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1955~2011)
“어떤 일이든 그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해낼 수 있게 된다."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평생에 걸쳐 몸소 실천한 철학이었다.
그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는 덥수룩한 머리와 맨발 차림으로 다니며 전형적인 기업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잡스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현실로 바꿔내는 힘이 있었다.
잡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그가 애플을 세우고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차례
1. 문제아 잡스 (애플 이전의 스티브 잡스)
2. 전설의 연속, 애플 (애플 창업스토리)
3. 잡스가 애플을 제국으로 키울 수 있었던 이유
문제아 잡스 (애플 이전의 잡스)
어린시절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 폴 잡스에게서 기계에 대한 흥미를 배웠다.
아버지는 중고차를 고쳐서 되파는 일을 했고, 잡스는 그 과정을 통해 자동차와 전자공학을 접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통했다.
그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등교하는 날’이라는 가짜 포스터를 붙여 교실을 개와 고양이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또 친구들의 자전거 자물쇠 비밀번호를 모조리 바꿔버려, 그날 아무도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만들었다.
잡스는 따돌림을 당했다.
7학년 때 그는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자퇴하겠다며 부모를 압박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는 무리해서 전학을 시켜주었다.
새 학교에서 잡스는 수학과 전자공학, 그리고 LSD에 빠졌다.
직접 전자기기를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주파수 계수기를 제작하다가 부품이 부족해지자 HP의 CEO 빌 휼렛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당시에는 전화번호부에 모든 번호가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휼렛은 부품을 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여름방학 인턴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그 무렵 잡스는 천재적인 기술자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났다.
잡스가 단순한 조립 키트를 만지던 나이에 워즈니악은 이미 고도의 무선 송수신기를 만들었고,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두 사람은 곧 ‘블루 박스’라는 기계를 함께 만들었다.
이 장치는 전화 신호음을 조작해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헨리 키신저(미국 국무장관)를 사칭해 바티칸 교황청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나아가 블루 박스를 제품화해 약 100대가량을 판매했다.
대학이후
잡스는 고집을 부려 학비가 비싼 리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LSD와 선불교에 빠졌고, 곧 자퇴했다.
이 시기 친구 프리들랜드에게서 ‘상황을 자기 뜻대로 보여주는 법’을 배웠다.
프리들랜드는 사람을 사로잡는 아우라가 있었다. 잡스는 처음에 그러지 않았지만 곧 닮아갔다.
잡스는 18개월간 대학에서 놀다가 부모의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경기가 좋아 일자리를 구하기 쉬웠다.
잡스는 아타리라는 비디오제작사에 헝클어진 모습으로 찾아가, 일자리를 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채용되었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야간 근무를 맡게 되었다.
전설의 연속, 애플(애플 창업스토리)
1976년, 21살
애플을 설립하고 애플 I 컴퓨터를 출시했다.
50대 주문 계약을 받았고, 부품은 외상으로 구해 잡스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조립했다.
1977년, 22살
컴퓨터 박람회에서 애플 II를 시연했다.
딸 리사가 태어났지만, 잡스는 친자임을 부인했다.
이 무렵 그는 마약을 끊고 단정한 옷차림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9년, 24살
매킨토시 컴퓨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이끌었으나, 잡스가 곧 주도권을 빼앗아 자신이 담당했다.
1980년, 25살
애플 III가 실패했다.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기업가치는 약 18억 달러로 평가되었고, 잡스는 순식간에 거부가 되었다.
여러 잡지에 얼굴을 드러내며 유명세를 얻었다.
1983년, 28살
존 스컬리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모두가, 심지어 잡스 본인도 자신은 CEO 자리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1982년, 애플 II는 27만 대, IBM은 24만 대가 팔렸다.
1983년에는 애플 II가 42만 대, IBM은 130만 대로 격차가 벌어졌다.
1984년, 29살
애플의 연 매출은 15억 달러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1억 달러 수준이었다.
두 회사는 매킨토시 소프트웨어에서 협업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매킨토시 판매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5년, 30살
잡스와 스컬리 사이에 큰 의견 충돌이 있었다.
잡스는 제품의 완벽함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스컬리는 효율성과 이익을 중시했다.
결국 5월, 이사회는 잡스가 지나치게 제멋대로이며 분란을 일으킨다고 판단해 그를 회사에서 쫒아냈다.
잡스는 자신이 가진 애플 지분을 1주만 남기고 모두 처분했다.
애플을 떠난 잡스는 넥스트를 설립했다.
그는 로고 제작에만 10만 달러를 들였고, 정육면체 모양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모서리를 뾰족하게 다듬기 위해 65만 달러짜리 주형을 사용해 특수 제작했으며,
케이스는 무광택 검은색으로 만들어 흠집에 취약했다.
컴퓨터 내부의 볼트까지 도금할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집착했다.
넥스트는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본사 건물과 공장을 화려하게 꾸몄다.
그러나 컴퓨터 가격은 한 대당 6,500달러에 달했다.
반면 소비자들이 지불하려는 금액은 2,000~3,000달러 수준이었다.
1989년 판매를 시작했으나 한 달 판매량은 400대에 불과했고, 회사는 곧 재정난에 시달렸다.
잡스는 전 생애에 걸쳐 효율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디자인에 집착했지만, 넥스트에서 그 집착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1986년, 31살
잡스는 픽사를 인수했다.
1989년, 34살
로렌 파월을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1990년, 35살
윈도우 3.0이 출시되며 애플 판매량이 급감했다.
애플 II 의 시장 점유율은 16%에서 4%로 떨어졌다.
1995년, 40살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개봉했다.
이후 픽사는 몬스터 주식회사, 벅스 라이프, 카 등 흥행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1997년, 42살
잡스는 애플로 돌아왔다.
그는 연봉 1달러만 받고 일하며 픽사와 애플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9월에 애플은 10억 4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지만, 12월에는 4,500만 달러 흑자를 내며 반전을 이루었다.
1998년, 43살
아이맥(데스크톱 컴퓨터)을 출시했다.
잡스는 여전히 디자인에 많은 비용을 쏟았지만, 이제는 효율성과 아름다움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맥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컴퓨터라는 신기술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특히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매출의 32%는 컴퓨터를 처음 쓰는 소비자들이 차지했다.
아이맥은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린 컴퓨터가 되었다.
2001년, 46살
세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먼저 애플스토어(오프라인 매장)를 열었다.
과거 게이트웨이 컴퓨터가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다 실패한 사례가 있었지만, 애플스토어는 달랐다.
게이트웨이는 매장당 주 평균 250명이 방문했으나, 애플스토어는 평균 5,400명이 찾았다.
소매 업계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아이튠즈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이는 음악을 앨범 단위가 아닌 곡 단위로 판매한 최초의 서비스였다.
출시 6일 만에 100만 곡이 팔렸고, 그해 총 7천만 곡이 판매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이팟(음악 재생기기)을 선보였다.
2005년에는 아이팟이 애플 수익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2003년, 48살
잡스는 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수술을 거부했으나 9개월 후 췌장 절제술을 받았다.
2005년, 50살
밥 아이거가 디즈니 CEO가 되면서 디즈니와 픽사의 갈등이 해소되었다.
디즈니는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했고, 픽사는 독립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 무렵 시중에는 다양한 휴대폰이 나왔지만 품질은 조악했다.
1997년(42살)부터 잡스는 연봉 1달러를 받았으나, 2000년 초 스톡옵션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해 말 주가가 하락해 스톡옵션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2007년, 52살
아이폰을 공개했다.
2008년, 53살
암이 재발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듬해 애플로 복귀했다.
2010년, 55살
아이패드를 발표했다.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으나 출시 후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같은 해 출시된 아이폰 4는 100대 중 1대꼴로 문제가 발생했지만, 애플은 리콜 대신
“모든 휴대폰에 문제가 있으며 우리는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고 발표했다.
이미 매진된 아이폰 4의 대기자 목록은 2주에서 3주로 증가했다.
그해 11월, 잡스의 암이 재발했다.
2011년, 56살
아이폰 앱스토어를 출시했다.
9개월 만에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기록되었다.
그해 잡스는 CEO 자리를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잡스가 애플을 제국으로 키울 수 있었던 이유
잡스는 장단점이 극명한 사람이었다.
성격이 까칠해 적이 많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사로잡아 자신이 바라보는 미래를 함께 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장단점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전기《스티브 잡스》의 저자 윌터 아이작슨은 서두에서 잡스의 장점이 곧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이라 어느 하나만 떼어 볼 수 없다고 했다.
잡스 장점
1. 제품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제품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2. ‘현실 왜곡장’을 만들어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믿게 한다.
3. 아첨하는 사람들보다는 강하고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을 옆에 둔다.
단점
1.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감정을 챙기는 데에 서투르다.
2. 분란을 조장한다. 특히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들이 편을 갈라 싸우게 했다.
추가 요인
애플이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 것은 2011년 이후로,
이는 스티브 잡스가 CEO직을 팀 쿡에게 넘긴 뒤의 일이다.
잡스가 튼튼한 기반을 다져놓았지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팀 쿡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팀 쿡의 지휘 아래 애플은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시총은 세 배, 현금 보유고는 네 배로 증가했다.
잘 되는 기업들은 많지만, 대부분 2대/3대째에서 무너진다.
진짜 위대한 기업은 오랜 시간 잘 되는 기업들이다.
애플이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잡스가 뛰어난 후계자를 찾아 세운 덕분이기도 하다.
출처: 스티브 잡스(윌터 아이작슨 저), 사진출처 챗지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