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AI 뉴스와 달리,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리더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년간 다양한 업계의 CEO와 임원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AI가 중요하다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안이 너무 걱정되는데 업무에 도입해도 될까요?”
“AI 투자가 진정한 수익으로 이어질까요?”
“AI 도입에 저항하는 직원은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불확실성과 우려 속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례다. 실용적이고 검증된 AI 도입 사례를 담은 책 <AX 전략 마스터클래스>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창작자의 위기, 어도비의 기회
2022년 가을, 생성형 AI의 등장은 디지털 창작 산업에 충격을 가져왔다. 미드저니, 달리2 DALL-E 2,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AI 도구들이 텍스트 몇 줄로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창작자들의 입지가 하루아침에 흔들렸다. 챗GPT 출시 8개월 뒤에 주요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이미지 제작 관련 일자리 17%, 글쓰기 및 코딩 관련 일자리 21%가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도비(Adobe)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수십 년간 창작자들과 함께 성장해온 회사로서 어도비가 내린 결정은 명확했다. AI를 창작자의 적이 아닌 동반자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AI는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증강할 것입니다. AI는 창작자들의 부조종사가 될 것입니다.” _ 샨타누 나라옌(어도비 CEO)
조용하고 꾸준했던 어도비의 진화
어도비의 AI 이야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도비는 이미 창작 도구의 미래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소박했다. 포토샵에서 자동으로 적목 현상을 감지하고 수정하는 기능이었다. 지금 보면 단순한 기능이지만, 어도비가 기계 학습을 통해 복잡한 창작 작업을 단순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첫걸음이었다.
이후 어도비는 조용하고 꾸준하게 AI 역량을 축적했다. 2016년 11월 공개된 통합 AI 프레임워크 ‘어도비 센세이’는 어도비가 AI를 바라보는 관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어로 ‘선생님’이라는 이름처럼, AI는 사용자를 가르치고 돕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2023년 3월, 어도비는 20년간의 AI 여정을 집대성한 결과물, ‘어도비 파이어플라이’를 내놓았다.
규제를 기회로 만든 차별화 전략
2023년 당시, 뜨거웠던 생성형 AI 시장에서는 이미 스테이블 디퓨전과 미드저니가 놀라운 품질의 이미지로 주목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학습 데이터의 출처였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수집한 데이터셋을 사용했고,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수집된 창작물도 포함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아동 성착취물과 같은 불법적이고 유해한 콘텐츠도 데이터셋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AI 모델의 윤리적, 법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문제였다.
어도비는 이런 혼란 속에서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처음부터 ‘상업적으로 안전한’ AI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파이어플라이는 라이선스가 확보된 어도비 스톡 콘텐츠, 저작권이 만료되거나 명시적으로 허용된 콘텐츠만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했다. AI 학습 목적 사용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원하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을 학습에서 제외할 수 있는 옵션도 제공했다.
어도비의 전략은 단순히 법적 리스크 회피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 투명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인 ‘콘텐츠 자격증명’까지 나아갔다. 식품 영양성분표처럼 디지털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 어떤 도구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디지털 라벨이다. 이런 투명성 전략은 다가오는 규제 환경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EU의 AI 법(AI Act)은 AI 콘텐츠에 대해 명확한 라벨을 붙일 것을 요구했는데, 어도비의 콘텐츠 자격증명은 이미 이런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있었다. 규제를 부담이 아닌 기회로 전환한 것이다.
신뢰로 구축한 창작의 미래
어도비에게 콘텐츠 자격증명은 어도비가 구축한 ‘신뢰’의 방어벽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4,000개 이상의 파트너가 참여하는 이 생태계는 이제 어도비만의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자산이 되었고, 이는 쉽게 복제하거나 따라잡을 수 없는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되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과도한 콘텐츠 필터링, 복잡한 크레딧 시스템, 경쟁사 대비 부족한 이미지 품질 등은 개선해야 할 영역이다. 기업 고객의 요구와 개인 창작자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이 자체가 창작의 미래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도비의 사례는 하나의 영감이자 출발점이다. 이들이 보여준 것은 기술 기업이 창작자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혁신이 단기적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증명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창의성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믿음이다. 미래의 창작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 협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 위 글은 <AX 전략 마스터클래스>(변형균 지음)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