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만들어 낸 세계적인 신드롬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그리고 온라인 세상에서 그 열기를 체감하며 많은 예비 창업가들이 '지금이 기회다'라며 K-콘텐츠와 연관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K-콘텐츠의 위상 덕분에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거대한 파도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우리 청년 창업가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K-프리미엄'이라는 달콤한 착각
케데헌의 성공 같이 글로벌 트렌드가 발생하면, 관련 시장에는 소위 'K-프리미엄' 이라는 엄청난 후광 효과가 생겨납니다. 이전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잠재 고객의 주목을 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 주목이 곧바로 '내 제품'에 대한 관심과 '구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가장 경계해야 할 착각입니다.
여기에 두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시 - A 스타트업 ('K-템빨'): '케이데몬헌터스'의 인기를 확인하자마자, 드라마에 등장한 문양을 급하게 프린트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짝하는 유행을 타고 초기 트래픽은 높았지만, 제품의 마감이나 디자인의 독창성은 부족했습니다. 결국 유행이 잦아들자 고객들의 재방문은 끊겼고,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예시 - B 스타트업 ('본질탄탄'): 2년 전부터 한국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품질의 수공예 액세서리를 만들어 온 회사입니다. 이미 소수의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고, 제품의 퀄리티와 스토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케이데몬헌터스'가 인기를 끌자, 드라마의 미학과 비슷한 결을 가진 B사의 제품이 해외 K-컬처 팬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드라마 굿즈'가 아닌 '작품'으로 B사의 제품을 소비했고, B사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습니다.
A사는 'K-프리미엄'을 사업의 시작(0)으로 삼으려다 실패했고, B사는 이미 다져놓은 '본질(10)' 위에 'K-프리미엄'이라는 날개를 달아 비상(100)한 것입니다.
고수가 아닌 이상 미친 파도타기에 성공하기는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0→10의 증명 vs 10→100의 가속: 트렌드는 과연 누구의 편인가?
스타트업의 성장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0 to 10 (증명의 단계): 내 아이디어가 정말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지(Problem-Solution Fit), 그래서 고객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Product-Market Fit)를 처절하게 증명하는 생존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은 '외부의 바람'이 아닌 '내부의 단단함'입니다.
10 to 100 (성장의 단계): 이미 검증된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더 많은 고객에게 더 효율적으로 도달하며 시장을 장악해나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성장 가속 페달'이 필요합니다.
'케이데몬헌터스'와 같은 메가 트렌드는 바로 이 '10 to 100'을 위한 최고의 가속 페달입니다.
이미 제품력을 인정받은 기업에게는 고객 획득 비용(CAC)을 극적으로 낮춰주고,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전 세계에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스피커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아직 0에서 1을 만들지 못한 기업에게 이 거대한 바람은 방향을 잃게 만드는 풍랑일 뿐입니다. 고객들은 '한국'이라는 막연한 호기심을 넘어, '원래 잘하고 있던 저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발견하고 열광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없노: 물이 없을 때도 노를 젓는다는 것은 바로 '근본'의 가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듯 '근본'에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세 가지 근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 흔들리지 않는 제품력: 트렌드가 있든 없든, 고객의 특정 문제를 해결해 주는가?
- 고객에 대한 집착: 우리의 핵심 고객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 실행하는 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개선하고 나아가는가?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짜 경쟁력은 물이 없을 때도, 파도가 보이지 않을 때도 묵묵히 우리만의 방향으로 노를 저어 온 시간에서 나옵니다.
그 시간들이 당신의 비즈니스를 '10'의 단계로 올려놓을 것이고, 그때 비로소 거대한 파도를 타고 '100'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창업가의 여정은 화려한 파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파도가 와도 탈 수 있는 단단한 서프보드를 깎는 과정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케이데몬헌터스' 다음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외부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의 엔진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우리의 노는 튼튼한지, 우리는 우리가 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물없노'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청년 창업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