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오늘은 Y Combinator 창업자 Paul Graham의 <Having Kids >라는 에세이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세계 최고의 엑셀러레이터 기업을 만든 사람이 아이에 대해 가졌던 생각, 육아를 하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글입니다. 그가 자신의 글 중 가장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에세이이기도 하구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 그리고 뉴스레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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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ing Kids>
아이를 갖기 전, 저는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살았습니다. 당시 제 마음속의 아이란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를 영영 갖지 못한다면 슬플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 원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였습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가 됩니다. 그리고 제가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부모에 대한 인상은 '재미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루하고, 온갖 책임감에 짓눌려 있으며, 삶의 즐거움을 잊은 사람들로 비쳤습니다. 어린아이의 시각이야 그렇다 쳐도, 솔직히 성인이 되어서도 제 생각을 바꿀 만한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를 마주칠 때마다, 아이들은 통제 불능의 골칫덩이처럼 보였고, 부모들은 설령 상황을 수습하더라도 지치고 안쓰러워 보이는 초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아기를 낳으면, 저는 당연한 듯 축하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딴판이었습니다. 속으로는 "내 일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지금은 남들이 아기를 낳으면 진심으로, 열렬히 축하합니다. 특히 첫아이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이 세상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제가 직접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이 놀랍고 경이로운 경험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 변화의 일부는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거의 즉각적으로 일어난 심각한 화학적 변화, 즉 호르몬 작용 덕분임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갑자기 저는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강한 보호 본능을 느꼈습니다. 아내와 갓난아들을 태우고 병원에서 집으로 운전하던 길, 보행자들로 가득 찬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정말 조심해야 해.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 아닌가!’
그러니 제가 육아가 가치있다고 말할 때, 저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마치 특정 종교에 심취한 사람처럼, 교단에 합류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설파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제가 육아에 대해 철저히 오해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아이들을 관찰할 때 '선택적 관찰'이라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알아차리게 되는 때는 주로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소란을 피울 때만 제 시야에 들어왔죠. 그리고 그때 저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평소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가지 않았으니, 제가 그들을 만난 곳은 비행기처럼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섞이는 '혼잡 구역'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일반적인 육아의 모습이 아닙니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것을 즐기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겁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은, 소리가 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던, 부모들이 아이들과 보내는 수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구태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 마법 같은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고, 다른 부모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아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지금 이곳'보다 더 좋을 수 없고, 이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매우 자주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거창한 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함께 길을 걷거나, 잠자리에 들 때, 혹은 공원 그네를 밀어주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 어떤 대가와도 이 순간들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평온'이라는 단어를 연결 짓기는 쉽지 않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바로 그 내면의 평화를 느낍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 그 이상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를 갖기 전에도 이런 종류의 평온함은 있었지만, 아주 드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아에 대한 제 또 다른 편향의 출처는 저의 유년기였습니다. 저는 문제아였고, 늘 크고 작은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부모 역할은 경찰처럼 통제하고 단속하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즐거운 시간도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제가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가 저와 제 여동생을 키운 것이 정말 즐거웠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어머니는 정말 성자(聖者)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안겨 드린 온갖 고통을 견뎌내신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즐기셨다고? 이제야 어머니가 진실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를 키운 것이 좋았던 한 가지 이유로 저희와 대화하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이것을 느꼈죠. 아이들을 그저 사랑하는 것을 넘어, 그들은 나의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정말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반복을 지나치게 좋아하지만(한 번 재미있는 일은 오십 번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들과 함께 노는 것은 종종 진정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물론 고역인 순간도 있습니다. 또는 그보다 더 심한 공포의 순간도 있죠. 육아는 경험 없이는 그 강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매우 격렬한 경험의 한 유형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전 제가 은연중에 믿었던 것처럼, 단순히 당신의 DNA가 생존을 위해 의무적으로 따르는 여정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제 걱정 중 일부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확실히 생산성을 저해합니다. 육아를 계기로 삶을 정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체계가 잡혀 있던 사람이라면 일을 할 수 있는 순수한 시간이 줄어듭니다. 특히, 모든 것을 정해진 일정에 맞춰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스케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본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삶을 어른들의 생활에 통합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이가 생기면 그들의 일정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블록은 확보됩니다. 하지만 아이를 갖기 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일에 온전히 전념할 수는 없죠. 영감이 넘치든 메마르든 매일 같은 시간에 일해야 하며, 영감이 절정에 달하더라도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데 적응했습니다. 아이를 갖기 전만큼 많은 성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충분한 양의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야망은 항상 저의 정체성 중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사람을 덜 야망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문장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어 몸부림치게 됩니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면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 사실은, 일단 아이가 생기면 당신은 당신 자신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관심과 집중력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은 한 번에 하나뿐입니다. 아이가 생기면, 종종 그 자리는 아이들이 차지하게 되며, 이는 당신의 작업 프로젝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빈도가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야망 저하'라는 바람에 맞서 항해하기 위한 몇 가지 '꾀'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에세이를 쓸 때, 저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를 더 정확하고 진실하게 글을 쓰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제가 Bel이라는 책을 쓰고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끝내면 아프리카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하죠. 결국 저는 책을 끝내야만 했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아프리카 여행을 빼앗는 최악의 아버지가 될 테니까요. 아마도 운이 좋다면 이런 방법들이 저를 궁극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바람(야망을 약화시키는 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나약한 야망이라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게 쉽게 포기할 만큼 소중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아이를 갖기 전에도 행복했던 시간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경험한 행복한 순간들만 세어본다면, 아이를 낳은 후가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이제 저는 거의 매일 밤, 아이를 재울 때마다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경험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며, 제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갖기 전에 가졌던 걱정들은 대다수 부모들이 흔히 하는 고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볼 때 짓는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행복 또한 세상 보편적인 감정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