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디자이너도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샤넬 창업스토리)

가브리엘 샤넬(1883~1971)

호화롭지만 단조로운 공작부인의 삶 

vs. 능력과 열정을 쏟는 디자이너 일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연애하던 시기 샤넬 앞에 놓였던 선택지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은 인생의 최종 목표였지만, 

샤넬은 안락한 삶보다 자신의 꿈을 좇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결국 공작과 이별하고 디자이너로서 독립적인 삶을 선택했다. 

화려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샤넬은,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았다.

 

샤넬은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읽었다. 

그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날거라 예측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옷을 제안했다. 

저지 원단의 활동적인 의상과 세일러 셔츠 등은 여성의 새로운 매력을 정의하며 ‘현대적인 룩’의 본보기가 되었다.

반면,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스파이로 활동한 것에 비판을 받는다.

 

<차례>
1. 가난했던 시절 (샤넬 이전의 샤넬)
2. 혁신의 시작, 샤넬 (샤넬 창업스토리)
3. 샤넬 브랜드가 사랑받은 이유


가난했던 시절 (샤넬 이전의 샤넬)


12살때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샤넬을 고아원에 맡겼다. 

그녀는 고아원과 수녀원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엄격한 규율이 싫어서 도망쳤다. 

19살에는 의상실 보조 재봉사로 일하며 가장 싼 방을 얻어 생활했고, 

주인 몰래 손님들의 일을 맡아 돈을 벌기도 했다.


21살에는 음악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코코’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본명은 ‘가브리엘 보누르 샤넬’이었지만 이후 ‘코코 샤넬’로 훨씬 유명해졌다. 

그러나 가수 활동이 들통나 의상실에서 쫓겨났다. 

낮에는 개인고객을 만나 바느질하고 밤에는 가수 생활을 이어갔다.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더 큰 도시인 ‘비시’로 옮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뮬랭’으로 돌아왔다.


24살에 재력가 에티엔을 만나 콩피에뉴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승마를 배우고 상류층의 생활을 접했다. 

하지만 샤넬은 그 생활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에티엔의 호의일 뿐의라는 사실이 싫었다. 


샤넬은 스스로 입고 싶은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 좋은 시선을 받았지만 점차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고, 

상류층 여성들이 하나둘씩 그녀에게 모자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혁신의 시작, 샤넬(샤넬 창업스토리)


1909,26살

에티엔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 

아파트로 동생을 데려와 모자사업을 시작했다. 

신분차이로 결혼하지 못했던 연인 아서는 샤넬을 격려하며 보증을 서 주었다. 


1910, 27살

아서가 수표 대금을 대신 지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회계 업무를 맡아 빚을 갚았다.


1912, 29살 

최고의 패션지에 샤넬 모자가 실림으로써 공식 데뷔를 했다. 


1913, 30살 

아서의 도움으로 두 번째 상점을 열었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며 광고했다. 편물(니트)을 새롭게 사용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14, 31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으나 가게 문을 닫지 않고 운영했다. 

피난 온 상류층과 간호복 수요로 주문이 늘어났다. 

새 고객중에는 남작부인도 있었다.


1915, 32살 

세 번째 상점을 열었다. 

짧은 머리를 유행시키고, 저지(Jersey) 원단을 사용한 파격적인 의상을 제작했다. 

당시 상류사회는 일을 해서 돈 버는걸 천박하게 여겼으나, 샤넬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1917년, 34살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당대 디자이너중 유일하게 유명 디자이너의 도움도, 정식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이름을 날렸다.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며,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달리, 콕토, 라디게, 리파르, 르베르디 등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과 교류했다.


1918년, 35살 

전쟁이 끝났다. 아서와 결혼했다.


1919년, 36살 

아서와 동생의 죽음을 잇달아 겪고 충격을 달래기 위해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1921년, 38살 

획기적이고 단순한 향수 샤넬 No.5를 내놓았다. 패션 하우스로써는 최초로 향수를 낸 것이었다. 


1924년, 41살

샤넬라인 의상을 냈다. 발목만 드러나도 획기적이라 평하던 시대에 나온 무릎치마였다. 


1926년, 43살

‘작고 검은 드레스(Little Black Dress)’로 유행을 선도했다. 

영국의 공작과 연인 관계가 되었고, 처칠과 교류했다. 

그러나 능력을 쏟는 디자이너의 삶을 택해 얼마 안 가 공작과 이별했다.


1931년 48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샤넬의 회사는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1936년 53살

직원들이 파업을 했고 해고로 응대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가게를 닫았다. 


1944년 61살

독일군 내통 혐의로 조국에서 낙인이 찍혀, 스위스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1954년 71살 

18년만에 의상실 문을 다시 열고 복귀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첫 패션쇼는 처참했다. 

하지만 1년만에 자리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일하는 것을 사랑해서, 디자인을 할 때는 9시간씩 물만 마시며 일한적도 많았다. 


1957년 73살 

미국 니만 마커스 패션 어워드에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여전히 명랑했고, 때로는 거침없는 독설도 날렸다. 


1971년 87세 

사망했다. 사망 전날까지도 일에 몰두하며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았다.


샤넬 브랜드가 사랑받은 이유

 

1. 혁신적이었다. 

  • 남성복의 점유물이었던 트위드를 여성복으로 전환했다.
  • 평범한 저지 니트를 특별한 소재로 바꿨다.
  • 해변을 위한 파자마를 만들었다.
  • 허리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드레스를 선보였다. 
  • 검은색을 장례식 색이 아닌, 세련됨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미적 기준을 세우기도 했다. 
  • 장식적인 귀족 취향을 버리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제안했다. 

 

샤넬은 

“나는 패션을 하지 않는다. 내가 패션이다.”

 라는 말을 남겼고, 그 말대로 새로운 패션을 창조했다. 


2. 시대의 변화를 읽는 통찰력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불편하고 화려한 드레스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았다. 

샤넬은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제안했다.


출처: 

페이스북 샤넬 공식 계정, 샤넬 홈페이지, 코코샤넬(앙리지델 저), who? 코코샤넬, 한겨래 코코샤넬 뉴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35394.htm

 

여담으로, 샤넬과 교제한 사람 중에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 초현실주의 시인 르베르디, 광고 디자이너 폴 이리브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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