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투자 받는 법 (YC 인터뷰 썰)
· YC 인터뷰에서 준비된 답변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
· 실리콘밸리식 IR엔, 핏칭덱도 데모도 필요하지 않은 이유.
· 계산기들고 온 투자자 대응법.
YC 인터뷰 당일이었다. 지금은 Dogpatch로 이사했지만, 그당시엔 Mountain View에 위치한 오렌지룸 대기실엔 20대 초반 창업자들만 가득 차있었다. 옆에서는 미니 로켓 비슷한것도 가져와서 데모 준비하더라. 일주일내내 그리고 전날새벽까지 YC 인터뷰를 준비한거 치곤, 생각보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머리가 하얘진 느낌이었다. 트랙션이 들어간 장표 그리고 기능에 따른 가격표를 한장에 출력해 준비했고, 모든 YC 인터뷰에서 제일 처음 물어보는 “So what are you building?”이라는 질문에 답만 열심히 외우는 중이다.
그당시 조언받은 YC 선배 창업자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얘기한바론
1/ 일단 4:1 구조기 때문에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4명 파트너의 질문 세례가 퍼부어진다
2/ 연에 수만개 딜을 보는 사람들이기에 거짓말하면 다 안다
3/ 말 길게하면 중간에 무조건 짤린다
였고, 기존 한국 IR이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라는 거였다.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액셀러레이터, 그 당시만해도 한국 기업 7개에만 투자했던 그 악명높은 YC인데 막상 그들의 인터뷰 방식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디자인에 나름 자부심도 있어서 장표도 웹사이트도 예쁘게 만들어 놨는데, 트랙션 그래프도 잘 나왔는데, 투자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 리스트도 다 있는데..
막상 IR 장표를 쓸수 없어 준비할래 준비할수가 없는게 너무나 불안했다. 우리 사업의 진가를 표정과 말로만 어필해야 했다.
본론부터 얘기하면, 그렇게 준비없이 진행된 YC 인터뷰는 우리 기업의 trajectory를 바꿨다.
Orange Room 대기실에서 우리 회사가 불렸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Eric Migiscosvky, Brad Flora를 포함해 4명의 파트너가 밝게 우릴 반겨줬다.
아주 짧은 눈인사 뒤에 바로 질문. “So what are you building?”
1️⃣ YC 인터뷰, 즉 IR 왜 하는가?
투자자와의 IR은 모든걸 잘 준비해서 핏칭하는 발표 자리가 아니다. 하얘진 머리로 진행된 YC 파트너와의 인터뷰는 내가 처음 경험해본 IR의 종류였다. 우리 사업을 진심으로 공감해줬고, 코파운더들끼리의 관계에 궁금해했고, 투자자라기 보다는 선배 창업가로써 사업을 그동안 어떻게 키워왔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핏칭을 하려는 내 습성은 가볍게 무시하곤, 누가 우리 프로덕트를 가장 많이 쓰는지, 얼마나 자주, 어떻게 쓰는지, 우리 회사의 PM, 마케터인양 같은 눈높이에서 물어봐줬다.
“피터 근데 너희는 어떻게 만났어?”
“지분이 이렇게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데 그건 어떤 기준으로 나눈거야? 모두가 충분히 동기부여가 될수있는 구조인거야?”
‘아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10분이라는 시간에 매출이나 기술 특허 따위를 묻지 않고, 파운더들의 동기부여와 각자 그간 걸어온 길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구나’
그제야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과 철학이 보였고, 우리가 원하는 투자자의 모습이 보였다.
‘투자자와의 IR은 거래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그간의 여정을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사업 방향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일종의 힐링, 멘토링 시간이구나’.
IR, Investor Relations의 원 뜻 처럼, 이는 회사의 잠재성을 도출하기 위한 기업과 투자자와의 two-way communication 이다.
2️⃣ YC 인터뷰는 정답을 맞추는 시험이 아니다
23년, 매년 큰 규모로 Dogpatch에서 열리는 YC Alumni Day에 갔더랬다. 한창 YC 파운더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저 멀리 구석에서 거리낌없이 파운더들과 얘기나누는 어떤 아담한 누군가가 눈에 밟혔다. 딱 보니 YC CEO, Gary Tan이었다. CEO, President로 취임한지도 얼마 안되었고, 그쪽 분위기가 너무 재밌어보여 이참에 인사해야 겠다 하고 Gary에게 말을 걸었다. “Hey Gary! I love how you envision the future of Silicon Valley.”
Gary Tan은 내가 만나본 투자자중에 파운더랑 어울렸을때 가장 거리낌없는 투자자이다. 그는 파운더 자체이며, 편하게 파운더들과 대화할수 있는 투자자중 독보적이다. Gary가 Initialized Capital에서 막대한 펀드 수익률을 내고, 현재 YC의 미래를 책임지는데에는 그가 파운더들에게 온전히 집착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우리 YC 인터뷰가 어찌 끝났는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나는 내 못난 모습, 날것 그대로를 YC에게 건내줬었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에 마침 상영하던 Joker를 보러 영화관에 갔더랬다. 그런데 말도 안되게, 영화중간 Brad Flora에게 몇가지 추가 정보를 요청받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Eric으로 부터 최종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YC는 이 모든과정에서 우리의 날것을 보길 원했고, 우리를 의심하고 재보기 전에 아이템에 대해 믿어주고 팀을 신뢰해줬다. 추후 우리가 더 큰 투자를 받고 성장의 획을 그을수 있었던건 YC가 보여준 투자자와 파운더의 진정한 신뢰 관계 때문이었다.
결론.
“심사역님, 저희 오늘 Deck 없이 그냥 편하게 얘기 나눠볼까요?”
IR은 발표도, 설득도 아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쇼는 더더욱 아니다.
투자자도 사람이다. 우리가 밤새 만들었던 장표, 정리했던 예상 질문 리스트, 연습했던 완벽한 답변들…
머리를 열심히 돌려야지만 이해되는 그런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정보들은 잠깐 내려두고, 먼저 서로에 대한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어떨까?
IR은 우리가 얼마나 잘 준비했는가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제일 먼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자리 아니겠나.
물론, 언젠가(Series A 쯤에)는 수십억, 수백억이 오가는 무거운 IR 자리도 있으리라. 창업가 출신보다 금융권 출신 VC가 계산기 들고 추궁하는 날도 있으리라.
완벽한 숫자와 논리로 승부해야 하는 순간도 올것이다. 근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긴장 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투자자는 투자자가 아니라 당신을 믿어주는 돈쥐고 있는 사람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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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YC CEO, Gary Tan과,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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