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프로덕트
"매출이 나오면 증명됐다"가 깨진다

"매출이 나오면 증명된 것이다."

 

오랫동안 이 명제는 창업의 기본기였다. 고객이 돈을 낸다는 사실만큼 강력한 시장 검증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명제가 오히려 위험한 착각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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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창업가와의 대화에서 같은 생각을 마주했다.

 

그는 투자사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 너희 팀이 가진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해당 버티컬에 B2B 제품을 만들면 즉시 수만불의 매출이 나올 수 있는 구조라고 판단했고, 그 방향으로 간다면 바로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투자자라면 이를 "증명된 니즈"라고 평가했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투자자가 그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그 가려움을 알고 있었고, 모두가 이미 긁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빅테크가 그 가려움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지금 매출이 나온다는 사실은 성공의 지표가 아니라, 곧 경쟁자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신호였다. 실제로 해당 버티컬 제품은 수개월 뒤 빅테크가 출시했고,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제품을 준비했던 다른 스타트업은 바로 제품을 접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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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시장에서 이 가설이 현실로 증명되고 있음을 보았다.

 

OpenAI는 2026년 4월 13일, AI 기반 개인 재무 스타트업 Hiro Finance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Hiro는 사용자가 수입, 부채, 지출을 입력하면 재무 시나리오를 정확한 계산으로 모델링해주는 제품이다. 창업은 2024년, AI 제품을 정식 출시한 것은 인수 불과 5개월 전이었다.

 

주목할 지점은 창업자 이력이다. Hiro의 창업자 Ethan Bloch는 2021년에 자동 저축 앱 Digit을 2억 달러 이상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연쇄 창업가다. 도메인도 알고, 창업도 해봤고, 엑싯도 해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든 제품이 출시 5개월 만에 빅테크에 흡수된 것이다.

 

비록 엑싯에 성공한 모양새이지만,

성공한 연쇄창업가가 왜 5개월만에 엑싯했을까?

 

Hiro는 4월 20일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5월 13일에 모든 사용자 데이터를 삭제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이 단발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OpenAI는 2025년 10월에도 또 다른 개인 재무 앱 Roi를 인수했고, 인수 직후 서비스를 닫아버렸다.

 

OpenAI는 2023년 이후 17개 회사를 인수했고, 그중 상당수가 2026년 상반기에 집중되었다. 헬스케어(Torch Health), 개인 재무(Hiro, Roi), 개발자 도구(Astral, Promptfoo), 과학 글쓰기(Crixet), 미디어(TBPN)까지. Nerdleveltech 카테고리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분석가들은 이 전략을 "해자(moat)를 사들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범용 모델 성능에서는 Claude, Gemini가 GPT와 동등하거나 더 낫기 때문에, 특정 버티컬의 전문성과 통합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위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빅테크는 "어떤 버티컬이 뜨고 있는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고, 스타트업이 유의미한 트랙션을 만드는 순간 인수하거나 복제한다. (물론, Talent Acquisition의 방법이기도 하겠다.) First step에서 "증명된 니즈"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들의 레이더에 잡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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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큰 회사는 느리다"가 창업의 전제였다. 큰 회사는 관료적이고, 의사결정이 늦고, 새로운 시장을 보는 눈이 없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을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빅테크는 모든 트래픽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특정 카테고리에서 인게이지먼트가 급증하는 구간, 사용자들이 새로 쓰기 시작한 키워드, API 호출 패턴의 변화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알람이 울리면 그들은 인수하거나, 기능을 복제해서 네이티브로 내놓는다.

 

Hiro의 사례가 시장에 잔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제품은 좋았고, 팀도 훌륭했고, 매출도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출시 5개월 만에 사라졌다. 스텝 1에서 잘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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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스텝 1이 아니라 스텝 1.5를 먼저 그리는 것이다.

 

스텝 1은 시장이 이미 알고 있는 니즈이다. 검색량이 있고, 경쟁사가 존재하고, 고객이 "이런 게 필요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니즈. 증명이 쉽다. 하지만 그만큼 빅테크의 레이더에도 쉽게 걸린다.

 

스텝 1.5는 시장이 아직 언어로 정의하지 못한 가려움이다. 고객도 말로 설명하지 못하고, 경쟁사도 아직 없고, 데이터 트래킹으로도 잡히지 않는 구간. 이곳에 먼저 도착한 팀만이 스텝 2, 스텝 3에서 버틸 지형을 먼저 선점할 수 있다.

 

이 스텝 1.5를 상상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결국 해당 버티컬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는가로 결정된다. 산업의 언어를 아는 사람, 고객의 불편을 생활로 겪어본 사람, 그 시장의 다음 국면을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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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컬 인사이트의 깊이와 창업 실행력의 교집합.

 

이것이 지금 시대에 창업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다.

 

예전에는 둘 중 하나만 가져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제품 개발 속도가 느렸고, 한 번 만들면 락인이 오래 갔다. 스텝 1만 잘 잡아도 자리가 지켜졌다.

 

지금은 만드는 속도가 며칠 단위로 줄었고, 복제되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시작할 때부터 스텝 1, 2, 3, 4의 그림이 머릿속에 있어야 겨우 출발선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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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는 쉬워졌지만, 생각의 깊이로 승부가 나는 시대가 되었다.

 

'매출이 나온다'는 것은 더 이상 해자의 증거가 아니다.

 

가려움을 긁는 자리에서 나오는 매출은 고객의 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빅테크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진짜 확인해야 할 것은, 이 매출을 만든 제품이 스텝 1인지, 스텝 1.5인지다.

 

증명된 시장에 뛰어드는 것과, 증명될 시장을 먼저 그리는 것.

 

지금은 후자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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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 Candid · CEO

스타트업을 위한 채용컨설팅사, Candid 이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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