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오후 8시의 약속
목요일 오후 8시. 양재천 근처의 한 조용한 공간에 다섯 명의 창업가가 모였다. 어떤 이는 이미 오후 5시부터 자리를 잡고 내일 마감인 서류를 쓰고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진짜 해 본 사람만 나오는 스피드가 있거든요." 누군가 말했다.
페이지 애프터를 통해 책과 사유의 즐거움을 나누던 우리가 새로운 형식의 모임을 시작했다. 독서 모임이 삶과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면, 파운더스페이지는 그 질문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다.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평소에 회고 같은 것들은 주간 회의 때 주로 하긴 하는데, 회고의 효능감을 잘 느끼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같은 자리를 통해서 좀 더 회고스러운 회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피트니스 관련 앱을 개발하는 분도 비슷한 이유로 왔다. "주변에 창업을 준비했던 친구들도 있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사실 사업을 물려받은 친구들이 많거나 창업을 했다가 포기한 친구들이 있어서. 끝까지 직접 해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하게 됐습니다."
교육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사업하다 보면 너무 바빠서 이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데요. 요즘 밤을 거의 새우면서 일하고 있어서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네요." 활동 범위가 넓다 보니 이동 중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금융 경력을 가진 분은 AI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투자 시스템을 준비 중이었다. 소수의 인원으로도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훨씬 큰 규모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고 있었다.
각자의 영역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그냥 회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지난 2주의 진척: 작지만 확실한 움직임들
본격적인 회고는 지난 2주간의 진척을 공유하며 시작됐다.
한 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창업가로 독립한 지 몇 달 됐는데, 일과 휴식의 리듬을 찾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며칠 집중해서 일하고 하루는 푹 쉬는 사이클을 반복하니까 생산성이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외주도 하고 있는데 신기한 게, 영업을 따로 안 해도 일이 계속 들어와요. 창업 씬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디자인에 대한 니즈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다른 분은 마케팅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제 서비스 홍보를 위해 SNS 계정을 키우고 있는데, 예상 외로 논쟁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오히려 이걸 활용하기로 했어요. 어쨌든 사람들이 제 콘텐츠를 보러 오니까요.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대박이네요."
"네, 덕분에 팔로워가 꽤 늘었어요."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트래픽이 중요하죠."
다른 참석자들도 사무실 계약, 새로운 프로그램 설계, 서류 작성 등의 진척을 공유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크기가 아니라 방향성이었다. 각자가 다음 단계를 분명히 보고 있었다.
콘텐츠의 딜레마: 알고리즘을 역이용하기
콘텐츠 마케팅 이야기는 더 깊은 논의로 이어졌다.
한 분이 과거 경험을 공유했다. "예전에 콘텐츠 제작 일을 했었는데,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면 확실히 조회수는 터지더라고요. 근데 마음이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어요. 제목이나 썸네일은 다소 후킹하게 뽑더라도 본문이나 엔딩은 좋게 마무리하는 거죠."
다른 분이 의견을 보탰다. "SNS 알고리즘의 목표는 사람들을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더 노출시켜요. 그걸 너무 파괴적이지 않게, 현명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참석자도 공감했다. "저도 콘텐츠 마케팅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비교하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면 확실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근데 이걸 절제하면서 선용하는 게 쉽지 않아요. 멘탈적으로도 그렇고, 장기적으로 브랜드에 해로울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요."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전환하는 지혜. 그것이 창업가들에게 필요한 균형감이었다.

파운더 모드 vs 자율 주행 모드
대화가 깊어지면서 두 가지 대비되는 창업 철학이 드러났다.
한 분은 브라이언 체스키의 파운더 모드를 실천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창업자인 체스키는 대표가 모든 디테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품의 작은 부분까지, 고객 경험의 세세한 지점까지 창업자가 직접 챙겨야 회사의 영혼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간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서비스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었다.
반면 다른 분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었다. 자율 주행 시스템처럼 AI가 알아서 의사결정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사람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구조를 설계 중이었다.
이 대비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창업자는 모든 것에 관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을 만들어 자동화해야 하는가. 답은 아마도 사업의 성격과 단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서비스 비즈니스는 파운더의 손길이 필요하고, 데이터 비즈니스는 시스템의 완결성이 중요할 수 있다. 어쩌면 초기에는 파운더 모드로 시작해서 점차 자율 주행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인 경로일지도 모른다.
메타인지의 역설
지금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한 분이 실행 속도가 너무 느린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시작을 못한다고. 메타인지가 부족한 건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러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저는 메타인지에 대한 부담감을 스스로 안 가져도 되지 않나 싶어요. 발등에 불 떨어져야 잘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늘어진다고 해서 열심히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생존이 걸리면 어차피 누구든 하게 되니까요. 그 공백 동안 좋은 생각이 날 수도 있고요."
다른 분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메타인지가 타인의 관점으로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건 진짜 메타인지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동기화죠. 대표가 하는 역할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최대한 집중하는 거고, 그러려면 오히려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참석자가 정리했다. "오히려 나한테 더 집중하는 게 메타인지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그런 여유나 편안함이 오히려 자신의 강점일 수도 있어요."
이 대화는 메타인지라는 개념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자기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하고, 자신을 익사이팅하게 만드는 것을 찾는 것이 진정한 메타인지일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AI를 메타인지 도구로 쓰기
자연스럽게 대화는 AI 활용으로 흘러갔다.
"저는 AI와 대화한 내용을 기반으로 나에 대한 메타인지 분석을 요청해요." 한 분이 말했다. "장기간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 제가 잊어버린 패턴이나 상관관계를 찾아주더라고요."
다른 참가자는 AI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소개했다. "AI는 너무 좋게만 말해줘서, 따로 노션에 기록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메타인지를 하려고 해요."
또 다른 분이 팁을 공유했다. "AI 설정에 '아부하지 말고 냉혹하게 말해달라'고 해두면 훨씬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요."
"안드레 카파시라는 AI 연구자가 좋은 가이드를 줬는데요. 프롬프트를 짤 때 '나한테 가장 피드백을 잘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그 각각의 관점에서 피드백을 달라'고 하래요. 그러면 사업가, 투자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관점의 조언이 나와서 좋았어요."
"AI를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거네요. 각자에게 맞는 세팅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임계치를 넘는 경험
한 분이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저는 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울고 싶은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즐겁기만 하면 열심히 안 한 거예요."
누군가 공감했다. "근성장이랑 비슷하네요. 임계치를 넘겨야 하는 거."
"맞아요. 갑자기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성장하는 순간이에요."
이 대화는 성장의 본질을 건드렸다. 편안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은 성장이 아니다. 불편함, 고통, 때로는 절망까지 경험해야 비로소 임계치를 넘어설 수 있다.
새벽의 사람들
모임이 마무리될 무렵,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됐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는데, 자기 사업하는 친구들만 그 시간에 깨어 있더라고요. 고민이 있어서 새벽에 연락했는데 바로 답장이 와서 놀랐어요."
"사업 물려받은 친구들도요?"
"네. 사람들은 그 친구들이 편할 거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
"내 일이 되면 확실히 동기부여가 다른 것 같아요."
이 순간, 모두가 알아챘다. 우리는 동류라는 것을.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이동 중에도 일하고, 밤을 새우고, 그럼에도 계속 하는 사람들.

마무리: 창업은 놀이다
모임이 끝날 무렵,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창업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요."
모두가 웃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창업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의 놀이가 될 때, 그 고통은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아니, 때로는 즐길 만한 것이 되기도 한다.
첫 파운더스페이지 모임은 두 시간 반이 훌쩍 넘어 마무리됐다. 누군가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고, 누군가는 먼 거리를 운전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새벽에 제출할 서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밝았다. 비슷한 여정을 걷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각자의 고민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서로 다른 해법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류를 만났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회고의 힘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보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다음 파운더스페이지는 2주 후다.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 누군가는 더 큰 진척을 보고할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고민을 꺼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임계치를 넘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공감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의 한 수를 찾아갈 것이다.
파운더스페이지는 창업가, 1인 창업가, 크리에이터를 위한 회고 모임입니다. 격주로 진행되며, 진척 공유, 고민 나누기, 상호 피드백을 통해 서로의 성장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