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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넥스트에이지 싱크탱크, 롱라이프랩 최연희입니다.
최근 롱라이프랩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초고령사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장(場)이 될 수 있을까?’인데요, 오늘은 그 과정의 일환으로, 더 나은 초고령사회를 위해 고군분투 중인 기업들을 조명하는 ‘인터뷰 콘텐츠’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국내 최대 중년 여성 커뮤니티 ‘할두’ 입니다. 할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저 또한 진심으로 서비스를 응원하게 되었는데요, 모으기 어렵다는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SNS에서 시작해 어떻게 수많은 충성 유저를 확보하고 중년 여성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인터뷰에 담았습니다.
글, 취재 : 문유빈, 최연희
1.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무서워졌다
여러분은 ‘나이 듦’이 가장 두렵게 다가오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주름진 얼굴을 마주할 때? 혹은 달라진 체력을 느낄 때? ‘할두’를 만든 박슬기 대표에게 그 순간은 아주 평범한 어느날, 어머니와의 대화였습니다.
소파에 기대어 쉬던 박 대표에게 창문 너머로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슬기야, 서울 언제 가니?” 박 대표는 답했죠. “일요일에 가요, 엄마.”
사건은 5분 뒤에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창문을 열고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로 묻는 겁니다. “슬기야, 서울은 언제 가니?”
그 순간, 박 대표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아이도 낳고 커리어에서도 정말 중요한 시기였죠. 그런데 엄마가 치매라면? 내 인생은,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게 너무 무서웠고,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싫었죠.”

박 대표는 그길로 ‘치매’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는 ‘어디 한의원이 용하다’는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고, 유튜브에는 자극적인 공포 마케팅뿐이었습니다. 정작 ‘딸로서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뢰할 만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좀 화가 났어요. 엄마가 스스로 치매가 의심되어 검색했을때 이런 결과들이 나온다고 상상하니 이건 정말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박 대표는 4개월간 치매에 대해 집요하게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해외 논문과 전문 서적까지 치매에 대해 파고들면서 말이죠.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치매 환자 10명 중 7명이 여성이라는 데이터였죠.
“왜 여성일까 추적해 보니 ‘사회적 고립’이 핵심이었어요. 남성들은 은퇴 후에도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는데, 여성들은 가사 노동이 끝나는 순간 사회적 관계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거든요. 뇌를 자극할 ‘대화’와 ‘사건’이 사라지는 거죠.”

치매 예방을 위한 요소인 식습관 관리, 근력 운동, 심혈관 관리, 두뇌 운동과 같은 것들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 요소인 ‘사회적 연결’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박 대표는 깨달았습니다. 치매는 단순히 약으로 막는 질병이 아니라,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라는 것을요. 이 발견은 할두의 시작이 됩니다.
2. 가족을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 ‘이모들’을 모으다
박슬기 대표는 가장 먼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공부한 치매 예방 관련 정보를 당장 엄마와 이모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카톡으로 하면 이전 내용을 찾기도 어렵고 글자도 작아 잘 안 보더라고요. 그래서 큰 글자에 그림까지 더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죠”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회 곳곳의 ‘이모들’이 계정을 찾아오기 시작했거든요. 2~3개월 만에 예상치 못한 중년 여성 팔로워가 늘어나자 박대표는 생각합니다. 사회적 연결이 중요하다면, 이들에게 온라인으로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보자고요.
처음 연 모임은 ‘감사 일기’ 클럽이었습니다. 갱년기로 자존감이 흔들릴 때 일기 한 줄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모임은 대여섯명만 받을 생각으로 유료로 열었어요. 서로 응원하며 일기를 공유하면 재밌을 것 같았죠.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64명이 클럽을 결제하셨어요.
깜짝 놀라서 결제창을 닫아버렸죠.”

3. 0에서 1을 만드는 베테랑 마케터가 발견한 초고령사회의 틈
하루 만에 모인 64명의 결제 내역. 13년차 마케터였던 박 대표에게 64건의 결제 내역은 ‘신호’였습니다. 직방의 1호 마케터로 앱 1,200만 다운로드를 이끌고, 핀테크,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거친 13년 차 베테랑 마케터인 박 대표는 이 신호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가설 검증’에 뛰어들었죠.
먼저 ‘어떤 콘텐츠가 반응이 있는가’를 실험했습니다. 초기엔 설립 취지대로 ‘치매’ 정보를 올렸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즐거움을 원했으니까요. 곧바로 전략을 수정해 ‘치매’라는 단어 없이 ‘중년의 즐거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 했고, 고객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불 의사(Willingness to Pay)’를 확인합니다. ‘정리 수납’이나 ‘계단 오르기’ 같은 실용적인 클럽은 실패했습니다. 집안일의 연장이거나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에는 돈을 쓰지 않았던 겁니다. 반면 북클럽이나 글쓰기 클럽처럼 ‘자존감’을 높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획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중년 여성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주류가 되는 공간’이 없어요. 문화센터나 학원만으로 채울 수 없는 ‘연결’이 이들이 가장 원하는 상품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죠.”

4. 1000명의 찐팬, 직접 만나야 알게 되는 것들
할두는 중년 여성의 삶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퍼스널 컬러 수업, 글램핑 클럽, 재테크 북클럽 등 프로그램이 열리면 빠르게는 하루만에 매진이 되고는 해요. 전국 각지에서 20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이죠. 혼자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생소한 경험은 머뭇거려질 것 같거든요. 지금껏 75회 이상의 모임을 열어 성공적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박 대표는 뜻밖의 답을 내었습니다. ‘중년을 규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죠. “중년이면 이런 걸 좋아하겠지?” 짐작해서 만든 프로그램은 전부 실패했다고 고백합니다. 65세가 넘어간다고 갑자기 쿠팡에서 물건을 사다가 재래시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계단 오르기 운동, 정리 수납 클래스… 중년이면 좋아하겠지 싶어 열었던 건 다 반응이 차가웠어요. 오히려 제가 하고 싶어서 열었던 ‘패들보드 타기’, ‘글램핑’ 같은 게 대박이 났죠. 제가 하고 싶어야 그분들도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강릉 바다 위, 15명의 중년 여성들이 패들보드 위에 섰습니다. 76세 이모도 왔습니다. 딸들의 손을 잡고 거제도에서 6시간을 달려서요. 젊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패들보드 위에서 ‘인생샷’을 남기며 아이처럼 기뻐했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노인 맞춤 활동’이 아닌, ‘새롭고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할두의 오프라인 모임은 단순한 여행이나 취미를 넘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박 대표는 경주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저희 프로그램 중에 ‘앞으로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해 적는 시간이 있어요. 그 시간이 한 분의 마음에 큰 충격으로 남았더라고요. 평생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살면서 ‘나’의 목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요. 그날 그분은 ‘나도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고 꾹꾹 연필을 눌러쓰셨어요.”
그로부터 1년 뒤, 여수에서 열린 프로그램에 그 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양손 가득 간장게장을 ‘취업 선물’로 들고서요.
“경주에서 쓴 다짐 덕분에 용기를 내어 이력서를 썼고, 생애 처음으로 취업에 성공했다고 하셨어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해하셨죠. 할두가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삶을 새롭게 써내려갈 용기를 주는 곳이라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할두는 중년 여성들에게 ‘새로운 연결’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인생 친구가 되어 따로 여행을 다닙니다. 평생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느라 자신의 이야기는 눌러두었던 이들이, 이 곳에서는 ‘나’로 존재해요. 서로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도 하고, 깔깔대기도 하면서요.
“이모들의 삶을 들어보면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 아픔을 홀로 안고 있다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래들과 만나 풀어내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위로받고 치유를 경험하세요.”
박 대표는 할두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연결’을 복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자녀들이 떠나고 사회적 관계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기, 할두는 중년 여성들을 다시 사람과, 그리고 세상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5. 신뢰라는 가장 비싼 자본
시니어 비즈니스에서 가장 뚫기 어려운 벽은 무엇일까요? 박슬기 대표는 ‘불신’이라고 말합니다.
“중년 여성들은 온라인 결제나 새로운 만남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굉장히 높아요. 살아오면서 속은 경험도 있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경험도 많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세요. ‘여기가 진짜 믿을 만한 곳인가?’, ‘이상한 다단계는 아닌가?’ 하고 몇 년을 지켜보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이 벽을 넘어서는 순간, 비즈니스의 판도가 바뀝니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서비스로의 이동 장벽이 낮습니다. 반면, 중년 고객은 한번 마음을 열고 신뢰를 주면 그야말로 ‘무한한 사랑’을 쏟아내는 충성 고객이 됩니다. 박 대표가 겪은 ‘글램핑 환불 사건’은 이 신뢰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지난 겨울 글램핑 행사를 진행했는데, 현장 시설이 저희가 예약할 때와 달리 너무 엉망이었어요. 리모델링 중이라 어수선하고, 물도 쫄쫄 나오고 난방도 부실했죠. 제가 너무 죄송해서 참가비 전액 환불을 공지드렸는데, 괜찮다고 환불을 거절하시는 거예요.”
박대표에게 도착한 건 계좌번호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시설이 아니라 할두를 보고 온 것이다”라며 위로와 감사 메시지가 줄을 이었죠.

이 강력한 신뢰는 커머스로 확장될 때 독특한 소비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나’를 넘어선 ‘관계형 소비’입니다.
할두가 강릉의 가뭄으로 힘들어하는 농가를 돕기 위해 ‘감자빵’을 소개했을 때의 일입니다. 박 대표가 직접 발로 뛰어 검증한 빵을 소개하자, 고객들은 단순히 자신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지갑을 열었습니다.
“할두의 이모들은 물건 하나를 사도 3~4개씩 사세요. 동생, 친구, 딸까지 챙겨주기 위해서죠. 좋은 걸 발견하면 나누고 싶어하는 게 저희 고객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할두의 커머스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이모들의 ‘관계’를 돕는 도구이기도 해요.”
박 대표는 이 신뢰가 무겁기도 합니다.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혹시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하죠. 박 대표는 무리한 확장 대신 ‘깊이’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고객 생애 가치(LTV)가 매년 300% 성장했죠.
“재작년에는 확장을 목표로 이것저것 많이 벌려봤는데, 남는 게 없더라고요. 정체성만 흔들리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찐팬에 집중하자’를 전략으로 세웠어요. 지금 할두의 고객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여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식으로요. 식당도 단골 손님이 핵심이듯, 할두를 찾아주는 분들에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결과도 따라오고 있고요.”

6. 맑은 할머니가 되는 길,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을 향해
인터뷰 막바지, 박슬기 대표에게 개인적인 꿈을 물었습니다. 비즈니스 목표가 아닌 인간 박슬기로서의 지향점 말이죠. 그는 독특한 단어를 꺼냈습니다.
“저는 ‘맑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는 어릴 땐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먼지처럼 사라지는 게 꿈이었지만, 사업을 하며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좋은 영향을 주는 맑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투명해야 나를 믿고 따르는 이모들에게도 진심이 닿을 테니까요.”

이 ‘맑음’은 할두의 다음 스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 건강한 식습관에 관심을 갖게 된 박 대표는 할두의 고객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치레나, 갱년기 증상으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며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거든요.
“같은 고민을 하는 이모들의 짐을 덜고 싶어요. 치매에 대한 정보 만큼이나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도 광고가 뒤섞여 있더라구요. 치매에 대한 정보를 검증해 올렸듯이, 건강한 먹거리에서도 이모들이 고민없이 믿고 살 수 있는 기준이 되어드리려 해요. 차근차근 이모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건강하게 바꾸어가는 게 할두의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