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1978~)
2024년, 중국의 알리와 테무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떠들썩했다.
모두가 출혈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쿠팡의 선택은 와우 회원가를 올리는 거였다.
월회비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되었다.
가격을 낮춰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올리니, 사람들은 고객이 떠나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알리/테무는 금방 들어오지 못했고, 와우 멤버십 회원 수는 2023년 1400만에서 2024년 1500만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쿠팡은 한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소셜커머스 초기, 레드오션에서 수많은 경쟁사들과 싸우던 쿠팡은
어떻게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차례
1, 쿠팡 이전
2. 쿠팡 창업스토리 + 쿠팡의 투자유치 이력
3. 쿠팡의 핵심 가치
(쿠팡 이전)
김범석 의장은 7살 때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시민권도 얻어서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다.
그는 미국 명문 사립고인 디어필드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경험도 있다.
대학생이던 1999년(21살), 그는 대학생을 위한 잡지 커런트(Current)를 창간했다.
구독은 무료로 하고 광고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었다.
이 잡지는 빠르게 성장해 3년 만에 10만 부가 발행되었고, 2001년(23살) 뉴스위크에 매각되었다.
졸업 후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 본사에서 2년간 일했다.
그 뒤 2004년(26살)에는 명문대 학생들을 겨냥한 잡지 회사 빈티지미디어 컴퍼니를 세웠고,
이 회사는 2009년(31살) 애틀란틱 미디어에 매각되었다.
이후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밟던 그는 미국에서 소셜커머스가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치열한 소셜커머스 경쟁에서 쿠팡이 살아남은 비결은? (쿠팡 창업스토리)
2010년 6월, 32살에 김범석 의장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달 뒤 미국에서 알게 된 공동창업자 2명과 함께 쿠팡을 창업했다.
직원은 7명, 초기 자본은 40억 원이었다.
쿠팡은 당시 미국의 그루폰을 모델로 삼았는데, 그루폰은 음식점·스파·여행 등 다양한 할인 쿠폰을 판매하는 서비스였다.
한국에서도 소셜커머스가 막 뜨고 있던 시기였고, 쿠팡은 시작 5개월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모았다.
하지만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쿠팡은 차별화를 위해 2011년 업계 최초로 환불 정책을 도입했다. 또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직접 조사해서 반영했고, 콜센터 규모도 키웠다.
주변에서는 “이 작은 회사가 매출을 키우는 대신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고 했지만, 쿠팡은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초기 창업자들은 퇴근 시간을 잊을 만큼 몰두했고, 사무실 냉장고에는 에너지 음료가 가득했다고 한다.
물류센터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침대를 들고 가며 원인을 찾았고,
배송 아르바이트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본인이 직접 지원자 앞에서 앱 사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 결과 쿠팡은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뤘다.
2년 반 만에 회원 1,800만 명, 직원 850명, 거래액 8,000억 원을 기록했다.
트래픽과 거래 규모 기준으로 PC에서는 3위, 모바일에서는 1위였다.
2013년에는 한 고객이 해외 출장을 앞두고 주문한 신발이 출국 전날까지 배송되지 않았다.
고객은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다음날 직원이 직접 트럭을 몰아 고객에게 배송을 해 주었다.
이때쯤 쿠팡은, 배송 혁신을 기획한다.
2014년(36살) 3월, 쿠팡은 로켓배송을 도입했고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존 오픈마켓은 판매자가 손실을 떠안았지만, 로켓배송은 팔리지 않으면 회사가 손해를 보는 방식이었다.
그때 소프트뱅크에서 1조 원을 투자했다(2015년 6월).
쿠팡은 그 돈으로 로켓배송을 확대했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기존 대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
쿠팡의 영업손실은 2015년 5,400억 원, 2017년 6,000억 원, 2018년에는 1조 원까지 늘어났다.
2018년 (40살) 11월, 소프트뱅크에서 2조 원을 추가로 투자받아 새벽배송과 쿠팡이츠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3월, 쿠팡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IPO로 얻은 돈은, 해외 확장에 쓰는 대신 모조리 한국 내 인프라 구축에 쏟았다.
사람들은 한국이 작은 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에, 인구가 5천만 이상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7곳뿐이다(2024년 기준). 거기에 한국은 인터넷보급률도 1위인, 매우 빠르고 큰 시장이다.
이후 2022년 3분기에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연간 기준으로도 흑자로 전환했다.
2024년에는 와우 멤버십 회비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렸지만, 회원들은 크게 이탈하지 않았다.
와우 회원 수는 2022년 1,100만 명, 2023년 1,400만 명, 2024년에는 1,500만 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투자유치 이력
2011 42억, 파운더콜렉티브
2011 200억, 알토스벤처스
2014 1천억, 세쿼이아 캐피탈
2014 3천억, 웰링턴
2015 1조, 소프트뱅크
2018 4천억, 블랙록
2018 2조, 소프트뱅크
2021 기업공개(IPO)
* 세쿼이아 캐피털은 유튜브, 애플, 구글 등에 투자했었다. 알토스벤처스는 로블록스, 토스, 크래프톤 등에 투자했었다. 쿠팡은 초기부터 여러 유명 투자사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쿠팡의 핵심 가치 2가지:
- 고객이 우선이다
- 실수로부터 배운다
출처: 2013년 김범석 의장의 연설. (beLAUNCH 행사)
김 의장은 다른 사람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을 중요시하며, 해서는 안될 4가지 실수를 꼽았다.
1.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한다
=> 핵심 경쟁력을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항공산업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중 하나다.
그런데 이 산업에서 살아남은 신생 회사들이 있다.
최저가 항공을 만든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과, 비즈니스고객에 집중한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에어라인이다.
무엇에 집중하든, 중요한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쿠팡의 경우, 그 한 가지는 고객이었다.
2. 고객이 아닌 경쟁에 집중한다.
=> 고객이 최우선이다.
두 개의 식당이 있다.
식당 1은 일단 많이 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재료의 신선도나 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면 식당 2는 고객이 웃으며 나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곳은 결국 어디일까?
사업을 하다 보면 외형이나 투자자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고객이라는 본질을 잊기 쉽다.
쿠팡은 매출이 3억원일때 콜센터 규모를 100명으로 늘렸다.
당시에는 ‘작은 회사가 성장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쿠팡은 항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을 우선시했다.
3. 선입견에 빠진다.
=> ‘원래 그래.’ 하는 대신, 이유를 찾아서 개선한다.
‘이건 한국에서는 안 통한다’ 는 말에 갇히면, 성장은 거기서 그친다.
미국 소방관의 대부분은 뜨거운 열기 때문에 사망했다.
소방대에서는 스웨덴의 물 스프레이 방식을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문화 차이라고 단정짓고 포기하는 대신 문제점을 찾았다.
알고보니 미국 소방관에게 ‘물 호스’는 높은 계급을 상징했고, 소방관들은 물호스 대신 스프레이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문화가 아니라 구조였다.
4. 구성 인력에 맞춰 사업을 운영한다.
=> 사업이 먼저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잘 맞던 멤버도 회사가 커지면서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많은 경영자들이 프로세스를 바꾸거나, 자원을 확보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대개는 “조금 더 있으면 이 사람이 성장하겠지”라며 결정을 미루지만,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회사의 역량과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그대로 두는 것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선택이다.
여기까지가 연설이었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업환경도 변하고, 쿠팡 자체도 많이 변하면서, 지금은 쿠팡이 또 다른 핵심가치를 가지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도움이 되는 조인들이다.
출처: 중앙일보 칼럼, 혁신의숲, 쿠팡 홈페이지, 유튜브, 김범석 2013년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