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바쁜 한 주였는데 왜 이렇게 찝찝할까요.
"다음 주엔 진짜 해야지."
그 다짐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 자가 진단
✓ 바탕화면에 '제안서_최종_진짜최종_0315.pptx' 파일이 7개나 있는데 어떤 게 진짜인지 모르겠다.
✓ 링크드인에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한 사람들,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메시지 초안만 저장되어 있다.
✓ 회사 소개서가 아직도 작년 버전인데, 새 버전 만들어야지 하면서 또 옛날 거로 미팅 나갔다.
✓ 노션 '나중에 읽을 자료' 페이지에 링크만 100개 넘게 쌓여있는데 한 번도 다시 안 봤다.
✓ 법인카드 영수증들이 지갑에서 화석이 되어가는데, 경비 처리는 언제나 ‘다음 주에’
✓ 콜드 메일 보낸 후 팔로업 해야 하는 리스트가 엑셀에 있는데, 파일 여는 것부터 스트레스다.
✓ 이번 분기 성과 정리해서 보고서 만들어야 하는데, 데이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시작도 못 하겠다.
티끌 미뤄 태산
긴급하지 않은 일은, 영원히 긴급해지지 않습니다
스티브 코비의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우리 업무는 긴급성과 중요성으로 나뉘는데, 가장 방치되는 영역이 바로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구역입니다.
사업개발자든, 마케터든, 스타트업 대표든, 세일즈든 상관없이 외향적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 현상은 더 심합니다. 미팅, 제안, 팔로업, 네트워킹. 이런 일들은 마감이 있고, 상대방이 있고, 응답을 요구합니다. 즉, 긴급성이 내재되어 있죠.
반면 데이터 정리, CRM 업데이트, 프로세스 문서화, 포트폴리오 정리 같은 일들은 어떤가요? 중요하지만 오늘 안 해도 아무도 독촉하지 않습니다.
긴급하지 않은 일은 긴급한 일이 모두 끝나는 완벽한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죠.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 업무 구조 자체가 이런 일들을 계속 밀어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McKinsey의 연구에 따르면 비즈니스 개발이나 고객 대면 직군은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반응적 업무(미팅, 이메일 응답, 긴급 요청 처리)에 쓰고,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문제는 이 '밀린 일들'이 쌓이면 결국 긴급한 일들의 효율까지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파이프라인은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업데이트되지 않은 CRM은 중복 작업을 만들어냅니다.
슬랙메시지 실시간 확인 그만
우리 뇌가 Admin 업무를 피하는 과학적 이유
여기에 뇌과학적인 이유가 더해집니다. 우리가 중요한 정리 업무 대신 자꾸 슬랙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새로고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도파민 시스템 때문입니다.
타인과 상호작용하거나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는 뇌에 즉각적인 성취감과 도파민을 줍니다. "방금 내가 이 문제를 해결했어!"라는 피드백이 바로 오니까요. 하지만 엑셀 시트를 정리하고, 지난 미팅 노트를 분류하는 작업은 즉각적인 도파민을 주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결과는 나중에야 나타납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들고 보상이 늦은 일을 피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당신이 명함 정리를 미루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뇌가 더 빠르고 자극적인 보상을 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은 중요한 개념을 제시합니다. 바로 ‘주의 잔여(Attention Residue)’입니다. A 업무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B로 넘어가면, 우리의 주의력 일부는 여전히 A에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B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분산된 상태"가 이어집니다.
문제는 실무자 업무가 가장 쉽게 "중간에 잘려나가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이메일이 오면 끊기고, 메신저 알림이 오면 끊기고, 갑작스러운 미팅 요청이 오면 또 끊깁니다. 그래서 뇌는 이런 일들을 "한 번 시작하면 자꾸 방해받는, 피곤한 일"로 학습하게 됩니다.
바디 더블링 효과
혼자 있으면, 뇌는 자동으로 회피 모드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지루하고 방해받기 쉬운 일들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심리학자 Ari Tuckman 박사의 연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누군가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을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협업할 필요도, 대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옆에서 각자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혼자 있을 때 활성화되는 '자기 감시 회피' 기제가 타인의 존재로 억제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Body Doubling'이라 부릅니다. Tuckman 박사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 과제 착수가 더 빨랐고, 완료율도 높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타인이 친구일 필요도, 같은 업무를 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로버트 자이언스의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이론으로도 설명됩니다. 인간은 타인이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생리적 각성 상태가 높아집니다. 이 적당한 긴장감은 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거나, 이미 익숙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수행할 때 엄청난 추진력으로 바뀝니다.
카페에서 일이 더 잘되는 이유
코워킹 스페이스의 성장
Body Doubling 효과는 우리 일상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되는데 카페에 가면 일이 술술 풀린다고 말합니다. 이게 단순히 커피나 분위기 때문일까요?
시카고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완전한 정적보다 적당한 배경 소음이 있을 때 창의적 과제 수행 능력이 향상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발견은 같은 소음 수준이라도 '사람들이 있는 공간'일 때 집중 지속 시간이 더 길었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혼자 노트북을 펼치면 유튜브를 클릭하거나 냉장고를 열게 되는 것은 의지력 부족이 아닙니다. 사회적 맥락이 없는 공간에서 뇌는 자동으로 저항이 가장 적은 경로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성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의 조사에서 코워킹 공간 이용자들은 네트워킹이나 협업보다 '함께 있지만 각자 일하는 환경' 자체를 가장 큰 가치로 꼽았습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집중하고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저 사람처럼 해야지"라는 무의식적 동기가 생깁니다.
구글과 아마존 고성과 팀의 비밀
그들이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진짜 이유
이 Body Doubling 효과는 기업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는 2012년부터 수년간 180개 팀을 분석한 대규모 연구입니다. 고성과 팀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개인 역량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한다는 감각'이었습니다. 팀원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간다'고 느낄 때 성과가 극대화되었습니다.
MIT 인간 역학 연구소의 Alex Pentland 교수팀은 더 직접적인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사무실 내 물리적 근접성과 협업 품질을 분석한 결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자주 소통했고, 프로젝트 완료 속도도 빨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효과가 '계획된 협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의 편리함을 맛본 기업들이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시 오피스 출근을 장려할까요? 단순히 관리 감독 때문이 아닙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개인의 생산성과 조직의 성과를 모두 끌어올린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의지력이 아닌 환경
지금까지의 연구들이 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밀린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혼자서 긴급하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모이는 것. 서로 대화할 필요도, 협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 됩니다.
조직이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주길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Body Doubling은 개인 차원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쓰거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과제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 때 Body Doubling 효과는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4월 3일 금요일 GritBD Admin Night에서 밀린 업무 함께 처리해요! 신청 바로가기 :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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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채팅방(0501) LINK 링크드인 LINK 사업개발 문의 info@grit-bd.com
GritBD Admin Night
각자의 밀린 업무를 들고 모여, 같은 공간에서 함께 처리하는 저녁입니다. 네트워킹이나 잡담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냥 같이 앉아서 각자 일만 합니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혼자서는 계속 미뤄왔던 일들을 해치우는 시간입니다.
- 4월 3일(금) 19:00 ~ 21:30
- 무브먼트 강남
- 선착순 15명
- 링크 : https://vo.la/YnanZ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