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마인드셋 #커리어
Y Combinator은 이렇게 시작됐다.(Paul Graham)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Paul Graham(Y Combinator 창업자)가 작성한 <How Y Combinator Started>라는 에세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세계 최고의 엑셀러레이터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Linkedin

 

아, 그리고 뉴스레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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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Y Combinator Started>

2005년 3월 11일, 아내 제시카와 저는 하버드 스퀘어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제시카는 투자은행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보스턴에 있는 한 벤처캐피털 펀드의 마케팅 이사직에 지원한 상태였죠. 그 벤처캐피털은 결정을 내리는 데 한참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트립어드바이져 <하버드 스퀘어>

 

한편 저는 벤처캐피털 업계에 대해 바꿔야 할 점들을 제시카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들은 더 많은 "작은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한다, 틀에 박힌 사람들(suits)이 아닌 "해커(Hacker)"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창업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들이었죠. 이 아이디어들은 결국 Y Combinator의 핵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엔젤 투자를 해볼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마침 하버드 학부 컴퓨터 동아리에서 '스타트업 창업 방법'에 대해 강연을 막 마친 직후였는데, 문득 제가 엔젤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7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시작조차 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과거 함께 일했던 로버트 모리스, 트레버 블랙웰과 다시 협력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고, 몇 시간 전 그들에게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는 이메일을 보낸 참이었습니다.

하버드 스퀘어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었습니다. "우리만의 투자 회사를 만들어서 제시카가 그곳에서 일하면 되겠네." 워커 스트리트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새 펀드에 1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제시카는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로버트와 트레버를 설득해 각각 5만 달러씩 추가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YC는 총 20만 달러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Linkedin <트레버 블랙웰, 폴 그레이엄, 로버트 모리스, 제시카>

 

제시카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을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때 행복해하는 그녀의 사진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찍어주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처음에는 Cambridge Seed라고 회사명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Y Combinator로 바꿨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특정 장소와 엮이는 이름은 피하고 싶었으니까요.

초기에는 아이디어의 큰 틀 정도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표준화된 조건을 세우고 시드 펀딩을 제공하려 했습니다. YC가 생기기 전, 시드 펀딩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였습니다. 친구의 돈 많은 삼촌에게서 1만 달러를 받는 식이었죠. 계약 조건은 엉망인 경우가 다반사였고, 투자자, 창업자, 변호사 누구도 서류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페이스북이 초창기에 플로리다 유한책임회사(LLC)였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LLC는 지분 구조가 복잡하고, 추후 VC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법인 형태). 저희는 이전에는 없었던 표준적인 시드 펀딩의 공급처가 되고자 했습니다.

저희는 예전에 저희가 Viaweb(소규모 사업자가 웹 브라우저만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쉽게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게 해준 서비스, Yahoo에 매각)을 창업할 때 받았던 투자를 YC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저희는 친구인 줄리안 웨버에게 1만 달러를 받아 Viaweb을 시작했습니다. 줄리안은 제가 하버드 대학원 시절 강의를 수강했던 화가 이델 웨버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대해 잘 알았지만, 다른 이들처럼 틀에 박힌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National Lampoon의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었죠. 또한 변호사였기에 저희의 모든 서류 작업을 완벽하게 처리해주었습니다. 1만 달러를 투자하고, 회사 설립을 돕고, 사업에 대해 조언을 해준 대가로 줄리안은 Viaweb 지분 10%를 받았습니다. 저는 한때 줄리안이 정말 좋은 투자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줄리안이 없었다면 Viaweb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오히려 저희에게 좋은 거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Y Combinator 같은 모델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출처: Paul Graham <Viaweb>

 

처음에는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스타트업에 '동시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인데, 이전에는 항상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던 방식이었죠. 아니, 사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우리는 첫 해에 여러 스타트업에 동시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우리가 앞으로 모든 투자를 진행할 방식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에 한꺼번에 투자하기로 한 이유는 그것이 더 나은 투자 방식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엔젤 투자자가 되는 법을 빨리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투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프로그램"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여름 방학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저희는 스타트업들에게 늘 조언하는 대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름 프로그램의 기간과 구조가 저희의 투자 방식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YC의 운영 방식은 지금도 첫 여름과 거의 같습니다.

첫 번째 기수 창업자들이 훌륭했던 것도 운이 좋았습니다. 저희는 첫 기수에서 돈을 벌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투자하는 돈을 교육비와 기부금의 성격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첫 기수 창업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인성도 훌륭했죠. 지금도 그들 중 많은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 YC가 얼마나 무시 받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저희를 하찮게 바라봤던 사람들을 탓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저희 자신도 처음에는 그 첫 여름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죠. 제시카와 저는 YC가 결코 하찮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깨닫는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Y Combinator 효과(the Y Combinator effect)'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첫여름에 연사로 온 사람들은 마치 보이스카우트에 강연하러 온 듯한 태도였죠. 하지만 떠날 때쯤이면 모두 "와, 이 회사들 정말 성공할지도 모르겠는데"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YC는 유명해졌기 때문에 저희가 투자하는 회사들이 대단하다는 사실에 더 이상 놀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위치에 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희는 '장난감'처럼 치부될 수 있는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YC도 처음에는 그렇게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회사들을 동시에 지원하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인한 후, 저희는 이 방식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년에 두 번, 기수를 모집해 투자를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두 번째 기수는 실리콘 밸리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결정은 막판에 이루어졌죠. 돌이켜보면, 그해 가을 Foo Camp(테크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컨퍼런스)에 갔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스턴보다 베이 지역의 스타트업 관계자 밀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누군가가 저희를 따라 하고 "실리콘 밸리의 Y Combinator"라고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YC가 바로 "실리콘 밸리의 Y Combinator"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겨울 기수를 캘리포니아에서 진행하는 것은 개인적인 바람과 사업적 목표가 일치하는 흔치 않은 경우였습니다.

만약 시간이 충분했다면 Y Combinator는 버클리에 있었을 겁니다. 그곳이 베이 지역에서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거든요. 하지만 버클리에 건물을 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어디든 건물을 구할 시간 자체가 없었죠. 제때 공간을 확보할 유일한 방법은 트레버를 설득해 당시 그의 마운틴 뷰 건물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번 운이 좋게도, 마운틴 뷰는 YC 같은 곳을 세우기에 최적의 장소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간신히 시간을 맞췄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첫 저녁 식사 때, 페인트가 아직 덜 말라 창업자들에게 벽에 손대지 말라고 주의를 줘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출처: Y Combinator <Y Combinator 건물>

 

참고자료

https://paulgraham.com/ycsta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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