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마인드셋 #커리어
프레임워크를 외운다고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험 없이는 기본기가 쌓이지 않고, 기본기 없이는 AI도 쓸 수 없다


프레임워크를 다 배웠는데, 왜 문제를 못 찾을까

JTBD를 공부했다. 린 캔버스도 채워봤다. OKR 설정법도 익혔다. 그런데 막상 실제 서비스 앞에 서면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막힌다. 이 경험은 생각보다 흔하다. 프레임워크를 배우는 것과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다른 능력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지식이고, 후자는 감각이다. 그리고 감각은 책에서 오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꽤 늦게 깨달았다. 처음 PM 역할을 맡았을 때, 나는 프레임워크를 잘 쓰면 좋은 기획이 나온다고 믿었다. 린 캔버스의 칸을 채우면 사업 구조가 보이고, JTBD로 인터뷰를 설계하면 유저 니즈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칸이 채워졌지만 내용이 비어 있었다. 형식은 완성됐는데 판단이 없었다. 그 공백이 어디서 오는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기본기는 현장에서만 쌓인다

시스템 아키텍트가 경험에서 나오듯, PM의 문제정의 역량도 현장에서 나온다. 여기서 현장이란 구체적인 것들이다. 서비스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 지표가 왜 떨어졌는지 추적해본 경험, 실패한 기능을 롤백하면서 왜 틀렸는지 복기해본 경험. 이런 것들이 쌓여야 "이 지점이 문제다"라는 감각이 생긴다. 프레임워크는 그 감각을 정리하는 도구일 뿐, 감각 자체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유저와 직접 대화해본 경험도 그 중 하나다. 인터뷰 가이드를 아무리 잘 짜도, 유저가 말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은 몇 번 직접 겪어봐야 체감된다. 유저는 "검색이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검색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간극을 읽는 능력은 인터뷰 방법론을 외운다고 생기지 않는다. 틀린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현장에서 부서지는 경험을 반복해야 생긴다.

다만 이 경험들이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길은 없다. 지표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원인을 추적하고, 가설을 세우고, 틀리고, 다시 추적하는 사이클을 충분히 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패턴은 전에도 봤다"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기본기다.

현장 학습 사이클: 지표 추적→가설→실패→재추적 반복

AI가 실행을 대신할수록, 판단력의 값이 올라간다

AI는 실행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다. 코드를 짜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AI가 대신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AI를 잘 쓰는 법"을 배우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AI를 잘 쓰려면 먼저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질문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은, 결국 현장 경험에서 온다.

경험이 없으면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유저 리텐션이 떨어졌는데 원인을 분석해줘"라는 질문과 "온보딩 3일차 이탈률이 지난달 대비 12% 올랐는데, 이 시점에 변경된 UI 요소와 이탈 패턴의 상관관계를 봐줘"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후자의 질문을 던지려면 지표를 추적해본 경험, 온보딩 흐름을 직접 설계해본 경험, 이탈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지 손으로 파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AI가 강력해질수록, 그 AI에게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간다.

경험 없는 질문 vs 경험 있는 질문: 구체성의 극적 차이

책에서 배운 것과 현장에서 체득한 것의 간극

책으로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책은 정제된 사례를 다룬다. 성공한 프로덕트의 의사결정 과정, 잘 정리된 실패 회고, 깔끔하게 서술된 프레임워크 적용기. 그런데 실제 현장은 정보가 불완전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시간이 부족하다. 그 조건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경험이 없으면, 책에서 배운 것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 지표 이상을 발견했을 때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랐다. 퍼널을 어떻게 쪼개야 하는지, 어떤 세그먼트를 먼저 봐야 하는지, 어떤 가설이 검증 가능한지. 이것들은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직접 틀린 가설을 세우고, 엉뚱한 곳을 파다가 시간을 날리고, 그러면서 "이 패턴일 때는 여기를 먼저 봐야 한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 감각이 지금 내가 AI에게 던지는 질문의 질을 결정한다.

이러한 간극은 AI 시대에 더 선명해진다. AI가 실행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면서, 실행 능력 자체의 희소가치는 낮아진다. 반면 무엇을 실행할지 판단하는 능력, 어떤 문제가 진짜 문제인지 인식하는 능력은 더 희소해진다. 그 능력은 현장에서만 쌓인다. 책으로 배운 것과 현장에서 체득한 것의 간극, 그 간극이 AI 시대의 해자가 된다.

경험이 해자가 되는 시대

프레임워크는 도구다. 도구를 잘 쓰려면 도구를 쓸 맥락을 알아야 한다. 맥락은 현장에서 온다. 서비스를 운영하고, 유저와 부딪히고, 지표를 추적하고, 실패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쌓인다. 이 경험이 없으면 프레임워크는 형식을 채우는 도구에 그친다. 내용이 빈 채로 칸만 채워진 린 캔버스처럼.

결국, AI가 강력해질수록 기본기의 가치는 올라간다. 기본기란 화려한 것이 아니다. 지표가 왜 떨어졌는지 직접 추적해본 것, 유저가 말하는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몸으로 겪어본 것, 틀린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해본 것. 이런 경험들이 쌓여야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그 답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현장에서 틀려볼 용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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