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20대에 세운 계획대로 대기업을 만든 사람(소프트뱅크 창업 스토리)

손정의(1957~)


한국인 빈민촌에서 태어나 국적 문제로 차별을 받았지만, 이후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는 20대 초반에 50살까지의 인생 계획을 세웠고, 대기업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성공할것을 예측하고 일본 독점 판매권을 따내었으며, 알리바바/쿠팡/우버 등의 회사에 투자해서 성공을 거두는 등, 미래를 예측했다.

그의 인생은 굴곡도 많았고, 다사다난했다. 손정의는 어떻게 지금의 소프트뱅크를 만들었을까?

차례 
1. 차별받던 한국인에서 21살에 11억원을 벌기까지(소프트뱅크 이전의 손정의)
2. 창업 첫날, 조 단위 매출을 올릴거라 말한 사장(소프트뱅크 창업스토리)
3. 손정의 장점


차별받던 한국인에서 21살에 11억을 벌기까지(소프트뱅크 이전의 손정의)

손정의는 일본의 한인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많이 겪었다. 

부모님을 졸라 유치원에 갔지만, 인종 때문에 아이들에게 을 맞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지만 운동을 잘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마음을 다잡고 매일 일찍 일어나 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이라는 꿈이 생겼으나 한국인이어서 이룰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 그는 빈민촌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학원에 가고 싶었던 그는 친구 어머니(학부모회 임원)에게 직접 찾아가 부탁했다. 결국 특별히 입학을 허락받았다. 

그 뒤 전교 2등까지 올라 목표하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16살 무렵, 그는 맥도널드 재팬의 설립자 후지타 덴을 만나고 싶었다. 60번이 넘게 전화를 걸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15분간의 면담 기회를 얻었다. 

후지타 덴은 그에게 "인터넷 사업을 해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이후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미국에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아버지가 쓰러져 가족의 반대가 거셌지만, 17살의 그는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학원에서 시작해 필사적으로 공부한 끝에 7개월 만에 고등학교 10학년으로 편입했고, 교장을 찾아가 직접 월반을 부탁했다. 몇 주 만에 11,12학년 과정을 끝내고 검정고시를 치렀다.

시험을 볼 때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에게 배려가 필요하다며 감독관을 설득해 영어사전과 추가 시간을 받아내었다. 

1년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모든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으며 20살에는 UC 버클리 2학년으로 편입했다. 

공부에 필요한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걸어다니며 공부를 했다.

이 시기 그는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20대: 이름을 알린다
30대: 사업 자금을 모은다
40대: 큰 승부를 건다
50대: 사업을 완성한다
60대: 다음 세대에 경영권을 넘긴다
그리고 컴퓨터 분야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야식 배달 회사를 운영했지만 동업자의 배신으로 접었다. 

대신 하루에 하나씩 발명을 하며 사업을 구상했다. 그 과정에서 음성 전자 번역기를 고안했고, 세계적인 물리학 교수를 찾아갔다. 지금 가진게 없으니 돈은 성공하면 주겠다고 했다. 

끈질기게 설득해 중국 유학생 동료도 끌어들였다. 연구에 몰두하다 자기 결혼식에 두 번이나 늦었다. (한 번은 너무 늦는 바람에 취소되었는데, 두 번째에도 또 늦었다.)


음성 번역기를 원하는 회사가 없어서 직접 중역들을 찾아다녔다. 사업이 궤도에 올랐을 때, 그는 동업자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1년 반 동안 1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사업 아이템을 검토했고,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4살, 그는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창업 첫날, 조 단위 매출을 올릴거라 말한 사장 (소프트뱅크 창업스토리)

소프트뱅크가 설립된 첫날, 손정의는 허름한 건물 2층 사무실에서 단 두 명의 직원을 데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30년 후 조 단위 매출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직원은 곧 회사를 떠났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직원 채용에도 어려움이 많았기에, 그는 직접 지원자들을 설득하며 사람을 모아야 했다.

초기에는 중소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공략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기업들을 설득해 독점 계약을 체결했고, 덕분에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세 개의 잡지사가 담합해 소프트뱅크를 견제했을때는, 새로운 잡지사를 창간했다. 처음에는 적자로 시작했으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6살, 소프트뱅크는 직원 125명, 매출 45억 엔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당시 불치병이던 간염 판정을 받았다. 회복을 위해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치료에 집중했다. 

기적적으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완치할 수 있었다. 그는 3년의 치료 기간 동안 무려 4,000권의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손정의가 29살 때 다시 경영에 복귀하려고 했지만, 치료 기간 동안 회사를 맡았던 임시 사장이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 했다. 

손정의는 이사회를 설득해 회사에 정년제 제도를 도입했고, 그 덕에 사장으로 복귀했다.


그때 회사는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손정의는 다시 발명에 나섰고, 그 결과 회사는 20억 원 규모의 저작권 수입을 얻게 되었다.


37살부터는 IT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컴팩스 매각 소식을 듣고 직접 회장을 찾아가,

 “돈은 없지만 우리는 당신의 꿈을 가장 잘 계승할 회사입니다”

라며 설득해 회사를 인수했다. 이어 파격적인 조건으로 야후 지분을 매입했고, 야후는 2000년대 중반까지 검색 분야 1위에 올랐다.

39살에 그는 마이니치 경제인상을 수상했고, 타임지에도 소개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도쿄에는 초호화 주택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43살, IT 버블 붕괴로 회사는 큰 타격을 입었다. 사람들은 손정의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초고속 인터넷 사업에 몰두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거래처의 비협조, 낮은 고객 인식, 은행의 불신까지 삼중고에 시달렸다. 

결국 다른 부문을 매각했지만, 회사의 재무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핵심 참모였던 기타오와 갈등을 빚었다. 

기타오는 결국 일부 직원을 데리고 나가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손정의는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며 인터넷 사업을 밀어붙였다. 새벽 3시에 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그 집념 덕분에 서비스는 점차 안정되었고, 마침내 48살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 뒤 그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 일본 내 아이폰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52살에 트위터를 시작했고, 다음 해에 ‘300년을 지속할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011년 대지진이 발생하자 피해보상을 위해 기부했는데, 일본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이었다. 

 


손정의 장점


1. 열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걸어다니면서도 공부했고, 모든 시간을 사업에 쏟았으며, 투병생활 중에도 공부를 했다.


2. 자신감
자신이 가진게 아무것도 없을 때도 당당하게 협상하고, 멘토를 찾아가 만났다.


3. 행동력
안 되는 일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방법을 찾아낸다.


출처: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who 손정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6441593, 사진출처 챗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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