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사업전략 #트렌드
AI와 바이럴의 시대, 유일하게 복사할 수 없는 창업가의 해자

이 글은 [제이슨의 기승전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준비해보세요.

[구독하러 가기]

 

왜 Cluely의 바이럴 공식도, OpenAI의 미디어 인수도 진짜 서사를 만들지 못하는가?

 

 

관심을 사는 시대 — 유통(distribution)가 실리콘밸리의 새 전쟁터가 됐다

 

지금 스타트업씬에서 가장 논쟁적인 회사를 하나 꼽으라면 Cluely입니다.

 Roy Lee는 Columbia 재학 중 코딩 면접을 실시간으로 도와주는 Interview Coder를 만들었고, 학교 측의 정학 처분을 오히려 브랜드로 만들었죠. Interview Coder를 Cluely로 리브랜딩한 후 "AI로 무엇이든 cheating하세요"라는 문구로 하룻밤 사이 화제가 됐고, Andreessen Horowitz로부터 $15M 시리즈 A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먼저 바이럴을 일으키고, 유저 반응을 보면서 제품을 만들어가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인스타그램에 바이럴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며 그 주장을 직접 실천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실체,' '아시아 남자의 문제점' 등 꾸준하게 Ragebait(분노유발) 컨텐츠를 찍어내는 Roy Lee
(출처: Roy Lee 인스타그램 캡쳐)

 

OpenAI도 최근 기술 업계 Founder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팟캐스트·미디어 네트워크인 TBPN을 인수하며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IPO를 앞둔 상황에서 "AI = 인터넷급 혁명," "AI의 민주화"라는 서사를 대중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테크 커뮤니티의 신뢰를 이미 확보한 플랫폼을 통째로 가져온 겁니다.

 

본인들의 인수 소식을 보도(?)하는 TBPN (출처: TBPN)

 

이 두 사건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유통우위(distribution advantage)와 서사구축(narrative shaping)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Cluely처럼 바이럴에 올인하고, OpenAI처럼 미디어 채널을 사들인다면...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 차별점이 제품에서 서사로 이동하는 순간, 서사 자체가 또다시 평준화되는 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200년 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0년 전 낭만주의(romantic) 시대의 바이럴 마케팅

 

1760년대 산업혁명 이전, 유럽에서 물건을 사는 건 장인(匠人)을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같은 의자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과 가치가 달랐죠. 장인의 기술이 곧 차별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이 등장하면서 그게 무너졌습니다. 기계가 하루에 찍어내는 의자가 장인이 한 달에 만드는 것보다 많아졌고, 품질도 균일해졌습니다. "누가 더 잘 만드느냐"로 승부하던 시대가 끝난 겁니다.

 

숨어 있는 세계사] 일자리 잃고 분노한 근로자들, 기계를 파괴하다 - 프리미엄조선
  공장의 등장으로 숙련 수공업자들은 돈벌이를 잃고 노동자로 취직해야 했습니다 (출처: AFP)  

 

공장 노동은 사람들을 익명의 부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뭘 만드는지, 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분업 구조 속에서 대중은 처음으로 노동과 자신이 분리되는 감각(소외감)을 경험했고, 유럽 사회 전반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번졌습니다. 낭만주의는 그 집단적 응답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Byron(바이런)이 등장합니다. 유럽 전역을 방랑하고, 전쟁에 참전하고, 수십 건의 스캔들을 일으킨 그의 시는 곧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사회 규범을 거부하며 자기 방식대로 사는 그의 삶이 "개인이 여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죠.

독일에서는 Goethe(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판했습니다. 실연으로 목숨을 끊는 청년의 이야기였는데, 독자들은 줄거리가 아니라 베르테르의 고통에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말로 꺼내지 못했던 '이 세상이 나의 내면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언어로 표현해줬기 때문이었죠.

 

낭만주의 시대 대표인물들: (좌) 괴테 (우) 바이런

 

두 사람이 만들어낸 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습니다. '외적 신분이나 이성보다 내면의 감정을 중시하는 하는 새로운 기준'이었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바이럴 공식이 알려지자 모방이 시작된거죠. 귀족 청년들이 바이런의 검은 망토와 우울한 표정을 따라했고, 베르테르의 노란 조끼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습니다. 베르테르를 따라한 모방 자살까지 연이어 발생했는데, 역사에서 Werther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모방된 서사는 서사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바이럴된 낭만주의 페르소나에 피로해진 대중은 결국 진짜만을 선택했습니다. Byron, Keats, Shelley, Hugo — 서사가 삶에 먼저 내장된 이들만 살아남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 AI가 만든 새로운 허무함

 

낭만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차별점이 사라지자 서사로 눈을 돌리고, 그 서사마저 모방되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던’ 그 흐름이 지금 스타트업씬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AI 우울증을 뜻하는 Claude Blue가 퍼지고 있습니다. 수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모델 업데이트 한 번에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죠. 기업 단위에서는 AI 에이전트가 인력 자체를 대체하며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한 달 만에 약 2조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SaaSpocalypse로 이어졌습니다.

 

AI로 더 많은 걸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생 갈고닦은 기술이 하루아침에 무의미해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처: The Free Press) 

 

결국 AI 발전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더 많은 기업들의 기술적 차별성이 0에 수렴하고 있다는 것. 제품으로 차별화가 안 되는 순간, 남은 경쟁은 누가 먼저 고객에게 닿고 누가 신뢰를 갖고 있느냐로 옮겨갑니다. Cluely와 OpenAI는 그 움직임의 가장 선명한 두 사례입니다.

 


 

 

Roy Lee는 Byron이다. 문제는 그 모방자들이다

 

Roy Lee는 바이런과 닮았습니다. Columbia 정학, 아마존 인터뷰 해킹 — 그 서사를 브랜드로 만들고, 규칙을 어기는 도구를 만들어 자신의 이력과 일치시켰습니다. ARR을 부풀렸다가 직접 인정한 것조차 그의 ragebaiting 페르소나와 묘하게 일관성이 있죠. Byron이 삶으로 시를 썼다면, Roy Lee는 삶으로 Cluely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Roy Lee와 Cluely가 아닙니다. 그가 공개적으로 설파하는 "Cluely Viral Playbook" 을 추종하는 움직임이죠.

 

방랑 없이 Byron의 망토를 걸치던 귀족 청년들과 구조가 같습니다. Roy Lee에게 그 방식이 작동한 건 방식이 옳아서가 아니라, 방식과 서사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럴은 신뢰가 아니고, 신뢰 없는 바이럴은 관심이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OpenAI TBPN 인수: 신뢰는 살 수 없다

 

OpenAI는 있던 신뢰를 스스로 잃고 되사려 하는 사례입니다.

OpenAI의 원래 서사는 강력했습니다.

 

"인류를 위해 안전하게 AI를 만든다."

 

Sam Altman, Elon Musk, Ilya Sutskever로 이어지는 초기 팀이 실제로 비영리 구조, safety 연구 우선, AGI를 단일 주체가 독점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결정의 원인으로 삼았을 때의 그 서사는 진짜였습니다.

 

OpenAI Co-founders. 지금 남아있는건 Altman과 Zaremba 뿐이다 (출처: Dive)

 

그러나 2023년 11월 그 멋진 서사의 균열이 시작됐죠.

Ilya Sutskever가 이사회를 주도해 Sam Altman을 전격 해임했습니다. AI 개발 속도가 너무 빠르고 안전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판단이었죠. 하지만 Altman은 5일 만에 복귀했고, Sutskever는 반년 뒤 조용히 떠났습니다. 안전 연구팀장 Jan Leike는 "안전 문화가 제품 출시에 밀려나고 있다"는 공개 성명과 함께 Anthropic으로 이직했고, 공동창업자 John Schulman과 CTO Mira Murati도 잇따라 회사를 떠났습니다. OpenAI는 미션 성명에서 "safely"를 삭제했고, 비영리 구조를 버리고 영리 전환을 선택했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근 Anthropic이 "자율 무기에 AI를 쓰기엔 아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방부와의 $200M 계약을 포기하자, OpenAI는 그 자리를 곧바로 채웠습니다.

Anthropic이 서사 때문에 포기한 자리를, OpenAI는 서사를 포기하며 채웠습니다.

 

(출처: Earn Your Leisure)

 

그리고 TBPN을 인수했습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채널로 되사려는 시도죠.

하지만 신뢰는 채널이 아니라 결정의 역사에서 옵니다. Superalignment팀을 해산하고, "safely"를 지우고, Anthropic이 윤리적 이유로 거절한 계약을 낚아챈 그 결정들이 OpenAI의 초창기 서사를 희석시켰습니다. TBPN이 아무리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가졌더라도, 신뢰는 스피커가 아니라 스피커 뒤의 행동에서 오기 마련입니다.

 


 

창업가들이 해야할 것: Day 1부터 서사 쌓기

 

모든 일이 발생한 후에 서사를 쌓는 건 끼워맞추기에 불과합니다. 
창업가는 Day 1부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 창업 여정을 실제로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Patagonia의 Yvon Chouinard(이본 쉬나드)가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등반가였던 그는 암벽에 박는 피톤이 바위를 훼손한다는 걸 알고, 본인이 쓰고 판매하던 제품 생산을 스스로 중단했습니다. 환경 기금에 매출의 1%를 기부하는 것도 마케팅 캠페인이 아니라 사업 결정이었죠. 환경과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온 그와 Patagonia는 Day 1부터 환경을 사랑하는 서사를 써내려왔고, 오늘날 지구상 가장 진정성 있는 친환경 브랜드로 손꼽힙니다.

 

  파타고니아 창업주 쉬나드 회장은 “지구를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로 만들겠다”면서 2022년 30억 달러(약 4조2000억원)에 이르는 파타고니아 지분 전액을 비영리재단과 환경단체에 양도했다. (출처: 파타고니아)  

 

서사는 복리로 작동합니다. 차곡차곡 쌓아온 결정들이 주목받는 순간, 그 축적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누구도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는 해자가 됩니다. 반대로 주목을 먼저 얻고 서사를 끼워넣으려 하면, Cluely의 바이럴 플레이북을 따르든 OpenAI처럼 수백억을 쓰든 결과는 같습니다. 신뢰와 서사는 살 수 없습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공개하는 것, 사업 결정의 이유를 기록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꾸준히 말하고 서사를 살아가는 것 — 이 반복이 쌓여 본인만의 스토리텔링이 완성됩니다.

링크 복사

Jason Jin PlotTwist · 에디터

jasonplottwist@maily.so

Jason Jin 님이 작성한 다른 아티클
더보기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 아티클
Jason Jin PlotTwist · 에디터

jasonplottwist@maily.so

Jason Jin 님이 작성한 다른 아티클
더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