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면접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빠르고 논리적이었고,
자기 경험을 설명하는 방식이 매끄러웠습니다.
채용 후 진행했던 회의에서도 가장 먼저 정리된 의견을 냈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탁월했습니다.
"이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참여한 업무들이 유독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방향과 우리가 준비하는 방향이 계속 엇나갔습니다.
미팅 자체는 매번 잘 끝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과물이 나오면 고객이 기대한 것과 달랐습니다.
나중에야 원인을 알게 됐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브랜드사와 다음 분기 캠페인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고객 담당자가 "예산을 좀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팀원은 바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면 크리에이터 수를 줄이고 더 저렴한 단가로 재설계해볼게요."
대응이 빨랐고, 고객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미팅 후, 다음 분기 계약 자체가 끊겼습니다.
나중에 고객 담당자와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는 말의 속뜻은 달랐습니다.
윗선에서 크리에이터 마케팅에 계속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고,
담당자가 성과를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담당자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줄인 예산에 맞춘 플랜이 아니라,
윗선을 설득할 수 있는 성과 근거였습니다.
나중에 팀원과 함께 그 미팅을 되짚어봤습니다.
만약 "예산 조정"이라는 단어에 바로 반응하는 대신, 잠깐 멈추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혹시 내부적으로 어떤 상황이신가요?"
한 문장이었다면, 대화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빠른 대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한 번 더 궁금해하는 것.
그게 빠져 있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겁니다.
브랜드사가 "이번 캠페인 방향을 바꾸고 싶다"고 할 때,
크리에이터가 "조회수가 요즘 좀 안 나온다"고 할 때.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 단어에만 반응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들어내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상대방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꺼내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준비한 순서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우려하는 지점을 먼저 건드리는 사람이 있고,
자기 논리가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말이 투박해도 대화가 빠르게 핵심에 닿습니다.
후자는 말이 유창해도 대화가 겉을 맴돕니다.
문제는 이 차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회의실에서 바로 보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게 되고, 저처럼 틀리게 됩니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논리가 치밀한 사람을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범위 안에서만 정밀한 사람이 있습니다.
디테일은 정확한데 방향이 틀린 사람.
진짜 똑똑함은 얼마나 넓은 맥락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려내느냐에서 갈립니다.
공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단순히 잘 호응해주는 것과,
상대방이 어떤 압박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결국 일이 잘 풀리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시각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의 시각에서 상황을 보는 것.
저는 이제 면접에서 말을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봅니다.
질문 하나를 던졌을 때, 자기가 아는 것을 바로 말하는지, 제가 왜 이 질문을 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지.
혹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그 작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가 몇 달 뒤에는 엄청난 성과의 차이를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