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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가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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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될 직업 목록에 자리한 변리사를 보며

얼마 전 AI 시대에 대체될 직업을 순위로 매긴 기사를 봤다. 꽤 상위권에 변리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먼 미래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지만 막상 기사로 접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한편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기사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과연 나는, 우리는, 이 변화의 파도 앞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기존 칼럼에서도 몇 차례 다루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인공지능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꽤 그럴듯한 발명 신고서를 완성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ChatGPT든 gemini든, 발명자가 자기 아이디어를 몇 줄 입력하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형식도 갖추고 내용도 채운 문서 하나가 뚝딱 나온다. 겉보기엔 제법 전문가가 쓴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불과 1~2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로 품질이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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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명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붙는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구체화된 그 발명이 과연 질문한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세부적인 구성까지 만들어서 대답해준 인공지능의 것인지 하는 문제다. 발명자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라고 던졌을 때 AI가 "그러면 이런 구조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며 구체적인 기술적 구성까지 제시했다면, 그 아이디어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직 법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논란의 여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핵심은 발명자의 지위 문제보다, 변리사로서 AI와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과 진짜 그런 것

인공지능이 꽤 그럴듯해 보이는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문장도 매끄럽고, 청구항 형식도 나름 갖추고 있으며, 발명의 효과까지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문가가 쓴 명세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결국 특허라는 권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쉼표 하나가 잘못 찍혀서 청구항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불필요한 한 단어가 포함되어 권리 범위가 좁아지는 것. 침해하는 상대방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명세서의 완성도란 단순히 문장이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분쟁 상황을 얼마나 치밀하게 예측하고 대비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뼈저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인공지능이 쓴 명세서 무엇보다 청구항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의 권리를 우연에 내 던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해 보이는 문장을 생성할 뿐, 이 단어 하나가 나중에 어떤 법적 리스크로 돌아올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글의 품질과 권리의 품질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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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원만 해주세요"라는 말

실무를 하다 보면 고객들이 특허 명세서를 다 써 왔다면서 출원만 대행해 달라고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AI로 작성한 명세서를 들고 오시는 분들이 확실히 늘었다. 이런 경우 잘 설명드리고 내용을 수정하여 진행하곤 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 내용을 그대로 출원하여 행여나 등록까지 되더라도 변리사의 눈에는 아무런 실질적 의미가 없는 특허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구항의 권리 범위가 지나치게 좁거나, 핵심 구성요소가 빠져 있거나, 경쟁사가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면 등록증은 벽에 걸어둘 액자는 될 수 있어도, 실제 비즈니스를 지켜주는 방패는 되지 못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비용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명세서 작성 비용을 아끼다가 정작 권리행사를 해야 하는 순간에 쓸 수 없는 특허를 갖고 있게 되는 것은, 보험료를 아끼려고 보장 범위를 극단적으로 줄인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변리사와 인공지능

그렇다면 변리사는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AI를 적으로 돌리는 것도,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몇 가지 활용법을 고민해본다.

AI를 선행기술 조사의 1차 필터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 방대한 양의 특허 문헌을 빠르게 훑어보고, 관련성이 높은 문헌을 추려내는 작업은 AI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변리사가 이 작업에 쏟던 시간을 아껴서, 추려진 문헌을 깊이 분석하고 회피 설계 포인트를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칼을 가는 시간을 줄이고 칼을 쓰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명세서 초안 작성의 보조 도구로 활용하되 최종 설계는 반드시 변리사가 하는 것이다. AI가 작성한 배경 기술이나 실시예 초안을 출발점으로 삼되, 청구항 설계와 권리 범위 전략은 변리사가 주도해야 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AI는 벽돌을 빠르게 쌓아줄 수 있지만 건물의 설계도는 건축가가 그려야 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기술 설명이 어렵다고 느끼는 고객에게 AI로 먼저 아이디어를 정리해보시도록 안내하고, 그 결과물을 함께 보면서 변리사가 핵심을 짚어드리는 방식이다. 고객도 자기 발명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변리사도 기술의 본질에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역할 자체를 변리사의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고객들이 AI로 작성한 자료를 가져오는 빈도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때 그 내용이 기술적으로 타당한지, 권리화 관점에서 문제는 없는지, 혹시 AI가 지어낸 허위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전문가의 시각으로 걸러내는 것. 이 역할은 AI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오직 실무 경험이 축적된 변리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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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장 경험에 답이 있다

AI 시대에 변리사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에서 깊이를 쌓아야 한다. 그것은 수백 건의 출원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이고, 수십 건의 분쟁 사례에서 체득한 권리 설계의 감각이며, 고객의 사업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IP 전략을 제시하는 통찰력이다.

AI는 텍스트를 빠르게 생산하지만, 이 문장이 3년 후 소송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얼마나 신중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AI는 선행문헌을 빠르게 분석하지만, 이 기술이 고객의 사업 모델에서 어떤 전략적 가치를 가지는지는 판단하지 못한다. 바로 이 간극이 변리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고, AI 시대에 오히려 더 부각될 수 있는 변리사의 본질적 역량이다.

대체될 직업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느냐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잘 다루면서도, 도구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 기계가 빠르게 달리는 시대에,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를 정해주는 것. 그것이 앞으로 변리사가 해야 할 일이고, AI 시대에 살아남는 변리사의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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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철현 대표 변리사는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하고 2007년 44기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TIPs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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