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 기술과 음식물 처리기
둘만 놓고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는 태양을 지구 위에서 재현하겠다는 인류 최대급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부엌 한구석에 놓이는 생활 가전이죠.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했고, 지금은 기후 위기를 해결할 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기가스케일 캐피털(GigaScale Capital)을 이끄는 마이크 슈로퍼(Mike Schroepfer)는 둘을 같은 기준으로, 같은 기회라고 봅니다.
이상하게 들리죠.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슈로퍼가 보는 것은 제품의 '현재'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도 아닙니다. 그가 보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아직 압도적으로 더 좋아질 여지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잠자는 순간에도 세상이 이 기술을 앞으로 끌어 주는가.
슈로퍼는 25년 넘게 테크 기업을 만들고 키워 온 사람입니다. 닷컴 버블 시절 초기 스타트업 두 곳을 거쳐, 자기 회사를 창업해 선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에 매각했습니다. 모질라(Mozilla)에서는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 초기 버전을 세상에 내놓는 데 참여했고, 2008년에는 당시 마이스페이스(MySpace)보다 작았던 페이스북에 합류했습니다.
슈로퍼의 합류 이후 페이스북은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약 100명 규모였던 조직은 35,000명 안팎으로 성장했고, 회사는 직접 데이터센터를 짓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VR 헤드셋 같은 소비자 하드웨어에 뛰어들고, 2013년에는 AI 연구 조직까지 세웠습니다. 그 굵직한 전환의 한복판에 슈로퍼가 있었죠.
그랬던 슈로퍼는 이제, 자신이 세운 VC 기가스케일 캐피털을 통해 기후와 환경 문제를 풀면서도 큰 사업이 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좋은 일 이 아니라 좋은 사업 입니다. 슈로퍼는 선의보다 구조를 믿습니다. 제품이 더 좋아야 하고, 더 저렴해야 하며, 더 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낼 만큼 좋아야 사업이 오래갑니다.
이번 글에서는 슈로퍼가 어떤 기술을 아직 이른 기회로 보는지 살펴봅니다. 페이스북이 직접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했던 시절, AI가 아직 유치해 보이던 순간, 음식물 처리기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기술이 되는 방식, 그리고 1년에 1,000명의 창업자를 만나 단 10팀 안팎을 고를 때의 기준까지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 페이스북은 왜 데이터센터를 직접 지을 수밖에 없었나
- AI가 유치해 보이던 시절에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
- 신기술의 투자 성패를 가르는 세 가지 질문
- 음식물 처리기와 핵융합 기술이 같은 '급'인 이유
- 빠르게 배우면서 끝까지 가는 집요함을 갖춰라
페이스북은 왜 데이터센터를 직접 지을 수밖에 없었나
2008년, 슈로퍼가 페이스북에 합류했을 때 가장 급한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폭증하는 사용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가입자는 매일 늘었고, 새로운 기능이 계속 붙었고, 사이트는 매주 혹은 매달 터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금은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생태계가 성숙했지만, 당시에는 달랐습니다. 페이스북 규모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떠받칠 소프트웨어, 서버, 네트워크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운영하면서 동시에 직접 길을 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 데이터센터 공간을 빌려 서버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위기 이후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멈췄습니다. 더 빌릴 서버 공간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페이스북의 선택지는 하나였습니다.
직접 짓는 것.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웹사이트 기능 하나 추가하는 일과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전력, 냉각, 네트워크, 공간 설계, 장비 조달, 운영 노하우가 한꺼번에 필요합니다. 페이스북 내부에 그런 경험자가 충분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슈로퍼가 먼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빨리 배우려면 아는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슈로퍼는 스타트업의 많은 일이 결국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대안이 없으니 직접 짓고, 물러설 곳이 없으니 직접 해냅니다. 멋져 보이는 비전이 우선이 아니라, 당장 안 하면 회사가 멈추는 것들을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그가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꽤 냉정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그 문제를 직면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AI가 유치해 보이던 시절에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
2013년, 페이스북은 AI 연구 조직을 만들기로 합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나 IBM 리서치처럼 여러 분야를 다루는 종합 연구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AI 하나에만 자원을 집중할 것인가.
슈로퍼와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이 문제를 두고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후자를 골랐습니다. AI에 회사 자원을 몰아주기로 한 겁니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결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AI 데모는 지금 기준으로 꽤 초라했습니다. 사진 속 고양이를 겨우 맞히고, 문장을 그럭저럭 번역하고, 간단한 질문에 어설프게 답하는 정도였습니다. 챗봇 역시 “똑똑하다”기보다는 “예전보다 낫다”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학계에서는 다른 시그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2012년 이미지넷(ImageNet) 대회에서 토론토대학교 팀의 신경망 모델 알렉스넷(AlexNet) 이 기존 기술을 압도했습니다. 성능이 조금 좋아진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격차가 너무 컸습니다. 오랫동안 주변부에 있던 딥러닝이 무대 중앙으로 올라오는 순간이었고, 이후 구글의 알파고로 이어지는 AI 전성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기술의 진보에는 종종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등장한 새로운 방식이 기존 방식을 말도 안 되는 격차로 앞질러 버리는 거죠.
그때 던져야 할 질문은 “지금 당장 쓸 만한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렇습니다.
이 기술은 이미 발전에 끝에 다다랐는가, 아니면 이제 막 출발선에 섰는가.
슈로퍼가 본 AI는 후자였습니다. AI 신경망의 크기는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학습 데이터도, 연산량도, 모델 구조도 확장 여지가 컸습니다. 새 원리를 매번 발명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있는 것을 키우기만 해도 성능이 좋아질 길이 보였습니다.
초기 AI 데모를 보고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는 같은 장면에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이 기술이 1,000배 커지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판단이 갈리는 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기술을 직접 경험한 뒤에야 믿습니다. 슈로퍼는 자율주행차를 예로 듭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자율주행차를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Waymo)를 한 번 타 보면 반응이 달라집니다. 처음 몇 분은 긴장하지만, 곧 휴대폰을 보고, 조금 더 지나면 지루해합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차보다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문제는 그때입니다. 모두가 편하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이미 투자 기회는 한참 지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슈로퍼는 새로운 기술을 볼 때 늘 한 발 앞에서 질문합니다.
신기술의 투자 성패를 가르는 세 가지 질문
1️⃣ 슈로퍼가 기술 투자에 앞서 가장 먼저 보는 확인하는 것은, 이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지입니다. 그는 이를 빛의 속도 테스트라고 부릅니다.
물리학에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우주선이 이미 빛의 속도 99.9%까지 도달했다면, 거기서 두 배 더 빨라지겠다는 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지금 속도가, 빛의 속도의 0.1%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빛의 속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기술도 같습니다. 어떤 기술은 15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다듬어 왔습니다. 개선 폭은 작고, 1%를 끌어올리기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어떤 기술은 이제 초입입니다. 현재 수준과 한계 사이에 넓은 간극이 남아 있습니다.
슈로퍼가 끌리는 것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아직 조악하지만, 좋아질 여지가 큰 기술입니다.
2️⃣ 두 번째는 세상이 이 기술을 앞으로 끌어주는지입니다. 내가 직접 애쓰지 않아도 기술을 저절로 진보하게 만드는 외부 동력이 있는지를 살핀다는 뜻입니다.
AI에서는 반도체 생태계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엔비디아(NVIDIA), TSMC, ASML이 만드는 반도체는 해마다 강력해졌습니다. 페이스북이 직접 칩 회사를 만들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같은 돈으로 더 좋은 연산 성능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업은 매년 같은 힘을 들여도 제자리걸음입니다. 노력을 멈추는 순간 성장도 멈춥니다. 반면 어떤 사업은 시장 전체가 앞에서 끌어줍니다. 반도체가 빨라지고, 배터리가 싸지고, 센서가 작아지고, 제조 공정이 개선되고, 데이터가 쌓입니다. 그야말로 시간이 도와주는 겁니다.
3️⃣ 세 번째 질문은 고객이 실제로 돈을 낼 것인가입니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성취와 고객이 사고 싶은 일은 다릅니다.
3D TV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2D에서 3D로 가는 일은 분명 기술적 진보처럼 보였습니다. 더 몰입감 있고, 더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집 소파에 앉아 특수 안경까지 쓰고 TV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던 거죠.
더 나아 보이는 기술을 만들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에 심취하기가 쉽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품이 팔릴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냉정합니다. 내 삶이 진짜로 더 편해지는가. 돈이 아껴지는가. 시간이 절약되는가. 기분이 좋아지는가. 결국 누군가는 기꺼이 돈을 내야 그 기술도 살아남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을 통과한 기술은 지금 당장 볼품없어 보여도 쉽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음식물 처리기와 핵융합 기술이 같은 '급'인 이유
다시 처음의 이상한 조합으로 돌아가 봅시다. 음식물 처리기입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할 기술이라고 말하면 거창하고 복잡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슈로퍼가 투자한 음식물 처리기의 홍보문구는 훨씬 직관적이고 생활 밀착형입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지치셨나요? 냄새가 고약한가요?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세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어필이 잘 되겠죠. 사람들에게 지구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라고 대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게 슈로퍼가 좋아하는 사업 방식입니다.
환경을 위해 참고 쓰는 제품이 아니라, 편해서 쓰다 보니 환경에도 좋은 제품.
음식물 처리기는 아직 갈 길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더 작아지고, 더 조용해지고, 더 저렴해질 수 있습니다. 센서와 모터는 계속 좋아지고, 쓰레기 처리와 매립을 둘러싼 물류·규제 환경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시장이 함께 제품을 끌어주는 구조입니다.
핵융합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기술로 보입니다. 지구에서 핵융합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면 원자력, 화력, 풍력 등 기존에 존재하던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중요한 에너지 생산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핵융합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죠.
물론 핵심은 ‘가능하다면’입니다. 핵융합은 오래전부터 꿈의 에너지로 불렸지만, 안정적인 발전소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회의론도 많습니다. “상용화까지 늘 30년 남았다”는 농담이 따라붙는 이유입니다.
슈로퍼는 바로 그 지점에서 기회를 봅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성공했을 때의 보상은 압도적입니다. 에너지는 다른 문제를 푸는 기반입니다. 깨끗한 물도, 냉방도, 제조도, AI도 결국 전기가 있어야 굴러갑니다.
결국 슈로퍼에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기술이 거창한가 소박한가도 아닙니다. 더 좋아질 여지가 충분한가. 더 저렴해질 수 있는가. 삶을 편하게 만들면서 거대한 문제까지 건드리는가. 이 조건에 맞는다면, 냄새 안 나는 쓰레기통도 핵융합만큼 흥미로운 기술이 됩니다.
빠르게 배우면서 끝까지 가는 집요함을 갖춰라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일과 그 기술을 끝까지 밀고 갈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슈로퍼는 1년에 약 1,000명의 창업자를 만나고, 그중 10팀 안팎을 고른다고 말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판단은 결국 사람입니다. 기술과 시장이 좋아도, 그 길을 버틸 창업자가 없으면 회사는 커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슈로퍼는 사무실 청소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람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을 앞두면 갑자기 지저분한 책상이 거슬립니다. 투자 자료를 써야 하는데 방 청소를 해야 할 것만 같고, 제품의 핵심 리스크를 풀어야 하는데 이메일함 정리가 먼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두려우니까 쉬운 일로 도망치는 겁니다. 익숙한 문제를 붙잡으면 일하는 기분은 납니다. 하지만 회사의 운명은 그대로입니다.
슈로퍼는 그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무실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투자 발표가 망하면 회사가 끝장나는데, 책상 위 먼지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슈로퍼가 창업자에게서 보려는 태도는 결국 하나입니다.
가장 어렵고, 가장 불확실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처리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자질은 끝까지 가는 집요함입니다.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계속 거절당하는 일입니다. 채용 후보자가 거절하고, 투자자가 거절하고, 고객이 거절합니다. 가까운 사람들도 묻습니다. “그게 되겠어?” 슈로퍼 역시 첫 회사를 만들 때 숱하게 투자 요청을 거절당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투자자는 미팅 중에 잠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실리콘밸리 대표 VC 세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의 투자를 받아냈습니다.
서른 번 거절당해도 단 한 번의 승낙이 회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절의 횟수가 아니라, 문이 열릴 때까지 다시 두드리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 자질은 빠르게 배우는 능력입니다.
CEO의 일은 계속 바뀝니다. 오늘은 기술 문제를 풀어야 하고, 내일은 고객을 만나야 합니다. 모레는 임원 후보를 설득해야 하고, 다음 주에는 실험실 공간을 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 잘하던 일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슈로퍼가 좋은 창업자에게서 보는 것은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는 속도입니다. 직접 배우거나, 그걸 아는 사람을 데려오거나, 둘 중 하나를 해냅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겸손하고, 모르는 것을 빠르게 따라잡을 만큼 호기심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이력서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슈로퍼는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인가’, ‘좋은 학교를 나왔는가’, ‘유명한 회사에 있었는가’ 같은 체크리스트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런 기준은 편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을 자주 놓칩니다. 처음 창업하는 사람이라도 거대한 회사를 만들 수 있고, 화려한 경력이 있어도 막상 불확실한 문제 앞에서는 멈춰 설 수 있습니다.
슈로퍼가 보려는 것은 경력의 모양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가. 필요한 사람을 끌어오는가. 복잡한 미션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쉬운 일로 도망치지 않는가.
그래서 좋은 창업자는 종종 예상 밖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플라즈마 물리학자가 핵융합 회사를 이끄는 CEO가 되기도 하고, 이미 회사를 성공시킨 창업자가 다시 음식물 처리라는 지루해 보이는 문제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서로 다르지만, 슈로퍼가 보는 핵심은 같습니다. 낯선 문제 앞에서도 빠르게 배우고, 필요한 사람을 모으고, 끝내 사업이 되게 만드는 사람인가.
결국 슈로퍼가 찾는 창업자는 완벽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배워가며 길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슈로퍼가 기술을 보는 방식과도 닮아 있습니다. 지금 완벽한가가 아니라, 계속 좋아질 구조를 가졌는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이크 슈로퍼가 찾는 것은 완성된 기술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질 구조를 가진 기술입니다.
기후 위기는 너무 거대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문제입니다. 슈로퍼도 그점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는 손을 놓고 있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은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더 좋아질 여지가 충분한가.
그리고 그 길에서 끝까지 집요하게 버틸 사람이 있는가.
이미 모두가 박수치는 기술은 보기 좋습니다. 설명하기 쉽고, 설득하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미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아직 볼품없는 기술은 불편합니다. 조롱받기 쉽고, 의심을 견뎌야 합니다. 세상을 바꾼 기술은 대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조금은 유치해 보였고, 너무 이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전혀 다른 모습이 됐습니다.
그러니 지금 어설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별로’라고 성급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모르죠. 지금은 볼품없어 보이는 무언가가, 훗날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꿔놓을지도요.
편집: 김지윤
글: 서용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