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전략 #운영 #마인드셋
학벌도 인맥도 없던 마윈이 알리바바를 만든 방법 (알리바바 창업스토리)

마윈 (1964 ~)

마윈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했고, 대학에 합격한 것도 세 번의 도전 이후였다. 
 

한 번은 24명이 지원한 회사 면접에서 혼자만 떨어지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늘 남들보다 느리고, 실패가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알리바바를 창업할 때도 그에게는 든든한 학벌도, 인맥도 없었다. 그랬던 그는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 알리바바를 세울 수 있었을까?


차례 
1. 실패 속에서 자란 마윈 (알리바바 이전의 마윈)
2. 거대기업 이베이와의 경쟁 (알리바바 창업스토리)
3. 마윈의 장점

 

실패 속에서 자란 마윈 (알리바바 이전의 마윈)

생성된 이미지
마윈은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과거에 ‘보갑제’라는 지방 통치 제도의 책임자였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13살 무렵, 중국이 개방정책을 시작하면서 항저우에는 외국인이 많이 찾아왔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마윈은 무작정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고, 관광객의 가이드를 해주며 언어 실력을 키웠다.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험에서 두 번, 중학교 시험에서 세 번 떨어졌다. 

19살, 대학에 떨어진 마윈은 취직을 시도했다. KFC 지원자 24명 중 유일하게 불합격했고, 경찰 시험에서도 다섯 명 중 혼자 떨어졌다. 

겨우 잡지사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구해 생계를 이어갔다.

그래도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준비한 끝에, 3번만에 합격했다. 신설학과에 원서를 넣었는데 그 학과가 미달되었던 것이다.

20살에 사범대학에 입학한 그는 22살에 학생회 회장을 지내고 24살에 우수졸업을 했다.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졸업 후 바로 영어강사로 일할 수 있었다. 그때쯤 번역 회사를 구상했으나 5년 계약 탓에 시작하지는 못하고 틈틈히 공부를 하며 준비했다.

28살에 드디어 번역 회사를 창업했으나 수입이 적어 노점상을 하며 회사를 유지해야 했다.

31살 어느 날, 마윈은 길에서 불량배들이 맨홀 뚜껑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뚜껑 없는 맨홀에 아이들이 빠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잦았기에, 그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을 막아섰다. 

그런데 그 상황은 사실 항저우 TV의 몰래카메라 촬영이었다. 마윈은 ‘용감한 시민’으로 방송에 소개되었고, 이때 그의 영어 실력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마윈은 정부 일을 맡아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계약을 맺으려던 회사는 정부 자금을 빼돌리려는 유령 회사였다. 그들은 마윈에게도 함께 횡령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오히려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윈은 거짓으로 동의하는 척해 간신히 풀려났고, 이후 시애틀의 한 홈페이지 제작 회사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한 그는,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했

1995년(31살),  마윈은 중국 최초의 인터넷 회사 중 하나를 세워 홈페이지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반응이 냉담했지만 3개월 후부터 점차 수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경험 적은 학부생, 여성 등등 가리지 않고 채용을 하고 승진시켰다. 


32살 무렵,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경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거대 기업인 항저우 텔레콤은 마윈의 회사를 따라 하며 도메인까지 모방했다. 

결국 1년 뒤, 마윈은 경쟁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회사를 합병했지만, 지분 70%를 가져간 항저우 텔레콤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마음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를 떠났고, 팀원들과 함께 정부에 들어가 무역부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거대기업 이베이와의 경쟁 (알리바바 창업스토리)


마윈은 정부에서 근무하면서 성과급이 적고, 정부 간부들과 갈등이 있었으며 경영에 대한 규제 등으로 인해 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창업을 제안했고, 팀원들도 불만이 있었는지, 설득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함께 퇴직했다. 

33살에 마윈은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당시 중국 기업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자들은 모두 아마존과 이베이의 C2C(개인 고객들에게 직접 판매) 모델을 따라했다. 그러나 마윈은 중국에는 B2B(기업들에게 판매) 모델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고 모두가 회의적이었지만, 이 전략은 알리바바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


창업 초기에는 광고비가 부족해 마윈과 팀원들이 직접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링크를 달아 홍보했다. 

하지만 곧 투자 제안이 많이 들어와서 알리바바는 우수한 투자자금만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주주들이 상장과 이익만을 목표로 할 때, 알리바바가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알리바바는 골드만삭스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다. (특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면담 6분 만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마윈은 손정의의 자문도 많이 받았다.


34살에는 해외 지사 확장을 시작했지만, 2000년대 후반 무리한 확장으로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후 중국 시장에 주력하며 청신통과 중국공급상 등의 사업을 성공시켰다.


2003년(37살), 이베이가 중국에 진출했다. 

이에 맞서 마윈은 비밀리에 C2C 사이트를 개발해 공개했고, 이 서비스가 바로 타오바오였다. 이베이는 타오바오를 무시했고, 투자자들도 부정적이었다. 


이베이의 방해 공작 때문에 타오바오는 광고도 할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직접 농촌을 돌며 홍보했고, 이베이의 수수료에 맞서 사이트를 무료로 운영했다. 

중국인의 취향을 반영한 귀여운 캐릭터와 게시판도 도입했다. 여기에 중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더해지며, 1년 만에 타오바오는 이베이를 앞섰다

2016년 기준, 타오바오의 거래량은 미국 모든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합친 것보다 많은 3조 위안에 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타오바오를 중국 최대 온라인 시장으로 평가했다.


39살에는 야후 차이나를 인수하고, 직원들에게 손편지를 쓰고 명절에 월병을 보내는 등 두 회사의 직원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06년(40살)에는 이베이의 중국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41살, 알리바바는 홍콩 증시에 상장되었고, 마윈은 자신 지분의 5%만 남기고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었다. 

타오바오는 여전히 무료로 운영되었고, 알리바바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윈은 신사옥을 건설하고 은퇴 계획을 밝혔다. 

그는 사업이 절정에 달하면 반드시 침체가 오며, 성공 후에는 내려놓을 때가 온다고 생각했다.


47살에 CEO 직을 사임했고, 48살에는 알리바바가 15년 만에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마윈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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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복력
어려서부터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그게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2. 설득력
팀원들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것에 뛰어났다. 


3. 행동력
마윈은 인터넷을 접한 바로 그 해에 창업을 했다. 항저우텔레콤과 합병 이후, 미래가 보이지 않다고 판단했을땐 1년도 안되어 퇴사를 했고, 타오바오를 출시하고 이베이를 이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유튜브), who 마윈 (도서), 마윈 내가 본 미래 (도서), 코브스 (유튜브), 위키백과 알리바바/타오바오/마윈, 사진출처 챗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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