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 #커리어
번아웃 극복기

사실 제가 몇 주 전에 찐하게 번아웃이 왔습니다… 번아웃 관련 발표도 했는데 말이죠. 또 왔습니다 그놈이.

옛날에는 퇴사하면 됐는데 이제는 내 회사라 퇴사를 못하네? 그래서 열심히 쉬었어요.

쉬고 나서 회사 돌아가기 전날 밤 2년 전에 발표했던 영상을 다시 봤어요. 보면서 느끼는 건 과거의 내가 나를 살리는구나 싶어요.

그동안 겪은 네 번의 번아웃을 웨비나에서 풀었던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해요. 2024년 4월에 자영님, 키키님과 함께 디자이너의 성장과 관련해 세션을 진행했었거든요. 이거 세션할 때까지만 해도 더 이상 번아웃 안 올 거야! 라고 확신했었는데 (ㅎㅎㅎ)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는 건가 봐요.

암튼 2년 전의 제가 저를 도와주네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해당 웨비나 내용을 정리하고, 이번에 겪고 있는 번아웃을 덧붙였어요. 저 같이 번아웃과 관련해서 어려움 있는 분들에게 이 글과 영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강영화 입니다. 오늘은 제가 일을 하면서 여러 번 겪었던 번아웃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하나 풀고 싶은 오해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면서 “좋은 회사만 다녔겠지”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도 꽤 오랜 기간동안 아무도 모르는 회사를 다녔답니다.

제가 처음 다녔던 회사는 PR 에이전시였는데 아마 아는 분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그 다음에 갔던 회사는 6개월 만에 망했어요. 그리고 4개월 정도의 공백기를 거친 뒤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커리어 초반 약 2년 정도는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아마 경력 3년 정도까지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저 역시 그 시기에는 확신이 거의 없었어요.

이후 스포카라는 회사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한동안은 “내가 정말 1인분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고민을 계속 했어요. 뒤돌아보면 그 시기가 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회사들을 거치면서 계속 저의 활동을 통해 회사를 알리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아왔어요. 한마디로 열심히 살았던 거죠. 그래서 저를 알게 된 분들이 좀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열심히 살다보니 알려지고 더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지금은 조금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정도까지 된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를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그런데요. 일을 좋아하면 거의 항상 같이 오는 게 있어요. 바로 번아웃이에요.

저는 커리어 동안 크고 작은 번아웃을 여러 번 겪었어요. 돌이켜보면 번아웃은 보통 우리가 컴포트 존을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도전하는 과정에서 불안과 압박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번아웃을 겪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은 제가 겪었던 네 번의 번아웃과 그걸 어떻게 지나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첫 번째 번아웃 – 2019년 봄

첫 번째 번아웃은 2019년 봄이었어요.

그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크라우드 펀딩은 제품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돈을 받고 나중에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잖아요. 예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무려 2,500명이나, 1억원이 넘는 돈을 후원해주셨죠.

처음에는 마냥 좋고, 기쁘기만 했어요.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요.

제가 구상했던 제품과 실제로 만들어진 제품 사이에 차이가 있었고, 그걸 본 사람들이 댓글로 강하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건 우리가 기대했던 게 아닌데?”, “이게 맞는 거냐?”, “담당자 나와라” 같은 댓글이 하루만에 몇십개가 달렸어요.

그때 멘탈이 정말 크게 흔들렸어요. 제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한 것 같고,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때는 그냥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눈물이 안 멈추더라고요. 위워크 역삼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자리에서도 눈물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폰부스로 들어가서 울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그날 밤 8시쯤이었는데 정신과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알려줬어요.

그래서 국립정신건강센터 응급실에 가서 약을 받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다음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회사를 갔죠.

사실 저는 이전에도 힘들 때 가끔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으며 괜찮아지는 경험을 몇번 했어요.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그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결국 6개월 만에 퇴사를 하게 됐어요.

 


두 번째 번아웃 – 2020년 여름

그 다음 번아웃은 2020년 여름에 찾아왔어요.

당시 저는 내부 제품을 만드는 팀으로 이동하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빡셌죠. 디자이너는 저 한 명이었고, 개발자는 열 명이었어요. 그것도 대부분 풀스택 엔지니어였어요. 그래서 여러가지 제품을 저 혼자 디자인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 시기에 저는 6개월 동안 무려 20개 정도의 제품을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이렇게 일해도 살아남는구나” 싶을 정도예요. 정말 힘들었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몸도 버티지 못했어요. 몸에 염증이 생기고 여러 가지 신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이후에 디자이너가 추가로 채용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어요. 나중에 돌아보니까 제가 하던 일을 결국 네 명 정도가 나눠서 하게 되더라고요.

그 때 2019년 가을부터 시작한 심리 상담을 지속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일을 대하는 제 태도와, 일과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세 번째 번아웃 – 보어아웃

2021년 가을에는 조금 다른 양상의 번아웃을 겪었어요. 흔히 말하는 보어아웃(Boreout)이었죠. 보어아웃은 쉽게 말하면 지루함에서 오는 번아웃이에요. 일이 너무 단조롭거나 나와 맞지 않을 때 생기는 상태예요.

그 당시 저는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어요. 저는 제로투원, 즉, 빠르게 피드백을 받고 반복하면서 개선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때 진행한 프로젝트는 몇 달 동안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몰입이 잘 안 됐던 거 같아요.

그때 제가 했던 방법은 동료들과 산책을 많이 했고, 생각보다 더 많이 쉬고, 그리고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서 하나씩 처리했어요.

이전에 인스타그램에 정리했던 "함께 자라기" 책 내용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일의 난이도와 나의 실력 사이의 균형을 더 잘 맞췄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 난이도 / 실력에 따라 몰입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불안함과 지루함 영역에 오래 있으면 이게 루틴이 되고 행동이 습관화 돼요. 빠르게 알아차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 나를 도와주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네 번째 번아웃 – 2022년 겨울

그 다음 번아웃은 2022년 겨울이었어요.

이때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한 회사를 3년째 다니면서 리더십과의 갈등이나 스스로 느낀 심리적인 부침이 있었죠. 아무리 노력해도 리더십의 신뢰를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내가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심리적인 불안이 굉장히 큰 상태가 오래 지속됐어요.

그때 했던 해결 방법은 대화를 많이 했던 거예요. 회사에서 저보다 오래 다닌 동료들을 찾아가서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야 할까?”

그리고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걱정이 많구나.” 이렇게 스스로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제가 바닥을 찍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경험을 했어요.

“지금 너무 힘들다.”

“지금 거의 바닥에 온 것 같다.”

“아,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구나.”

올라갈 것 같은 순간이 굉장히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요. 그 때가 생일즈음 이었는데, 그 때 겪었던 경험이 너무 신기했어요. 2년전 일인데도 어떻게 느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생생해요. 너무 신기해서 스토리에 올렸던 것도 생생하게 생각나요.

그 이후로는 독서, 기록, 코칭, 여행 같은 것들을 통해 저 자신을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저를 지탱하게 도와준 아주 고맙고 단단한 도구들인 것 같아요.

 


번아웃을 겪으며 배운 것

이렇게 여러 번의 번아웃을 겪으면서 몇 가지 깨닫게 됐어요.

먼저, 번아웃과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이놈들은 늘 찾아와요. 우리가 잘하고 싶어하고, 성장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그냥 버티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들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나를 해치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번아웃을 막으려고 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도구들을 활용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심리상담, 정신과 진료, 대화, 휴식, 기록, 독서, 여행 같은 것들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됐고,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2026년 3월 – 번아웃, 그리고, 다시 심리상담

서두에 말했지만 최근에 번아웃이 정말 크게 왔어요.

제가 12월부터 집중해서 작업하던 프로젝트 하나가 2월 말 모든 계약서와 서류 작업을 끝으로 끝났어요. 상대와 저희와 협상하기엔 기한이 짧았고, 오고가는 돈의 규모도 크고, 실수하면 딜이 엎어질수도 있었어요. 저의 공동창업자가 지금 하고 있는 영어 교육 앱 엘스(Else)에 100% 집중할 수 있도록, 저는 까다롭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가져갔어요. 3개월 동안 정말 긴장하며 일했던 거 같아요. 그 일만 있었던 건 아니고 거기에 스트레스를 더하는 상황이 몇 개가 더해져 있었죠. 아이 준비를 계속 하는데 아이가 안 생기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회사 안팎에서 제게 어려운 일들이 계속 있었어요. 그 스트레스들이 유독 더 크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큰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싶은 그 날. 밤에 눈물이 안 멈추더라고요.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계속 안 좋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공황 발작이었던 거 같아요. 숨이 안 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했거든요.

마음이 정말 사막같이 버석거렸어요. 다음날 회사에 월간 회고가 있어서 참여하는데 내가 지난달에 뭘 했는지, 어제 뭘 했는지 조차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꼈어요.

동료들의 배려로 일주일간 푹 쉬고 돌아왔죠.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쉬었어요.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심리상담을 예약했어요. 동료 중에 한 분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정말 전문성이 높은 센터 같아 저도 상담을 다시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난주에 첫 상담을 받고 왔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이 제 어린 시절 상처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번아웃이 온다고 공황을 경험하는 건 아니에요. 뭔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리는 여러 개의 자아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금 상담을 하는 저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는 다르게 행동하겠죠. 이런 자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이어져있어요. 영화씨의 자아 중 큰 부분은 성취하는 사람, 그걸로 나아가는 모습이 있고, 그게 어쩌면 방어기제 일수도 있어요. 어렸을 때의 나, 가족안에서의 나, 다른 자아들이 지금 잘 살고 있는 내게 영향을 못주도록 보호막을 만들고 방벽을 쌓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증폭되도록 만들 수가 있답니다.”

상담이 끝난 직후는 희망적이기보단 울적했어요. 과거의 상처가 나를 괴롭게 하고 있고, 내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30년 가까이 지난 일에도 슬프다니.

또, 아이를 갖는 것도 성취의 일부이자 과업, 해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하지 못했을 때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전히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데 도사죠.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저는 네 번의 번아웃을 이미 극복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 겪는 힘든 일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번아웃은 내가 잘 해내고 싶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라는 거. 그래서 저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그냥 ‘이 모든 과정을 파도처럼 느껴보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서포트와 함께 잘 넘겨보자’ 라는 생각이 더 건강하게 나를 지탱할 거라는 것도 알겠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힘든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도 커리어 초반에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간들도 결국 성장의 과정이었어요. 지금도 종종 저를 의심하고 또 힘들어 하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그것도 내가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걸 알아요. 뒤를 돌아보면 어느 순간 앞으로 나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번아웃은 내가 나를 몰아세운 결과가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려고 보낸 신호기도 하죠.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기록하고, 도와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2년 전의 제가 오늘의 저를 살렸듯, 오늘의 이 기록이 훗날 또다시 흔들릴 저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사막 같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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