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서, 업무를 다시 설계하는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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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업들은 앞다투어 “AI-first”를 말한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도 AI를 먼저 고려하고, 조직 운영을 할 때도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지 먼저 검토한다. 개발자는 코딩 어시스턴트를 쓰고, 마케터는 콘텐츠 초안을 AI로 만들고, 고객센터는 챗봇과 상담봇을 붙인다. 그런데 최근 Lemonade 공동창업자 Daniel Schreiber가 쓴 글은 한 단계 더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다.
https://dschreiber.substack.com/p/after-ai-first-comes-ai-only
AI-first 다음에는 AI-only가 온다. 여기서 AI-only는 사람이 아예 사라진 회사를 뜻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AI-only를 “인간이 운영 루프 안에 들어가지 않는 광범위한 업무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여전히 목표, 가치, 제약조건, 예외 상황의 기준을 정한다. 다만 실행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가 맡는다. 사람은 업무의 참여자에서 시스템의 감독자로 이동한다. 이 차이는 꽤 중요하다. AI-first는 이렇게 묻는다.
“이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대신할 수 있을까?”
반면 AI-only는 이렇게 묻는다.
“애초에 이 일이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질문이 달라지면 기업의 구조도 달라진다.
AI는 ‘더 똑똑한 직원’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이해할 때 익숙한 것에 빗대어 생각한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말 없는 마차”로 이해했다. 실제로 초기 자동차는 마차의 연장선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곧 마차의 대체품이 아니게 되었다. 더 빠르고, 더 멀리 가고, 전혀 다른 도로와 도시 구조를 만들어냈다. 어느 순간 자동차는 “더 좋은 말”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 되었다. AI도 비슷한 단계에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AI를 “더 저렴하고, 더 빠르고, 더 지치지 않는 직원”처럼 상상한다. 그래서 AI를 회의록 작성자, 개발자 보조, 고객 상담원, 콘텐츠 기획자처럼 부른다. 이 관점에서는 AI가 기존 직무의 빈자리를 채우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Daniel Schreiber의 주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AI의 미래는 “더 나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지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를 artificial intelligence가 아니라 alien intelligence처럼 이해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AI가 사람처럼 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AI가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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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에서 조종사를 빼면 무엇이 달라질까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비유는 F-35 전투기다. F-35에는 조종사가 한 명 탄다. 얼핏 보면 조종사 한 명은 1억 달러짜리 전투기 전체 비용에 비하면 작은 요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종사가 있기 때문에 전투기에는 조종석이 필요하고, 산소 공급 장치가 필요하고, 디스플레이와 조작 장치가 필요하고, 탈출 좌석이 필요하다. 인간의 시야, 호흡, 피로, 신체 한계, 중력가속도 허용 범위까지 모두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 조종사를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인건비를 아끼는 문제가 아니다. 전투기 전체를 인간의 한계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회의, 보고, 승인, 큐 관리, 핸드오프, 매니저, 근무시간, 담당자 배정은 모두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구조다. 사람은 집중력이 제한되어 있고, 기억은 불완전하며, 훈련에는 시간이 걸리고,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도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기업은 사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조직 구조를 만들었다. 팀을 나누고, 역할을 나누고, 승인 단계를 만들고, 회의를 만들고, 보고 체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특정 업무를 AI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중요한 질문은 “AI가 이 직원을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이 직무 묶음 자체가 계속 필요할까?” “이 업무 흐름은 처음부터 다시 설계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AI-only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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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 30% 오르는 것과 30배 오르는 것은 다르다
Lemonade는 이미 AI-first 기업으로 유명하다. 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3년간 매출을 거의 세 배로 늘리고, 고객을 125만 명 추가했으며, 총이익을 여섯 배로 늘리는 동안 팀 규모는 오히려 줄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AI-first의 성과는 충분히 커 보인다. 하지만 글쓴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Lemonade에서는 코드의 98%가 AI로 작성되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은 아직 30배나 50배가 아니라 30~50% 수준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AI가 코드를 작성해도 여전히 사람이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고, 환경을 준비하고, 애매한 부분을 판단하고, 리뷰하고, 배포를 승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지능은 기계 속도로 움직이지만, 업무 흐름은 마지막 인간의 속도에 묶여 있다. 이 말은 꽤 많은 기업에 적용된다. AI를 도입했는데 생각보다 생산성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AI 성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여전히 인간의 승인, 검토, 조율, 보고, 회의, 배포 대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AI-first는 기존 업무 구조 위에 AI를 올리는 방식이다. 그러면 생산성은 개선된다. 하지만 기존 구조의 병목은 남아 있다. AI-only는 업무 구조 자체를 다시 짠다. 이때 생산성은 단순한 퍼센트 개선이 아니라 몇 배 단위의 변화가 될 수 있다.
직무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흐름을 재설계하는 것
많은 기업이 AI 도입을 이야기할 때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고객 상담원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까?”
“개발자의 코딩 업무를 AI가 얼마나 줄여줄까?”
“마케터의 콘텐츠 제작 시간을 AI가 얼마나 단축할까?”
이 질문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중심의 질문이다.
AI-only 관점에서는 질문이 바뀐다.
“고객 문의가 들어왔을 때, 접수, 분류, 답변, 처리, 후속 조치, 리포팅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자동 처리할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 테스트에서 요구사항 분석, 테스트 케이스 생성, 실행, 로그 분석, 결함 리포트 작성까지 하나의 AI 실행 체계로 묶을 수 있을까?”
“금융 상담에서 고객 의도 파악, 상품 조건 확인, 내부 규정 검토, 응답 생성, 상담 이력 기록까지 AI가 처리하고, 사람은 예외 상황만 감독하는 구조가 가능할까?”
이제 초점은 직무가 아니라 워크플로우다.
AI가 사람 한 명을 대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 중심으로 잘게 쪼개진 업무 묶음을 AI 중심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변화는 조직도에도 영향을 준다. 앞으로 기업은 단순히 “AI를 잘 쓰는 직원”을 많이 보유한 곳보다, AI가 일할 수 있는 업무 구조를 잘 설계한 기업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치가 바뀐다
AI-only라는 표현은 다소 차갑게 들린다. 마치 사람을 모두 없애자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향은 “humanless”가 아니라 human-on-the-loop에 가깝다. 기존에는 사람이 업무 흐름 안에 있었다.
고객 요청을 사람이 읽고, 사람이 판단하고, 사람이 처리하고, 사람이 보고했다. AI는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자였다. 앞으로는 일부 업무에서 사람이 흐름 밖으로 이동할 수 있다. AI가 요청을 읽고, 분류하고, 실행하고, 기록하고, 결과를 보고한다. 사람은 목표, 정책, 예외 기준, 리스크 허용 범위, 최종 책임 구조를 설계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입한다. 즉, 사람의 역할은 실행자에서 감독자, 설계자, 예외 판단자로 바뀐다. 이 관점은 특히 기업용 AI Agent 시장에서 중요하다. 단순히 챗봇이 답변을 잘하는 것을 넘어, 실제 업무를 끝까지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언제 개입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예외를 판단해야 하는지, 실행 로그와 근거를 어떻게 남길지까지 설계되어야 한다. AI Agent의 핵심은 “답변”이 아니라 “업무 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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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only가 무조건 좋은 미래는 아니다
물론 이 흐름은 불편한 질문도 남긴다. 기업 입장에서 AI-only는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같은 서비스를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더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경쟁사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글쓴이도 AI-only가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업무 단위별로 조금씩 신뢰를 얻으며 확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업 단위의 효율성은 압도적일 수 있지만, 그 비용은 노동자와 가족, 지역사회에 전가될 수 있다. 특히 중간 단계의 화이트칼라 업무, 반복적인 판단 업무, 표준화 가능한 운영 업무는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AI-only를 말할 때는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 하나는 기업 경쟁력이다.
AI를 업무 보조 도구로만 쓰는 기업과, 업무 구조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기업의 격차는 커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전환 비용이다. 사람이 하던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바뀐다. 문제는 이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거나 부드럽게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업은 AI 도입을 단순한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 보면 안 된다. 업무 구조 재설계, 인력 재교육, 책임 체계, 신뢰성 검증, 예외 처리 기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질문
스타트업은 이 변화에서 특히 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기존 대기업은 이미 사람 중심의 프로세스가 두껍게 쌓여 있다. 부서, 승인, 레거시 시스템, 내부 규정, 보안 체계, 보고 구조가 복잡하다. AI를 붙여도 기존 구조의 속도에 묶이기 쉽다. 반면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AI 중심으로 업무를 설계할 수 있다. 고객 응대, 세일즈 리드 관리, 콘텐츠 제작, 개발, QA, 재무 관리, 리포팅, 운영 모니터링 같은 업무를 처음부터 AI Agent 기반으로 설계하면, 같은 인원으로 훨씬 큰 규모의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앞으로 스타트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팀에 AI를 어떻게 붙일까?”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업무 구조는 인간 중심인가, AI 중심인가?”
“이 업무는 반드시 사람이 루프 안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은 감독자로 빠져도 되는가?”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예외 상황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명확한가?”
“AI가 실행한 결과를 검증하고 추적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업이 다음 세대의 AI-native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표현은 ‘AI-only’보다 ‘책임 있는 업무 자동화’일 수 있다
다만 한국 기업 환경에서 AI-only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 너무 강하게 인력 대체의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고객, 공공기관, 금융기관, 제조기업에 설명할 때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다.
“Human-in-the-loop에서 Human-on-the-loop로 전환”
“사람은 반복 실행에서 벗어나 목표, 정책, 예외 판단을 담당”
“업무 단위 자동화를 넘어, 업무 흐름 전체를 AI 실행 구조로 재설계”
“AI가 처리하고, 사람은 감독하는 책임형 운영 체계”
“답변형 AI를 넘어 업무 완결형 AI Agent로 전환”
핵심은 사람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위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업무 구조를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다.
AI-first는 시작일 뿐이다
AI-first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기업이 AI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업무에서 AI 활용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경쟁은 AI 도구 사용 능력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진짜 차이는 조직 구조를 얼마나 AI에 맞게 다시 설계했는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AI를 사람의 보조자로만 보면 기존 업무는 조금 빨라진다. AI를 업무 흐름의 실행자로 보면 조직 구조가 바뀐다. AI를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지능으로 보면,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AI-first의 질문은 “AI가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는가?”였다.
AI-only의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이 일을 왜 아직도 사람의 방식으로 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기업 경쟁력은 이 질문에 얼마나 빨리, 얼마나 책임 있게 답하느냐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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