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현 메타)은 (2025년 8월기준) 시가총액 11위의 회사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2025년 1분기 기준, 전 세계 34억 명 이상이 최소 1개 이상의 메타 패밀리앱을 매일 사용하고있다.
이런 페이스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천재 사업가가 19살에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한 회사’ 라고만 알고 있지만, 그 이면은 좀 더 인간적이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다.
차례
- 창업가는 타고나는 걸까? (페이스북 창업 이전의 저커버그)
- 페이스북은 경쟁사 없는 블루오션에 진입했을까? (창업 당시 시장 상황과 경쟁사들)
- 페이스북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페이스북의 성장스토리)
- 사람들은 왜 페이스북을 선택했을까? (페이스북의 차별점)
창업가는 타고나는 걸까? (페이스북 창업 이전의 저커버그)
저커버그의 아버지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저커버그는 어릴 때부터 코딩을 좋아했고, 여러 게임을 직접 만들곤 했다.
그는 “그 게임들이 좋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1,000달러를 받고 웹사이트를 만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시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는데,
- 맞춤형 음악 재생 프로그램
- 친구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패이스매치’
- 친구들이 어떤 수업을 듣는지 확인할 수 있는 ‘코스매치
등이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도 이런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페이스북이 큰 반응을 얻을 때에도, 그는 잠깐일 뿐이라고 보고 새로운 프로젝트 ‘와이어호그’를 준비했다.
그러나 와이어호그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투자 유치에도 실패했다. 결국 그는 다시 페이스북에 집중하기로 했다.
초기의 페이스북은 디자인이 세련되지 않고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식 론칭 날, 저커버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언젠가는 누군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이 만든 페이스북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아마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이 하게 되겠지’라고 결론 내렸다.
페이스북은 경쟁사 없는 블루오션에 진입했을까? (당시 소셜미디어 시장)
- 1997 식스디그라스 : 사용자가 이메일 주소를 등록하는 서비스였는데, 당시 인터넷 사용자가 4,000만~6,000만 명 정도라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았다. 창업자들은 사진 등록 기능도 고려했지만, 당시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지 않아 사진을 올리려면 일일이 스캔해야 했다. 결국 한계에 부딪혀 1999년 12월 매각되었다.
- 1997 AOL 인스턴트 메신저: 오늘날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200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으나 페이스북, 왓츠앱 같은 서비스가 나오면서 점차 쇠퇴했고, 2017년 12월 공식 종료되었다.
- 저커버그 고등학교 시절 온라인 주소록: 같은 학교의 어떤 학생이 사진과 전화번호를 개시하는 온라인 주소록을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페이스북 아이디어와 닮아 있었다.
- 2003 프랜드스터: 사진과 실명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애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였다. 가입자가 300만 명을 넘으며 50만 달러의 엔젤투자를 유치했고, 같은 해 구글이 3,000만 달러에 인수하려 했으나 거절했다.
- 2003 마이스페이스: 소셜미디어 중 가장 빠르게 사용자 100만 명을 달성했고, 2008년까지는 페이스북보다 훨씬 규모가 큰 세계 1위 소셜미디어였다.
- 그때 하버드는 공식 온라인 방명록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 윙클보스 형제는 ‘소개팅 사이트’ 아이디어를 가지고 저커버그에게 개발을 의뢰했다. 그러나 세부 기능이 저커버그가 구상 중이던 아이디어와 겹쳤기에, 그는 페이스북을 완성할 때까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이후 형제는 저커버그가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6,500만 달러를 받아냈다.
- 에런 그린스펀이라는 친구는 하버드의 캠퍼스 생활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중 전자인명록도 있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 2004년 1월, 구글은 오르컷이라는 소셜네트워크를 발표했다.
⇒ 페이스북과 비슷한 서비스가 여기저기에서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페이스북의 초기 성장스토리. 2004~2006)
친구와 각 1000달러(현재가치 약 300만원)씩 투자하고 지분을 3:2로 나눴다.
페이스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중에 페이스북에 합류한 한 개발자는, 자신이 더페이스북 출시 이튿날 가입했는데도 1681번째 가입자였다고 했다.
전국대학 진출계획을 세웠고, 2004.2 컬럼비아 대학에 진출했다. 컬럼비아 대학에는 2003년 중반부터 다른 온라인 방명록 서비스가 있었지만 페이스북이 이겼다.
이때 페이스북에서 일하는친구는 저커버그 포함 5명이었다.
그후 몇 달간 100여개의 학교에 진출했다.
마치 공식처럼, 그들은
-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후
- 그 학교의 수강편람을 스캔하고
- 대학신문에 접촉해 광고했다.
- 그 다음 서비스를 런칭하고,
- ‘우리 학교에도 와주세요’하는 문의 이메일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그해 여름, 방학기간에 친구들이 인턴하러 샌프란시스코에 가자 저커버그도 따라갔다. 다 함께 쓸 방을 구해 같이 묵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벨리에서 페이스북 팀은 냅스터 공동창업자중 한명이었던 파커와 만났다.
냅스터는 수백만명이 다운로드한 사이트였으나 저작권 문제에 연루되어 망했다. 파커는 심각한 자금 문제를 겪고 있었다.
파커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투자자들을 만났다.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 등의 투자자들은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를 500만달러로 평가하고, 10% 지분을 받아 50만달러 엔젤투자를 했다.
이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프로젝트를 본격적인 사업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101번 국도를 달리면서 수많은 회사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여름방학이 끝났다. 저커버그는 휴학계를 내고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직원이 늘었고, 중간중간 피터 틸에게 조언을 받아 회사의 시스템과 기반을 잡아갔다.
2005년 3월 더페이스북은 사무실에 입주했다. 이때 이용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서 있었다.
몇 주 만에 재무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이때는 너도나도 페이스북에 투자하려고 나서는 상황이었다.
저커버그는 존경하던 워싱턴포스트 CEO에게서 투자를 받으려 했으나, 벤처캐피털 회사인 엑셀이 기업가치를 9,800만 달러로 평가하고 워싱턴포스트의 2배 금액을 제안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결국 엑셀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
페이스북 팀은 투자금으로 먼저 Facebook.com이라는 도메인을 구입했다. (다른 회사에서 먼저 쓰고있어서, 그전까지 그들은 thefacebook.com 이라는 주소를 쓰고 있었다.)
인력 채용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등생들을 여름인턴으로 데려와서 꼬신 후에 입사시켰고, 실리콘벨리의 다른 기업들에서 인재를 빼오기도 했다.
페이스북은 가족같은 분위기였고, 오후가 되어 파자마 차림으로 출근해서 14시간을 내리 코딩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2005년 11월 12번째 엔지니어가 들어왔다.
처음 페이스북을 런칭했을 때 저커버그는 ‘언젠가 이런 소셜 네트워크를 하는 대기업이 있을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05~2006년경부터 페이스북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저커버그는 대중연설에 서툴렀지만 이쯤 되니 여러번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점점 나아졌다.
- 당시 마이스페이스라는 다른 소셜네트워크의 사용자수는 페이스북의 10배였다.
이전까진 대학생만 페이스북을 쓸 수 있었다. 대학 메일로 로그인을 해서, 같은 대학 친구들끼리만 대화할 수 있었다. 그것을 고등학교와 회사로 확대했지만 실패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기업들도 상대해야 했다.
가장 거절하기 힘들었던것은 야후의 제의였다. 그들은 10억달러를 제안했다.
2006년 중반 페이스북의 상황이 안 좋았기에 더 고민되었다. 이용자 수가 더는 늘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반응은 폭발적이지 않았고, 직장에서는 실패했다.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은 10억달러를 받길 원했다. 그래서 거의 인수에 동의할 뻔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야후측이 말을 번복하며 금액을 깎았고, 페이스북은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페이스북을 선택했을까? (페이스북의 차별점)
페이스북은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대학 중심 네트워크로 시작해서 강력하게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다.
또 자기가 친구로 추가한 사람들만 사진을 볼 수 있었기에 다른 서비스보다 안전했다. 이용자가 자기 정보를 볼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는 자유도 있었다.
공유를 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기업 문화도 혁신적이었다.
당시 오라클은 코드 변경시 확인절차 4번, 실재 반영까지 2~4년이 걸렸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능 하나 출시하려면 1년 이상이 걸렸다.
페이스북은 몇시간만에 기능을 계속 업데이트했다. 새로운 기능을 덜컥 추가하고, 문제가 터지면 수습하는 방식이었다.
출처: <메타 페이스북> 스티븐 레비 저, 위키백과 AOL 인스턴트 메신저, 제미나이 사진, 페이스북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