ‘쓰냐 안 쓰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냐’다.
팀원이 AI 없이 초안 쓰는 걸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요?
강요보다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낫다. “AI 없이 써보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를 공유하고, 처음에는 작은 과제부터 시도하게 유도한다. 결과물을 비교해보는 경험을 만들어주면 팀원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신입 사원은 처음부터 AI를 써도 되나요?
AI를 처음부터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단, AI를 쓰기 전에 ‘이 업무가 무엇인지’를 최소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기가 없으면 AI 오류를 잡아낼 수 없다.
과정 리뷰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가장 쉬운 시작점은 “어떤 방향을 검토했어요?”를 묻는 것이다. “잘 했네요” 대신 “어떤 선택지 중에서 이걸 고됨?”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반복하면 팀원도 판단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AI 오류를 교육 도구로 쓰는 게 팀원 의욕을 꺾지 않을까요?
방식이 중요하다. “이거 틀렸잖아요”가 아니라 “이 부분이 왜 우리 상황에 안 맞는지 같이 생각해붐요”로 접근한다. 틀린 지점을 같이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도메인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