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사업전략
"더 느리게 해주세요" - 무인결제 시대에 일부러 속도를 늦춘 네덜란드 슈퍼마켓의 역발상

- 세상에서 가장 느린 계산대가 가장 빠르게 성공한 이유
- 무인화·AI 자동화 전성시대에 역행한 이 실험이 던지는 질문

요즘 마트에서 사람 목소리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셀프 체크아웃 앞에서 바코드 찍고, 카드 대고, 봉투 들고 나오면 끝. 3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이런 매장이 있어요. 계산원이 "오늘 날씨 참 좋죠?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라고 먼저 말을 겁니다. 뒤에 줄 선 사람도 불평 없이 기다려요. 왜? 이 줄은 원래 그런 줄이니까.

네덜란드 2위 슈퍼마켓 체인 점보(Jumbo)가 만든 '클레츠카사(Kletskassa)', 직역하면 '수다 계산대'입니다. 빨리빨리의 정반대. 천천히 계산하면서 계산원이랑 동네 안부, 어제 본 TV 프로그램, 별것 아닌 잡담을 나누는 전용 라인이에요. 이게 됩니까? 됐습니다. 대박이 났어요.


1. 외로움이 담배보다 위험하다는 나라의 실험

• 네덜란드 75세 이상 인구 130만 명 중 절반 가까이, 약 65만 명이 일상적인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2019년 네덜란드 정부가 'One Against Loneliness(외로움에 맞서기)'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 점보의 CCO 콜레트 클로스터만-판 에르트가 이걸 캐치했어요. "우리 매장이 동네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2019년 여름, 남부 소도시 블레이멘(Vlijmen) 매장에 첫 수다 계산대가 열렸습니다.


2. 노인용으로 만들었는데, 젊은 층이 더 좋아했다

• 이게 반전입니다. 원래 타겟은 독거 노인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30대도, 아이 데리고 온 엄마도, 퇴근길 직장인도 이 줄에 섰어요. "누군가와 한마디라도 나누고 싶다"는 욕구는 나이를 안 가렸습니다.

• 하루 종일 혼자 재택근무하다 장보러 나온 사람한테 "오늘 뭐 해드세요?" 한마디가 그날의 유일한 인간 대화일 수도 있잖아요. 이건 세대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입니다.

• 직원들 반응이 더 재밌어요. 캐셔들이 서로 수다 계산대에 앉겠다고 자원했다고 합니다. 하루 8시간 "삑-삑-삑" 바코드만 찍다가, 드디어 고객이랑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직원 만족도까지 덩달아 올라간 겁니다.

• 결과? 2021년 전국 200개 매장으로 전격 확대. 점보 전체 700여 개 매장 중 거의 3분의 1이 수다 계산대를 운영하게 됩니다.


3. 슈퍼마켓이 동네 사랑방이 된 사연

• 점보는 계산대만으론 부족하다며 매장 안에 '수다 코너(Chat Corner)'를 만들어버렸어요. 커피 한 잔 놓고 동네 주민들이 마실 나오듯 앉아서 떠드는 공간입니다.

• 지역 재단, 자원봉사자랑 연계해서 장보기 도움, 정원 가꾸기까지 연결해주는 구조로 확장했어요. 슈퍼마켓이 사실상 동네 커뮤니티 센터가 된 겁니다.

• 이건 마케팅 관점에서도 꽤 날카로운 한 수입니다. 고객 체류 시간 늘고, 브랜드에 감정이 붙고, 언론에선 좋은 이야기로 알아서 기사 써주고. 다만 출발이 "KPI 올리자"가 아니라 진짜 고민에서 나왔다는 게 포인트예요. 진심 아니면 직원들이 자원 안 합니다. 


4.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로 달리고 있다

• 글로벌 셀프 체크아웃 시장은 연평균 11.6% 성장 중이고, Z세대 85%가 키오스크를 선호한다는 통계도 있어요. 식당 예약은 챗봇, 은행 업무는 앱, 고객 상담은 AI. 되는 건 다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 기술적으로 다 되니까 사람이 끼어들 자리가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있어요. 편해졌는데 왜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 다들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2023년에 외로움을 공중보건 위기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서울시도 2024년에 '외로움 없는 서울' 대책을 발표하고 24시간 상담전화까지 개설했어요.

• 그럼 AI가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AI 챗봇 친구 앱은 2022~2025년 사이 700% 폭증했습니다. 근데 조지메이슨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AI에 감정적으로 깊이 의존할수록 진짜 외로움은 오히려 심해지고, 실제 사람을 만나려는 동기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5. 비효율을 선택할 줄 아는 기업

점보의 수다 계산대는 그냥 훈훈한 미담이 아닙니다.

• 자동화, AI화 다 좋은데, 그 흐름 한가운데서 일부러 느린 자리를 남겨둔 거예요. "우리는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는 정체성을 택했고, 그 선택이 브랜드 가치, 고객 충성도, 직원 만족도를 전부 끌어올렸습니다.

• "우리 비즈니스에서 사람 냄새가 남아야 하는 접점은 어디인가?" 이걸 빠뜨리면, 효율은 올라가는데 고객이 조용히 떠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누구나 빠르고 편한 걸 원한다고 하지만, 진짜 원하는 건 "내 얘기를 들어주는 누군가"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Grocery Dive, Good News Network, RetailWire, APA Monitor,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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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로 Wilt Venture Builder · CEO

싱가포르에서 벤처빌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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