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선정 #사업전략 #마인드셋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매력 없는' 산업에서 3조 원짜리 회사가 탄생한 비결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든 음악가든 마찬가지잖아요. 쉬지 않고 연습하는 사람이 결국 최고가 됩니다. 스타트업도 똑같습니다."

일주일에 90시간씩 일했습니다. 하루도 안 쉬고 7일 내내. 이걸 8년 동안 했습니다. 투자자 100곳이 넘게 거절했고, 단둘이서 미국 최대 부동산 회사의 운영을 통째로 맡았고, 새벽 4시에 교대 근무를 하며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감시했습니다.

민나 송. 엘리즈AI(EliseAI)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입니다.

 

민나 송 엘리즈AI 공동창업자 겸 CEO (출처: EO)

 

💡 민나 송(Minna Song)은 AI 기업 엘리즈AI(EliseAI)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입니다. 세계 공학 1위 MIT를 졸업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환학생 시절 공동창업자 토니 스토야노프(Tony Stoyanov)를 만났습니다. 

엘리즈AI는 AI로 부동산과 헬스케어 산업의 소통을 자동화하는 회사로, 현재 미국 아파트의 10% 이상이 이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캐피탈 a16z(Andreessen Horowitz) 주도로 2억 5,000만 달러(약 3,500억 원) 투자를 유치했으며, 기업가치 22억 달러(약 3조 원)를 인정받았습니다. 연매출은 1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번 글은 민나 송의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화려한 기술 대신 끈질긴 생존으로 유니콘이 된 창업자가, 8년 동안 직접 부딪히며 배운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아티클 내비게이션]

  1. 부동산을 모르는 공대생, 안내데스크 직원이 되다
  2. 세 시간 내내 "안 됩니다" 말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다
  3. 투자자 100곳에 거절당해도 기죽지 않는 법
  4. 전문가를 뽑았더니 회사가 멈춰버렸다
  5. 주 90시간 업무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부동산을 모르는 공대생, 안내데스크 직원이 되다

민나 송은 세계 공학 순위 1위 대학인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토니를 만났고, 둘 다 기술로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언젠가 같이 회사를 세우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뭘 만들 것인가였습니다.

주거와 헬스케어. 미국 GDP의 40%가 넘는 거대한 두 산업인데, 기술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뒤처져 있었습니다. 그 둘 중에서 부동산 분야에서 회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민나도 토니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 한국은 주로 개인 집주인과 동네 공인중개사가 거래를 주도하지만, 미국은 거대 부동산 기업이 수만 세대의 임대 계약과 시설 관리를 통째로 도맡아 하는 구조입니다. 민나가 풀려고 한 건 바로 이 거대 기업들의 비효율적인 소통 문제였습니다.

사업을 시작한다면 보통 시장 조사를 하거나 업계 전문가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 민나가 한 일은 좀 달랐습니다. 뉴욕의 한 부동산 회사에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들어간 겁니다. MIT를 나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로비에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마다 꼬박꼬박 인사하고, 민원 전화를 받고, 불만을 접수했습니다.

왜 일반적인 루트를 타지 않았냐고요.
 

민나 송 (출처: EO)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기술부터 만드는 사람들이 더 무모합니다."

민나의 말입니다. 개발에 몇 년을 쏟아붓고도 시장이 원하는 걸 못 만드는 팀이 부지기수입니다. 부동산이나 의료 같은 산업은 그저 데이터만 들여다봐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현장에 발을 담가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면서 민나가 매일 들은 불만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안 받는다.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다. 엄청난 발견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 민나는 바로 이 문제를 AI를 활용해서 풀기로 했습니다.


 

2017년, AI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처: EO)

 

2017년이었습니다. AI가 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였고, AI가 이메일에 답장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더 없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 큰 테크 회사가 나온 적도 없었습니다. 투자자도, 업계 사람들도 사업 아이템을 들으면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민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이니,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출처: EO)

 

세 시간 내내 "안 됩니다" 말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다

첫 고객 10곳을 따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했습니다.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콜드콜(구매 의사가 없는 잠재 고객에게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 영업 방식)을 하고, 사무실 문을 직접 두드렸습니다. 겨우 몇 곳에서 계약을 따냈고, 그 몇 건의 계약을 발판으로 삼아 전국 규모의 부동산 관리 회사에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아파트 관리 회사 1위와 2위가 엘리즈AI를 쓰겠다고 한 겁니다. 단둘이서 만든 서비스 하나로 미국 전역에 있는 아파트의 민원 접수와 계약 문의를 도맡게 된 셈입니다. 이때 회사 인원은 딱 두 명. 민나와 토니뿐이었습니다.

그 계약이 성사된 날의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부동산 관리 회사 경영진 12명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물 몇 살의 민나 혼자, 열두 명 앞에 섰습니다. 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이 기능 됩니까?" — "안 됩니다." "그러면 이건요?" — "안 됩니다." "이것도요?" — "안 됩니다."

세 시간 내내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며 민나는 토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생 최악의 미팅이었어. 끝났어. 이 딜은 망했어."

그런데 다음 날, 그 회사의 COO(최고운영책임자)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같이 합시다. 제품을 같이 만들어 봅시다."

세 시간 동안 "안 됩니다"만 솔직하게 말한 것이, 오히려 신뢰감을 준 겁니다. 경영진도 엘리즈AI가 초기 단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걸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사에 풀어야 할 큰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솔직한 사람과 같이 풀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겁니다.

능력을 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를 얻었다는 건,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12명 앞에서 세 시간 동안 그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투자자 100곳에 거절당해도 기죽지 않는 법

고객을 확보한 뒤에도 험한 길은 계속됐습니다. 첫 투자 유치에서 엘리즈AI는 100곳이 넘는 투자사에 투자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비슷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는 관심 없습니다." "이 시장에서 큰 회사가 나온 적이 없잖아요." 투자자들 눈에 부동산 AI는 돈이 안 되는 분야였습니다.

투자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습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직접, 빠르게 만드는 것. 큰 개발팀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 고객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에만 모든 걸 집중해야 했습니다.

 

 

민나는 돈이 없었던 시기가 오히려 나았다고 말합니다.

"돈이 많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사람을 더 뽑고, 돈을 더 쓰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실제로는 문제만 더 불어납니다. 돈이 없으면 문제가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풀었는지 안 풀었는지 바로 드러나니까요."

이 말은 스타트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자원이 부족할 때 오히려 문제의 본질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건, 어떤 일에서든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매출이 매년 두 배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투자자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00곳이 넘게 등을 돌렸던 투자자들이,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먼저 줄을 서게 됐습니다.

민나는 이 시기를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매일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회사가 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겁니다. 아무리 지치더라도요. 바퀴벌레처럼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죽지 않는 겁니다."

💡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스타트업을 ‘바퀴벌레 스타트업(Cockroach Startup)’이라고 부릅니다. 화려하게 성장하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유니콘'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어떤 악조건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생존력을 가진 회사를 뜻합니다.

한편, 초기 고객과의 관계에서 민나가 꼭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고객이 요청하면 일단 만든다는 것. 

"너무 고객에게 모든 걸 맞추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는 창업자가 많은데, 민나는 그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자신들을 믿어 준 초기 고객은 끝까지 챙겨야 합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감수하고 써 주는 고객이라면, 제품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엘리즈AI 서비스 화면 (출처: EliseAI)

 

"부족한 거 알면서도 써줄 테니, 우리가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우선으로 반영해 달라" — 민나는 이것이 스타트업과 초기 고객 사이의 건강하고 공정한 거래였다고 믿습니다.

 


 

전문가를 뽑았더니 회사가 멈춰버렸다

엘리즈AI는 임대 계약부터 시설 관리까지, 고객이 어떤 문제를 들고 와도 맞춤형 솔루션을 곧바로 내놓습니다. 이처럼 빠른 제품 개발 속도가 가능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민나는 한마디로 답합니다. 결국 사람이라고요.

민나는 첫 지원자 400명의 면접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회사에서는 CEO가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고, CTO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똑똑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사업 감각까지 갖춘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그 깐깐한 과정을 민나가 직접 챙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깐깐하게 사람을 골랐던 민나에게도 뼈아픈 실수가 있습니다.

2021년, 시리즈 B(초기 성장 단계에서 받는 투자)를 마치고 대규모 채용에 나섰습니다. 초기 멤버들이 한 사람이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맡느라 진이 빠져 있었거든요. 일을 수시로 바꿔야 해서 뭐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겠다는 불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대거 뽑았습니다. 한 사람이 다섯 가지 하던 걸 다섯 명이 하나씩 맡게 한 거죠.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영 아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는 훌륭했지만, 회사 전체의 방향을 하나로 꿰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부서마다 열심히 뛰는데 방향이 제각각이니, 정작 회사 전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도, 고객이 원하는 영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이른 '전문화'가 패착이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필요한 건 한 분야만 깊게 파는 전문가 다섯 명이 아니라, 영업도 하고 고객도 만나고 기술도 아는, 전체 흐름을 꿰뚫고 뭐든 해내는 사람 한 명입니다. 한 분야만 파는 전문가 다섯보다, 전체를 꿰뚫는 한 명이 빠릅니다.

이 또한 스타트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로운 팀이든, 새로운 프로젝트든, 초기에는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라는 사람보다 "일단 제가 해볼게요"라는 사람이 상황을 앞으로 끌고 갑니다. 민나는 이 뼈아픈 경험을 한 뒤 곧바로 방향을 틀었고, 그게 엘리즈AI를 다시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습니다.

 


 

주 90시간 업무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초창기에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했습니다. 첫 전국 규모 고객을 따냈을 때, 24시간 서비스를 보장해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딜이었고, 절대 틀어지면 안 됐습니다.

토니가 새벽 4시까지 시스템을 지켰습니다. 민나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교대했습니다. 동시에 새 기능을 개발하고, 신규 고객에게 영업하고, 기존 고객도 챙겨야 했습니다. 이 모든 걸 단둘이서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가장 혹독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민나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힘든 건 상관없습니다. 고객이 있고, 문제가 있으니까요. 한 걸음씩 나가면서 하나씩 풀면 되는 겁니다."

민나는 지금도 일주일 7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합니다.

"주 100시간은 잠을 줄여야 하니까 오래 못 합니다. 하지만 90시간은 됩니다. 일어나서, 일하고, 집에 와서, 제대로 자고, 다음 날 또 똑같이 하면 됩니다. 매일요. 그렇게 하다 보면 문제가 풀립니다."

일주일에 90시간이라니, 솔직히 보통 사람이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숫자입니다. 그런데 민나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핵심은 시간의 양이 아닙니다.

풀고 싶은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재밌으면 시간은 따라옵니다.

최고의 운동선수가 남들보다 훨씬 많이 훈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좋아하니까 계속하는 겁니다.

엘리즈AI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 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밀도가 높으니,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퍼집니다. 새로 합류한 사람도 이 분위기를 느끼고 발맞추게 됩니다.

 


 

민나 송은 다음 유니콘이 어디서 나올지에 대해 확신이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산업에서 나올 겁니다.

다들 흥분하는 분야에는 이미 경쟁자가 넘쳐납니다. 정작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데 아무도 안 건드리는 곳 — 주거, 의료, 교육 같은 영역. 8년 전에 민나가 "부동산 AI는 돈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뛰어든 바로 그런 곳에서, 다음 세대의 거대한 회사들이 만들어질 겁니다.

창업을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취업을 준비하든, 커리어를 바꾸려 하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든 — 남들이 다 몰리는 곳보다, 아무도 안 가려는 곳에 기회가 있습니다. 눈에 띄는 화려한 자리보다, 남들이 귀찮아하는 문제를 묵묵히 풀어가는 사람이 결국 인정받게 되니까요.

민나 송이 안내데스크에 앉아서 전화를 받던 것도, 투자자 100곳에 거절당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것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남들이 매력 없다고 했던 곳에서 3조 원짜리 회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비결을 물으면 민나는 한마디로 답합니다.

절대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바퀴벌레가 되라고.

 


 

👆 엘리즈AI 창업자 민나 송이 말하는, 투자자 100곳에 거절당하고도 유니콘이 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 편집: 김지윤 | 글: 서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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