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트렌드
공장에 AI를 팔지 마라, AI로 공장을 차려라

소프트웨어 깔아주겠다는 회사는 넘치는데, 정작 직접 공장 돌리면서 AI로 경쟁하겠다는 회사는 왜 없을까?

제조업체에 AI 솔루션 소개하러 가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익숙할 겁니다. 회의실은 번듯하고, 노트북은 최신형이고, '혁신'이라는 단어가 프린트된 보고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솔루션 데모를 시작하자마자 상대방 얼굴에 짜증이 한 가득. "이런 건 우리도 이미 하고 있습니다." 가만 보면 철 지난 솔루션인데 박박 우깁니다. 왜? 새 걸 도입하는 순간, 지금까지 자기네가 만들어온 것들의 실체가 바로 뽀록 나니까요.

이게 한국만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제조업 출신 투자자 Annelies Gamble이 AI 기반 금속 공급업체 Nox Metals 창업자 Zane Hengsperger와 나눈 대화의 핵심이 정확히 이겁니다. "기존 공장주들이 이걸 하고 싶어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AX를 설득할 수가 없다. 자기 방식에 갇혀 있으니까." 그래서 이 양반들의 결론은? 설득하지 말고, 직접 해라.


1. 공장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AI

• 제조업은 본질적으로 의사결정의 연속입니다. 원자재 들어오고 부품 나가는 사이에 수천 개의 판단이 끼어 있습니다.
• 이 작업 몇 시간 걸리지? 어떤 재고 쓸까? 견적 얼마로 잡지? 이 주문 받을까 말까? 어떤 기계를 어떤 순서로 돌려야 마진이 남나?
• 그런데 이걸 아직도 엑셀, 화이트보드, 20년차 반장님 감으로 돌리는 곳이 태반입니다. 여기에 AI를 제대로 붙이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돈을 주워담는 셈이죠.
• Nox Metals가 하는 일이 딱 이겁니다. 제철소와 CNC 가공업체 사이에서 금속을 잘라주는 회사인데, 가격 책정부터 재고 선택, 절단 최적화, 일정 관리, 납품까지 전부 AI로 돌립니다. 금속을 파는 회사지만, 진짜 경쟁력은 AI가 만드는 예측과 최적화에 있습니다.
• "작업 시간을 4시간으로 잡았는데 3시간에 끝나면, 1시간의 생산 능력을 날린 거다. 그 1시간 때문에 다른 주문을 거절하거나 기계가 놀게 된다." 이런 비효율이 공장마다 수십 군데씩 숨어 있습니다. 제조업에서 생산 능력이 곧 가격을 결정하니까요.

2. 왜 AI를 '팔면' 안 되고 '장착'해야 하나

• 여기서 진짜 날카로운 논점이 나옵니다. AI의 예측·최적화 효과는 공정을 직접 통제할 때만 복리로 쌓인다는 겁니다.
• 재고를 직접 안 갖고 있으면 리드타임을 줄일 수 없습니다. 일정을 직접 통제 안 하면 속도를 약속할 수 없습니다. 핵심 의사결정이 내 시스템 밖에서 일어나면 학습 루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그래서 Nox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절대 안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합니다. 금속 재고를 자기 대차대조표에 직접 올려놓는 거죠. "재고를 직접 가지고 있어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 제조업의 해자(moat)는 SaaS의 해자와 결이 다릅니다. 전환 비용이나 네트워크 효과가 아니라, 재고 포지션, 처리 밀도, 공정 지식, 그리고 시스템을 통과하는 모든 작업에서 배우는 능력. 이게 해자입니다.
• 솔직히 말하면, 공정 위에 얇은 AI 레이어만 얹어서 파는 회사? 회의적입니다. 값어치는 결국 기반 시스템을 충분히 쥐고 있어서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쪽에 쌓인다는 거죠. 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칼을 쓰는 요리사가 돈을 번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3. 설득은 포기하라, 그냥 이겨라

• 기존 공장을 AI 네이티브로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 데이터는 여기저기 조각나 있고, 워크플로는 절반은 소프트웨어, 절반은 엑셀, 나머지는 경력 30년차 작업자 머릿속에 있습니다. 기계는 낡았고, 문화적으로도 새 소프트웨어는커녕 AI를 들이댈 분위기가 아닙니다.
• DX건 AX건 핵심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입니다. 새 시스템이 들어오면 기존에 자기들이 만들어온 것의 실체가 드러나니까, 머리와 입이 따로 놀 수밖에 없죠.
• 그래서 이 사람들의 예측이 꽤 도발적입니다. 모든 레거시 공장이 서서히 AI를 도입하는 미래가 아니라, 소수의 AI 네이티브 신생 업체가 기존 공장들을 "steamroll(밀어버릴) 것"이라는 겁니다.
• "5~10년 후엔 전체 기업의 2%가 전체 물량의 30~50%를 처리하게 될 것이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학습 루프가 한번 돌기 시작하면 복리 효과가 나옵니다. 더 정확한 견적 → 더 많은 물량 → 더 많은 데이터 → 더 나은 가격·스케줄링 → 더 좋은 서비스 → 고객 집중 → 밀도 향상 → 경제성 개선. 이게 돌기 시작하면 따라잡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4. 재산업화는 로켓이 아니라 배관공이 만든다

• 미국 재산업화 논의가 요즘 뜨겁지만, 대화는 늘 로켓, 반도체, 방산 같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집중됩니다. 정작 산업 역량은 그 밑의 배관에 달려 있는데요.
• 원자재, 제철소, 서비스센터, 가공, 부품 공급, 물류 인프라. 이 연결 조직이 취약하면 꼭대기가 아무리 화려해도 소용없습니다.
• "한 고객은 스테인리스 스틸 한 조각을 못 구해서 제품 출시를 미뤘다. 중국에선 2주면 되는 걸 미국에선 6개월 걸린다." 이 한 문장에 현실이 다 담겨 있습니다.
• "제조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하나당, 공장 우선 스타트업이 50개는 있어야 한다." 서비스센터든, 물류든, 상류 공급망이든. 테크 업계가 '자산이 무겁다'고 고개를 돌렸던 바로 그 카테고리에서 기회가 나온다는 겁니다.


AI 네이티브 공장이라는 개념이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소수가 시장을 재편하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조업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AI를 '도구'로 남한테 팔려는 회사와, AI를 '체질'로 장착하고 직접 뛰는 회사. 어느 쪽이 이길지는, 굳이 제조업이 아니더라도 답이 보이지 않나요.

(출처: Annelies Gamble, "The Promise of the AI-Native Manufacturer",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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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로 Wilt Venture Builder · CEO

싱가포르에서 벤처빌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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