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대학교 졸업사진, 보신 적 있나요?
세계적인 가수 시에라도 살아남지 못한 대학 졸업사진입니다.
저는 한 달 전 학부를 마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졸업생입니다.
그리고 적나라한 외국식 사진관 필터와 보정 없는 그 날것의 결과물에는 살아남지 못하는 그냥 일반인이죠.
하지만 저도 졸업사진 예쁘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한국에는 스냅사진을 많이들 찍으시지만, 토론토는 실력 좋은 포토그래퍼분들이 많이 있지도 않고 가격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무모하게 K-포토부스 ‘포토이즘’을 토론토대학교 졸업식에 7일 동안 아예 들여왔습니다.
한국 대학교 아니고요, 서울 아닙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대학교 엔지니어링빌딩.
오늘 그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01 기계가 배를 타고 홍콩에서부터 왔어요
K-포토부스 하면 인생네컷, 모노맨션, 하루필름 등 브랜드가 많지만 프레임 자체 제작, 기계 운반, 배송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포토이즘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포토이즘 토론토 지사와 파트너십을 맺기까지 담당자 분과 여러 차례 프로젝트 취지와 계획을 설명했고, 결국 홍콩에 있던 웨딩 기계 모델—보다 작고 옮기기 쉬운 버전을 무려 4주 동안 배로 공수해오게 되었습니다. 졸업식 현장에 매일 옮겨 설치해야 했기에, 이 선택은 신의 한 수 였어요.
02 학교에서 장사는 처음이라…
다음으로 맞닥뜨린 건, 가장 큰 허들이자 가장 오래 걸린 일. 학교를 설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토론토대학교는 이런 외부 활동이나 학생 주도형 이벤트에 꽤 보수적인 편이에요. 특히 정신없는 졸업식 시즌에, 학생 개인이 상업적 프로젝트를 한다는 건 학교 입장에서 리스크로 보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수십 통의 이메일, 여러 차례 오프라인 미팅, 심지어는 담당자 오피스에 직접 찾아가 문 두드리며 진심을 전했습니다. 결국, 졸업식 현장 바로 옆 건물인 엔지니어링 빌딩 8층에 포토부스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설치 위치를 잡을 때도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졸업식 동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위치가 중요했어요.
03 졸업생이 직접 만든, 졸업생만을 위한 프레임
프레임도 대충 만들 수 없었습니다. 졸업생마다, 문화권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처음엔 10가지 디자인으로 초안을 만들고 친구들과 현지인들의 피드백을 받아 4번 넘게 수정하면서, 결국 4개의 최종 프레임을 완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학교 건물이 들어간 프레임이 가장 인기였고, 그 중 하나에 있는 비버 마스코트 일러스트는 저희 멤버가 직접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이에요.
04 전단지부터 샤오홍슈까지. 틱톡은 거의 공장 수준.
기계와 프레임을 준비했다면, 이제 사람들을 데려올 차례였습니다. SNS 채널은 인스타그램, 쓰레드, 틱톡, 레딧, 디스코드, 샤오홍슈까지. 인종별로 선호하는 플랫폼과 언어에 맞춰 채널을 따로 운영했습니다. 세어보니 한 달 동안 만든 릴스가 22개, 총 조회수는 약 72,000회. “릴스 하나라도 바이럴 시키자!” 그 생각 하나로,토론토 거리를 누비며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마케팅 담당한 친구의 틱톡 스크린타임은… 하루 8시간을 넘겼어요.
그렇다고 아날로그 마케팅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토론토대학교는 총 학생 수가 72,000명이 넘고, 졸업식이 한 달 내내 열릴 정도로 큰 학교입니다. 그래서 SNS만으로 다가갈 수는 없었어요. 캠퍼스 주변에 전단지를 붙이고, 나눠주고, 직접 말을 걸었습니다. 학교 주변 공원, 카페, 모퉁이, 심지어 근처 식당까지 유동인구 적은 시간에는 둘씩 짝지어 전단지를 붙이고,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땐 직접 나가 말을 걸며 부스를 안내했어요.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정말 발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반응이 터졌습니다.
졸업식 주간이 시작되면서, 줄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K-포토부스가 낯선 졸업생들, “한국 포토부스가 여기까지 오다니!” 하며 반가워 몰리는 학생들,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그냥 지나가다 졸업생이 아닌데도 호기심에 찍고 간 사람들까지.
중국인 졸업생의 90%는 샤오홍슈나 인스타 릴스를 보고 왔고, 백인과 중동권 유입은 전단지를 떼어온 비중이 60%였어요. 40%는 친구의 추천으로 온 경우. 심지어 어떤 친구는 졸업식 7일 중 4일 연속 방문, 그때그때 friend group을 바꿔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진짜예요.)
물론 아쉬움도 존재했습니다. 아무리 졸업식 건물과 가까워도, ‘옆 건물 8층’이라는 점은 접근성에서 불리했어요.
학교 규정상 어쩔 수 없었지만 1층이나 야외였다면 자연 유입이 훨씬 쉬웠을 거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마케팅 리소스는 SNS에 80% 이상 집중했는데 전단지 효과가 비등하게 나왔던 건 예상 밖이었고요. 물리적인 것의 힘을 다시 배웠달까요. 날씨도 변수였습니다. 비 오는 날은 매출 100불도 안 나왔고, 반대로 햇살 좋고 사람 많던 날엔 웨이팅이 1시간 반, 하루 방문객 300명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이런 DM이 도착해 있더라고요:
“나 11월에 졸업하는데 그때도 와주면 안돼요? ㅠㅠ”
“내 졸업식엔 왜 없었어요…”
"아이디어 너무 좋다", "접근성만 더 좋았으면", "다음에도 또 해주세요" 같은 피드백은 저희에게 7일을 버티게 한 연료였습니다.
여튼 점점 길어지는 듯하니 급하게 마무리해보자면요.
결론은, 너무 재밌었습니다.
제 졸업식 하나만 해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졸업식 내내 마케팅하랴 운영하랴 뛰어다녔고요, 그래도 한국 제품을 상상하지 못한 장소에 들여오며 뿌듯하기도,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함께 졸업하는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너무 행복했어요. 또, 한국에서 온 브랜드라도, 단순히 제품만 들여오는 게 아니라 현지 문화와 문맥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며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도 재설계해보는 경험은 정말 유의미했고요. 결과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이 모두 즐길 수 있었고, 또 한국 제품이더라도 허들 없이,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었죠.
학부 생활동안 여러 회사에서 일해보고 동아리 활동, 커뮤니티, 프로젝트 등등 많은 것을 했지만 항상 무언가에 갈증이 있었어요. 무언가 더 크게 해볼 수 있는데, 더 잘해볼 수 있는데, 한 번쯤은 제대로 터트려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들요. 그래서 졸업 전에 꼭 한 번, 가장 재밌는 일을 딱 하나 벌여보고 싶었어요. 그게 이 포토부스 팝업이었고, 이걸로 할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아무도 하지 않은 것, 감히 엄두도 못 낸 것, 다 해보고 다녀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