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마인드셋 #커리어
책으로 일감을 만드는 1인 북스튜디오 이야기

디지털이 강세인 시대, 

종이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 북디자이너

 

디지털 콘텐츠가 시장을 주도하고 책 읽는 사람들이 매년 줄어드는 시대, 출판계는 늘 불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디자인하며 자리를 지키는 북 디자이너들.
가을을 맞이해 이번 디자인 머니 컬렉션은 북디자이너 2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인사이트를 들여다본다.

 

1편 : 북디자이너로 살아남기 :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고광표> 디자이너
2편 : 책으로 일감을 만드는 1인 북 스튜디오 이야기 : 스튜디오 보글 <김 누> 디자이너

1편 읽으러가기
https://eopla.net/magazines/36201

 


2편 : 책으로 일감을 만드는 1인 북스튜디오 이야기
스튜디오 보글 <김 누> 디자이너

 

북디자이너로서 10년간 출판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현재는 1인 스튜디오 ‘보글’을 운영 중이다. 그녀는 자신을 디자이너 보다 1인 사업가로 표현한다. 책을 만드는 일 보다 구조를 배우고 운영하는 일이 더 흥미를 느낀다는 그녀는, 실력보다 생존력으로 꿋꿋이 북디자이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Q. 안녕하세요 김누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북디자이너 스튜디오 보글의 김누입니다.
10년 넘게 출판사에서 경제경영, 자기 계발, 자녀교육, 인문교양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지금은 독립한 지 1년이 조금 넘었고,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북디자인 전반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보글은 김 누 디자이너의 강아지 이름이다. 프로필로 본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스토리가 참 좋다 (아래 설명글 참조)

 

* 김 누 디자이너의 코멘트 : 스튜디오 보글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가족이었다가 올해 9월에 세상을 떠난 보글이의 이름에서 따서 지었다. 솔직히 별 고민 없이 지은 거 맞고 강아지랑 북디자인이 연관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나랑 어울리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

 

 

 


Q. 어떤 계기로 북디자인을 시작하셨나요?

 

북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사실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커리어는 언제나 계획보다 ‘상황과 선택의 연속’ 속에서 만들어져 온 것 같아요.

학창 시절,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자코뱅(Club des Jacobins)’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요, 인문서, 독립출판물, 그래픽노블 등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화예술 서적을 모아둔 아카이브였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다양성과 힘을 느꼈습니다.

“내게 남은 게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녔지만 이제와 보니 그 시간이 큰 자산이었던 것 같아요. 책을 향한 흥미와 좋은 기억이 결국 지금의 일로 이어졌으니까요.

 

학교의 구조도 다소 실험적이었어요.
저는 드로잉을 전공하고, 정보지식디자인(시각디자인)을 부전공했는데 이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현대미술과 그래픽디자인의 경계를 탐구할 수 있었죠. 출판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그 시기에 서서히 싹튼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후 졸업을 앞두고 매우 현실적인 고민을 했죠.

그동안의 경험은 분명 즐겁고 소중했지만,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이 길을 그대로 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정리하고 학자금 대출도 갚을 겸, 반도체 공장 생산직에 입사해 1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지인을 통해 출판대행회사에서 신입 북디자이너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면접을 보러 간 것이 제 첫 북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거네요.

당시 제가 가진 기술적 배경은 고작 컴퓨터 학원에서 3주간 배운 인디자인이 전부였는데요, 완전히 백지상태였던 저는 입사 후 거래 출판사에 수정지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본문 수정, 인디자인 실무, 홍보물 제작, 분야별 디자인 방향 등 현장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준비되지 않은 신입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했던 선배들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Q. 북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땐 '후가공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었어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이라 표지에 반짝이는 박이나 홀로그램 같은 요소들이 책의 인상을 결정한다고 믿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후가공은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는 ‘관상(觀相)’이라는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관상은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뜻하는 것이 아닌 책의 성격과 시장의 흐름, 그리고 시점을 함께 읽는 ‘감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책이 디자인적으로 완벽할 필요는 없거든요.

어떤 책은 시기가 가장 중요하고, 또 어떤 책은 축적된 디자인 스타일 안에서 살짝만 변주해도 충분하죠. 재테크 서적을 예로 들면 사람들은 화려한 표지보다는 익숙하면서도 신뢰를 주는 디자인을 선택합니다. 이 미묘한 균형이 바로 책의 관상이에요.

책은 디자인의 완성도 보다 시장의 맥락을 읽는 감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종종 느껴요. 아직 제 관상론은 완성되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경험을 쌓으며, 책의 얼굴을 어떻게 만들어야 독자에게 진심이 닿는지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습니다.

 

스튜디오 보글 <김 누> 디자이너의 북 디자인

 

 

 


Q. 그렇다면 디자이너님이 가장 인상 깊게 본 북디자인은 무엇인가요?

 

자음과 모음의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와 열린 책들의 <김시덕의 한국도시 아카이브 세트>입니다.

먼저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는 제가 아직 업계에 들어오기 전,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처음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작업이에요. 10대 때 도시와 재개발에 관심이 많아서 친구들과 도시 탐사를 다니곤 했는데, 몇 년 뒤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출간되었을 때 그 표지를 보고 놀랐어요.

모노톤에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꽉 찬 밀도가 느껴졌거든요. 이 시리즈의 다음 책들도 하나같이 멋있어서 새로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습니다.

책의 내용보다 순전히 표지디자인에 매료되어 책을 산다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자음과 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 콘크리트 유토피아> / 디자인 : 워크룸



김시덕의 한국도시 아카이브 시리즈는 북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후 발견한 책인데요, 원래부터 관심을 가졌던 도시와 재개발이라는 주제와도 겹쳤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이 정말 좋았어요. 한 표지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함께 느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평면적인 표지인데도 입체감이 느껴져서 신기했습니다.

두 책은 보는 순간 순수하게 ‘좋다’라는 감정을 느꼈던 책이고, 현재 모두 소장해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열린 책들 <김시덕의 한국도시 아카이브> 세트 (디자인 : 박봉식)

 

 

 


Q. 이제 독립 1년 차예요. 많은 프로젝트를 맡고 계신데, 일감은 주로 어디서 찾으시나요?

 

 

(1) 10년의 회사생활

먼저 사업이나 프리랜서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사업의 기반은 결국 ‘의미 있는 회사생활’에서 나온다는 점이에요.

저는 10년 넘게 출판사에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는데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와 보니 지금의 기반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옮겨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일의 흐름을 배우고, 작은 신뢰를 쌓은 것이요.

그래서인지 독립할 때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인연이 있던 출판사에 인사 겸 포트폴리오를 전달했고, 출판인 전문 커뮤니티에 홍보를 올린 게 전부였죠. 그 이후로는 기존 거래처를 통해 재의뢰가 이어지고, 그 일을 본 다른 편집자나 출판사에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이 이어진 셈이죠.

시작하자마자 일거리가 많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운이 따른 부분도 있지만, 함께 일하며 쌓인 신뢰와 경험이 지금까지의 기반이 되어준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회사를 최소 7년 이상 다녀야 의미 있는 사회적 자원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꾸준히 한 업계에서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업을 시작하고 싶거나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분이라면, 일단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2) 꾸준한 기록

회사생활 외에도 일이 꾸준히 들어오는 이유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디자인 실력이 특별히 뛰어나서 일이 많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회사 다닐 때부터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포트폴리오 계정을 독립 이후 더 열심히 업데이트했어요.

처음엔 매우 단순한 기록들이었는데요,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공지, 새로 구매한 서버, 작업 중의 책상 사진들 등 지금 보면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그 당시엔 그 모든 게 새로웠기에 재미있게 올렸고 그 일상의 단면들이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1인 스튜디오의 성장기'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현재는 디자인의 퀄리티와 일관성으로 소셜미디어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업 초반에는 ‘나’라는 사람과 스튜디오의 존재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디자이너로서의 일관된 역량과 작업의 깊이를 보여주는 콘텐츠를 늘려가고 싶습니다.

이 여정은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한 사람이 업계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꾸준히 유지해가고 있는지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튜디오 보글이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Q. 많은 북디자이너들이 문학·비문학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어려워한다고 합니다.

김누님은 어떻게 다양한 분야를 유연하게 디자인하시는지, 또 서로 다른 클라이언트의 니즈는 어떻게 빠르게 파악하시나요?

 

사실 특별한 노하우라기보다는 당시 환경의 영향력이 컸어요. 제가 첫 직장으로 다녔던 출판사 팀은 다른 팀과 달리 주력 장르가 없는 곳이었거든요. 덕분에 신입·대리급 시절부터 여러 분야를 짧게라도 계속 ‘찍먹’해볼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지금의 작업 스펙트럼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디자이너는 한 장르를 깊게 파고드는 게 맞고, 또 어떤 디자이너는 다양한 분야를 넓게 경험하는 게 맞는데, 저는 다행히도 후자가 더 잘 맞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는 핵심은 결국 의뢰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디자이너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역량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최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고, 필요한 경우엔 제안도 적극적으로 해요. 이 과정에서는 자의식은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하고요.

또 하나 중요하게 보는 건 맥락에 맞는 참고자료를 찾는 일이에요. 맥락에서 벗어난 레퍼런스를 가져오면 오히려 의사소통이 꼬이거나 방향성이 흐트러지더라고요. 그런 자료는 참고자료로서 제 역할을 못하니까요. 그래서 항상 “이 프로젝트의 핵심 맥락은 무엇인가?”를 먼저 잡고, 그와 정확히 연결되는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디자이너 김 누

 

 

 


Q. 북 디자이너로서 일을 지속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의 과정만 놓고 보면, 저 같은 외주 디자이너는 일을 의뢰받고 디자인을 하고, 수정을 거쳐 마감을 하고, 비용을 받으면 모든 과정이 끝이 납니다. 이렇게만 보면 한 권의 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이 조금 덜해요.

그래서 저는 한 권의 결과보다, 그 일을 둘러싼 전체 구조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눈앞의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을 오래 지속하려면 출판이라는 생태계 전체를 함께 바라보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북디자이너이지만, 제가 속한 업계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저 또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한 명의 독자로서 새 책을 직접 사 보기도 하고, 어떤 책이 새로 나왔는지 살펴보며 흐름을 읽으려 합니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 업계의 변화나 이슈를 꾸준히 팔로업하고요.

예전에는 규모가 큰 출판사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소형 출판사나 1인 출판사에서도 인상적인 책들이 많이 나오죠. 그런 변화들을 느끼며, 그에 맞는 디자인 서비스를 고민하고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북 디자인이 어떤 형태로 진화할 것 같나요?

 

북디자인은 지금까지 꾸준히 진화해 왔다고 생각해요. 편집과 디자인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제작 방식과 품질,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까지 함께 달라지고 있죠.

10년 전, 대학에서 전자출판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종이책의 시대는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종이책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고, 전자책은 전자책대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종이책은 종이책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아직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라지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는 거죠.

 

종이책 vs 전자책,
디지털 그림 vs 손그림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은 이제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실력 있는 북디자이너들이 많아졌고, 작업의 방향이나 표현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변화들이 시장을 조금 더 치열하게 만들지도 모르죠.

 

 

 


Q. 스튜디오 보글이 만들어가고 싶은 방향은 무엇일까요?

 

출판업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스튜디오 보글도 그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일하고 싶어요. 요즘은 1인출판사뿐 아니라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도 자체적으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관상 좋은 디자인’, 즉 책이 가진 인상과 균형이 잘 잡힌 결과물을 제공하고 싶고요.

개인적으로는 특정 장르나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어떤 책이든 기복 없이 안정적인 퀄리티로 디자인하는 제너럴리스트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예요.

 

 

 


시장의 흐름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디자이너

 

김 누 디자이너는 책의 ‘관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책 디자인을 잘한다는 건 단순히 미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과 사람의 마음을 함께 읽는 일이다.

결국 디자인은 시대를 읽는 눈에서 시작된다. 김 누 디자이너는 그 감각으로 오늘도 한 권의 책,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속에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미적 감각이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읽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김 누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보글
https://www.instagram.com/fadein0/

 

이메일 주소  
fadein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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