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大)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2022년 11월 OpenAI가 내놓은 GPT3 기반의 언어모델 챗봇시스템인 ChatGPT는 사람들이 이목을 주목받았던 것은 비단 그가 내놓는 답변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GPT가 가진 지식의 총량은 개개인이 평생 습득할 수 없는 양의 문서를 읽은 상태에서 그 문서 간의 유사성을계산하는 데 매우 특화된 모델이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던 걸 모르고 있던 각 문서의 지식을 요약하는 데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보다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천재(!)를 무려 공짜로 당장 쓸 수 있는 비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고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감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사람은 잔머리부터 쓰는 것이 익숙하다.
특히 IT 서비스 대부분은 사람의 귀찮음을 해소해주는 데 그 본연의 목적을 가지고 있듯이 말이다. 내가 직접 책을 고르고 읽고 필기하고 숙지해서 기억하는과정은 무지하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고를 필요도 읽을 필요도 필기할 필요도 숙지할 필요도 기억할 필요도 심지어 이해할 필요도 없는 시대가되어 버린 것이 최근 벌어지는 모양새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이야기한 특이점은 인간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상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각자의 직업이 대체된다는 말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의미는 내가 받는 노동의 가치가 시장에서의 가격이 하락한다는 의미가 가장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외국어를 번역하는 번역가들 입장에선 번역기가 등장하기 전 한 단어당 100원의 가치를 가졌다면 이제는 한 단어당 30원의 가치로 하락한 것이 최근 번역시장에서의 가장 큰 변화이다. 왜냐하면 시간당 번역하는데 쏟는 시간이 1/3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뛰어난 번역가라면 오히려 가치는 오른다. 의역 수준이 뛰어나거나 해당 분야에 매우 해박하거나 이미 평판이 좋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그 번역가 입장에서는 요즘같이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로 커질 때는 매출이오른다. 결론적으론 해당 번역 시장은 기술과 전문가로 인해 산업의 질과 양이 동시에 오르는 효과를 불러온다. 신기술의 순기능이다.
그렇지만, 대체가 될 만한 직업들은 그 직업이 아닌 사람에 있다. 최근 인공지능 교육플랫폼으로 사업을 하는 친구가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직원들이 ChatGPT를 너무 남용하고 있어서 문제다. 이미지 처리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CNN, ResNet, VGG 알고리즘 중에서 어느 과정이 초기에선행되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직원들은 GPT가 내놓은 답변을 기반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있다. 본인들이 모르는 분야인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최소한 교육과정에 담길 내용들이 무엇인지는 공부해야 하는데 전혀 공부하지 않는다. 이제는 직원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지적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GPT에 의해 대체되는 건 한순간이다.
신기술의 순기능이라 하면 각자가 모르던 분야를 GPT로 배워서(교육비 지원 없이도) 비전문 분야에서도 일을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생산성이 오르는 것이 요즘 시대의 트렌드인 걸로 생각하던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회사 내부에서도 결국은 사람 대 사람이고 고객에게 파는 기업도 결국은 사람 대 사람의 문제이다. 그 신뢰 기반이 무너지면 과연 그 제품은 시장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마치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와 비슷하다. 그 기술을 갖고 있고 쓰고 있다면 엄청나게 강력한 존재가 되는 것은 맞으나 쓰는 데 집중하거나 일을 처리하기 위한 결과물만 보는 시도는 “절대 반지를 낀 골룸”과 같이 본인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우리 각자가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이고를 다 구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것을 판별하는 일 자체는 원래도 쉽지 않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직업이 대체되는 것은 결과물이 아닌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신뢰를 남에게 얼마나 부여할 수 있는지가 가장 핵심이다. 회사의 대표이든 직원이든 골룸이 겪었던 절대 반지의 유혹에 넘어갈 사람은 앞으로도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GPT에 의해 대체되는 건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