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메이킹과 독점의 시대
지난 20년간 인터넷은 플랫폼의 시대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것은 구조적인 결과였다.
모든 것은 인터넷의 은총인 “기회비용의 감소”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이해진 의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읽은 적이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자 입장에서 비교가 너무 쉽다. 따라서 퀄리티 유지가 핵심이다.
서비스가 망하는 건 이해하지만, 서비스에 오탈자가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에 뭐 실제로 오탈자가 서비스에 주는 영향이 얼만지를 떠나서, 시대를 꿰뚫는 마인드셋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옷을 산다? 유니클로를 갔다가 H&M을 가보는 것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낭비가 많다. 하지만 클릭클릭 탭탭으로 동대문부터 파리까지 가볼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좋고 재밌는 것(Value)은 훨씬 빨리 발견되고 빨리 퍼져서 소위 바이럴을 만든다. 이렇게 생성되는 트래픽을 효과적인 Lock-in 구조를 가지고 쪽 빨아먹은 서비스들은 디지털 시대에서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태생적으로 독점(Monopoly)을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시대였던 이유? 승리한 플랫폼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망해서 한강에 갔기 때문이다. 존윅이 죽인 킬러 숫자보다 플랫폼 때문에 망한 곳들이 더 많지 않을까?
조금 더 들여다보자. 플랫폼의 핵심미덕이 무엇인가 하면 다섯 글자로 줄일 수 있다. 바로 “매치메이킹”이다. 서로 만나면 가치가 발생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만나지 못하는 주체들을 만나도록 도와줘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플랫폼의 가치는 당연히 그 ‘매치’들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빈도와 규모를 따라간다. 그 중의 일정 비율 %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먹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따라서 보통 플랫폼들은 거래량을 중요한 지표로 삼곤 한다.
그리고 그 매치메이킹을 이뤄내는 추천 알고리즘이야말로 인터넷 시대의 성배라고 할 수 있다.
승자는 트래픽을 판다.
방금 플랫폼은 매치메이킹으로 발생한 가치의 일부를 취하는 BM을 가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적의 해자를 만들어내는 데에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그것보다 더 인기있는 BM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고BM이다.
플랫폼에서 광고BM이 가능한 이유는 플랫폼이 독점의 성격을 띄면서 그 도메인과 관련된 대부분의 트래픽을 유치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BM은 플랫폼의 핵심기능을 무료화하면서 참여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는데, 이로써 더욱 강력한 해자를 구축할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봐도 광고BM은 너무 멋지다. 친구비 내면서 SNS하기? 검색비 내면서 구글 네이버 쓰기? 상상할 수 없다. 가장 원하는 것을 얻지만,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사용비를 내주고 있고, 나는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제 고객과 회사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기 시작한다. 고객이 원하는 건 상호작용이지만 회사는 트래픽을 원하니까 말이다. Expand와 Explore의 과정을 지나, 승자가 정해지고 Extract의 단계가 되면서 이 불협화음은 수면 위로 드러난다.
타락과 불완전한 대안
회사는 기본적으로 이익과 성장을 추구한다. 시장도 다 정리되었겠다, 이제 플랫폼은 매치메이킹에서 일어나는 가치가 아니라 트래픽 자체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둬도 괜찮아졌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일단 광고주들을 설득하려면 당신을 오랜 시간 잡아두어야 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영상이나 스팸을 살짝 추천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뜻이다. 일단 수익성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자들과 경쟁하는 PB상품을 살짝 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단 이 상품이 우리에게 수익률이 더 좋기 때문에 추천 순위를 살짝 올려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 아니다. 추천 알고리즘 너머에 있는 서비스나 재화 그 자체(Source)를 원하는 것이다. 추천 알고리즘 너머에는 당신이 알거나 알지 못하는 수많은 Source들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한된 시간, 공간, 지각능력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플랫폼이라는 Filter를 통해서 선택지를 추천받고 그 안에서 고르게 된다. 하지만 그 Filter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면?
이 불일치로 나타난 것이 탈플랫폼, D2C(Direct-2-Consumer) 트렌드이다. 소위 플랫폼의 ‘횡포’에 휘둘리기 싫고, 자신들의 독특한 고객 경험을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공하고 싶은 브랜드들은 플랫폼을 떠나 자사몰과 자사앱 구축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플랫폼과 같은 거대 물결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일부 선택받은 브랜드들만이 가능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브랜드들은 D2C를 통해 고객과 1:1 관계를 맺으며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는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었다. 나는 그냥 배고플 때 한 끼 때우면 족한데, 그냥 필요할 때 옷 한 벌 사면 족한데 수십 개의 자사몰 앱을 깔고 신제품 소식을 구독하고 싶지 않아한다.
이런 UX문제 때문에 D2C 접근의 대부분은 기존 채널 대비 처참할 정도의 점유율을 가지고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혹은 일부 스마트한 접근법으로는, 플랫폼에서는 엔트리 제품을 팔고, 고급/커스텀 제품은 자사몰에서 제공하는 방식들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인공지능이라는 녀석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 시나리오를 조금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AI: It’s the UX, stupid!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최근 AI의 발전이 정말 미쳐돌아간다. 그래도 AI는 손가락은 못그리더라! 하던 게 몇 달 전인데, 이제는 동영상과 3D를 만들고 있다. 거대 언어 모델은 요약, 번역은 물론이고 전문직 시험마저 사뿐하게 통과하며 인간들의 자괴감을 +1 시켜줬다.
앞서 이야기한 D2C 맥락에서 인공지능이 의미있다고 지점은 두 가지인데
- ‘진짜’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점
- UX 문제가 풀린다는 점
이다.
먼저 개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필터링 결과”가 개인화된다는 말이 아니라, 개인이 추천 알고리즘을 소유하거나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번 AI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시피 다양한 모델들이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가능해졌다. 이런 AI의 오픈소스화 경향은 앞으로도 꾸준할 것으로 보여 희망적이다.
플랫폼은 앞서 보듯 사용자와 이해관계 충돌을 일으킬 수 있지만, 내가 훈련시킨 내 알고리즘이 나와 충돌을 일으킬 일은 없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훨씬 정교한 소비자 경험을 설계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원하는 맥락에 따라 경험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 이는 Bluesky가 원하는 방향 - 프리메이드 알고리즘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 모델과도 비슷한데, 개인적으로 이런 store 모델은 과도기적 형태라고 본다.
한편 ChatGPT를 깊이 있게 써보았다면 UX 문제가 풀린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정확한 Source들만 확보된다면 정보들을 원하는 포맷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플랫폼의 검색 필터를 하나하나 만져가며 상품을 검색해야 했다면, “높이가 1.5m정도 되는 5칸짜리 화이트 톤 서랍장을 찾아줘” 같은 식으로 웹의 정보들을 입맛대로 처리할 수 있다.
뭐 지금이야 AI가 웹을 검색하고 이를 답변에 활용하는 과정이 비싸고 거추장스럽지, AI의 활용이 대세가 되다 보면 대부분의 Source들은 인간을 위한 형태가 아니라 AI에 의해 수집과 용이한 형태가 되어 인덱싱될 것이다.
새로운 강자들…이 아니네?
수많은 옵션들을 수집하고 처리해서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매칭을 만들어 내는 것, 원래는 플랫폼의 일이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모두가 시리/알렉사가 아닌 개인 AI 모델을 가지고 다니게 될 것이고, 그 AI를 통해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D2C 비즈니스 모델이 오히려 잘 될 것이라고 본다. 중간에 장사치 중개상이 껴서 머리 아플 일 없이, 알아서 할 일 잘 하고 있으면 누군가의 AI 사절단이 와서 “마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어서 가시죠” 하고 업어가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새로운 강자들의 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보는데,
- 목적형 AI 모델을 만들고 강화하는 회사들 → 데이터를 확보한 현재 플랫폼이 나아갈 길
- 콘텐츠/재화 생산자들(Source) → 자신의 몫을 받게 될 것이고
- OS/하드웨어 제조사들 → !!!
특히 OS/하드웨어 인프라와 생태계를 구축한 회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Gatekeeper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미 깔린 물리적인 인프라는 진짜 우회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면에서 테슬라도 해당되는 것 같고.
풀매수 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