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 #커리어 #트렌드
어떻게 살아야 할까?_오늘이 불안한 나에게

옳은 노력은 반드시 제자리를 찾습니다. 
제자리를 찾는 여정, 이직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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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 오른다. AI, 자산, 직업,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누군가는 앞서 있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어쩌면 이렇게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의 무게와 내일의 두려움은 애써 질끈 눈을 감게 한다.
마이너스 계좌를 매일 보지 않듯이.

하찮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명료성이 힘이다.
- 유발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이직 컨설팅 때 많은 수강생들이 내노라하는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업무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장 미련한 길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나역시 불안에 물을 주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불안을 거둬들이는 속도보다
누군가의 메시지, 성공, 스토리가 들어오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장맛비에 작은 우산 하나 만을 들고 서 있는 듯하다.

출처 : 나노 바나나

이거라도 붙잡아야 해서, 잡고 있지만, 초라하기 그지없다.
젖고 싶지 않지만, 젖지 않을 방도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회사 밖 11년 차. 내 일을 하고 있다.
임계점이 넘었던 내 일이 고꾸라진 것을 보며, 이 두려움은 더 커졌다.

작은 수입에도 자족하고 감사하는 삶이었는데,
적지 않은 수입에도 불안을 잠재우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 질문을 가지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선뜻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명확히 잡히지도 않았다. 너무나 추상적이고 거대했으니,
그래서 질문을 살짝 비틀었다.

내 자녀는 어떻게 살길 바라는가?

여전히 막막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이 질문은 3가지로 쪼개졌다.

  • 어떻게 살길 원치 않는가
  •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 누구와 어울리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길 원치 않는가?

인생이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무한가지의 선택지는 더욱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때 쓰는 것이 바로 소거법이다. 정답이 아닌 오답을 확실히 지우는 것.

현세대를 정의하는 말 중 하나가 ‘불안’과 ‘나다움’일 것이다.
편하고 안락하다 하지만, 오히려 가장 불편하고 불안한 세대가 돼버렸다.

나다움과 개성을 이야기하지만, 획일화된 똑같은 것을 쫓고,
혀는 자극에 마비되었으며, 섬세했던 감정의 표현과 단어들은 지극히 납작해지고 단순화되었다.

매일의 하늘과 햇볕은 보지 못한 채,
저 해외 어딘가에서 하늘과 바닷바람만을 진짜 쉼으로 여긴다.
그 하늘, 햇볕은 사실 같은 것인데.

그렇게 단어를 잃고, 맛을 잃고, 감정을 잃었고, 온기를 잃었다.

비교는 상대적이다. 결핍과 멸시를 수반한다.
이유모를 트랙에서 나와, 매일의 하늘과 햇볕을 볼 줄 아는 사람.
획일화를 위해 고유함을 잃지 않은 사람.

닿지 않을 보통을 쫓는 삶이 아닌,
본성의 가치들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2번의 직업을 바꾸며, 가지게 된 철학이 있다.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후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SF 영화와 석학들이 예견한 21세기가 어디 지금과 같던가.
지금의 지식으로 미래의 직업을 말하는 것은, 나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 외에 변치 않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기심. 그리고 지속.

남의 불편을 볼 줄 알고, 왜 그럴까를 끊임없이 묻는 것,
그 궁금증을 가볍게 실행하되, 집요하게 이어가는 것.

실패와 거절 앞에서 시장에 겸손하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것.
결실의 때와 만선의 때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기꺼이 새벽에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나 당연해서 지나치는 자연과,
너무나 뻔해서 진부한 진리 가운데 겸손히 배웠으면 한다.

탁월하면 좋겠지만, 지속만 있어도 괜찮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결국 맞닿아 있다.


누구와 어울리며 살 것인가?

숲에는 잡초가 없다.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 같이 성장하는 제 자리.
내가 정의하는 이직의 정의이자 지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다르다. 잡초인 사람은 없다. (출처 : 나노바나나)

나 혼자도 살기 힘든 시대에 희생은 사치가 되어버렸고,
내 만족, 남의 인정이 신이 돼버린 시대에 희생은 진부한 것이 되었다.
관계는 편의에 따라 손절한다.
그렇게 잘라내다보니, 곁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온기’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자,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다고 믿는 하나이다.
시선으로, 체온으로, 말로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사람.
문제와 고민 앞에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누군가의 이웃,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도파민이다.
그런데,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은 옥시토신이 아닐까?

누군가를 안을 때, 오래된 친구와 밥을 먹을 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왔을 때 느껴지는 것.
나에게서 그것이 느껴지면 좋겠다.
지금 시대에 탁월할 수밖에 없는 진짜 경쟁력.

그런데 이것은 가식으로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다.
겪지 않은 배고픔을 공감할 수 없다. 그 표정과 시선은 숨길 수 없다.

시도하고 다가가고, 상처입고, 회복돼야 한다.
내가 먼저 죽고, 내가 먼저 썩어야 한다.
생명은, 사랑은 그렇게 자란다.


그럼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정의하는 태도는 ‘상황과 환경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어떻게 변할지, 무엇이 유망할지, 돈이 많을지, 적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잃지 않는 고유함.
남의 불편 가운데 지속을 통한 탁월함.
물음표란 낚시대를 타인에게 던지는 온기와 희생을 갖고 있다면,

부모로서 크게 물려줄 것은 없더라도,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가족 문화의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말해준 신과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세계다 — 곧 부모가 서로에게, 다른 형제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라면서 세상의 본질에 관해 배우는 것은 가족이라는 소우주 안에서 겪는 실제 경험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행동’을 통해 우리를 위해 창조해 낸 독특한 세계인 것이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

익히 아는 것처럼, 자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배운다.

매일 도파민을 좇으면서, 온기 있게 살라고 할 수 있을까.
비교의 트랙 위를 달리면서, 너만의 기준으로 살라고 할 수 있을까.
실패를 두려워하면서, 호기심을 잃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희생을 사치라 여기면서, 섬기며 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중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해야 할 것은 없다.
지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내가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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