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원도 최전방 GOP에서 글쓰는 예비창업가 김도엽이라고 합니다 (more about me: linktr.ee/doyeob). 군복무 중에 최대한 자기PR을 많이 하여 좋은 분들을 많이 알아가려고 합니다. 기존엔 substack과 미디엄 (정보는 위 링크트리에) 에만 글을 출판했는데 최근 EO Planet에도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와 이 곳에서도 포스팅을 올릴 예정입니다. 많관부!
나는 전기정보공학부에 다니지만, 전기에 관심이 없다. 물화생지 중에선 생물을 제일 좋아하는데 고등학교 때 생물 공부를 중도 포기했다. 성적은 1등급 나왔는데, 하루종일 암기하는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반대로 컴퓨터도 이때쯤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코딩에 금방 매료됬다. 그래서 대학 지원할때 컴공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조금 부족해 비슷한거 배우는 전기정보공학부 (Electrical and Computer Eng.)로 진학했다.
학교 와서 공학 제대로 공부해보니, 성적은 괜찮게 나왔지만 재미는 없었다. 내가 본질에 가까운 공부할 때 느꼈던 학문적 즐거움은 딱히 느끼지 못했다. 수업은 이론보단 문제풀이 위주였고, 과제는 그걸 활용하는 것, 시험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 빨리 푸는 연습이었다. 그런 ‘현타’를 겪을 때마다 생물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생명과학부 전공과목을 수강했다.
그렇게 자연과학 반, 공학 반으로 살아가게 되었는데, 이 글은 두 종류의 학문에 대해서 느낀 것과 둘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공학
공학은 문제해결의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목표지향적이다.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면서도 상황에 맞는 최적의 답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부분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으로 학문적으로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공대에서 가르치는 수업에 흐름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괄식으로 주제를 던지고,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식이지 , 큰 흐름을 느낀 적은 손에 꼽는다 (e.g. 선형대수에서 SVD 배웠을 때: SVD는 이런거고 이럴 때 활용돼. 나: 그래서 저게 어케 나온건데?). 물론, 공학의 발전과정에 인과관계가 존재하겠지만, 학교 수업으로 이를 느끼긴 어려웠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내용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에 대한 과제를 푸는 것으로 수업이 구성된다. 이 루프를 끊임없이 돌다보니, 학문에 대한 애정보다는 혐오만 남은 것 같다. 뒤돌아보면 왜 내가 그걸 끙끙거리면서 배웠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배우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이 과목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 없이 “전공필수”여서 수강해야하는 것이 특히 그랬다.
그럼에도 공학은 매력적이다. 공학을 배우면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리고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낼 수 있는 ‘시각’을 갖추게 된다. 사실 다른 학문은 배워도 써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공학은 현실의 문제를 푸는 것이 학문의 근간이기에 다른 문제를 풀 때도 그 시각이 적용된다.
자연과학
자연과학은 “왜”를 묻는 학문이다.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이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 답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이 많다면, 자연과학은 학문적 매력이 넘친다.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는 지적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수업을 진행할 때 조금 더 흐름이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주제간의 연결도 유기적인 경우가 많고, 의문의 꼬리를 따라서 가다보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학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싶다. 무언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기 보단, 호기심 하나로 시작된 모험이기에.
특히 생물학은 “자연” 중에서 가장 우리와 밀접한 살아있는 생물체에 대해서 다룬다. ‘나’라는 개체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다는게 나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다는 것은 플러스이다. 내가 왜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는지는 사실 분자영역까지 내려가면 충분히 100% 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g. 내가 이렇게 타자 치는 것도 머릿속의 생각들이 글자로 변환되어 내 손가락에게 명령내리는 것일텐데 이 메카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진실들이 참 많은 분야라고 생각된다.
생물은 ‘나’에 대해서 탐구하기에, 진실들을 알아내다보면 인류에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들이 나온다. 왜 사람이 늙는지, 왜 사람이 병드는지, 어떻게 생명이 탄생하는지… 1900년대에 비해서 기대수명이 이렇게 오른건 다 생물에 대한 탐구 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나만 해도 군대 와서 연골이 작살나서 고생중이다 (연골 재생은 아직 검증된 solution 없는 분야이다).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고, 이해할 것도 참 많다. 그래서 난 생물 좋아한다.
두 질문
Why와 How, 둘 다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던지면 매우 강력해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면 그 힘을 잃는다.
공대생들은 Why 잘 안던지고, 자연대생들은 How 고민 덜 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꽤 있었다. 왜 전기회로 공부해야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호기심으로 다가가기 보단, 일단 배우니까 배우고 어떻게 과제/플젝 해결할지 먼저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 분야는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방법론적인 효율성에 대해서 더디게 발전한다 (특히 bioinformation 분야 수업 듣다보면 참 비효율적으로 학문 발전했다는 거 느낀다. 앞으로 바뀌겠지만).
Why? Why Not? 이런 질문들은 본질에 접근하는데 핵심적이다. 통념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뒤엎는데에는 이런 고민 많이하는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에 conform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 멈춰 있으면 방구석 사상가, 철학가가 될 뿐이다. 그런 gap 들을 파악했다면 그 곳을 타겟팅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하다. 이때부턴 How다. 어떻게 자금 조달하고, 사람 모으고, 유저 만족시키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학문 배우면서 그 내용 뿐 아니라, 그 본질에 있는 태도도 함께 습득해야하는 이유이다.
조합, 그리고 경쟁
PG의 에세이에서:
The clash of domains is a particularly fruitful source of ideas. If you know a lot about programming and you start learning about some other field, you’ll probably see problems that software could solve. In fact, you’re doubly likely to find good problems in another domain: (a) the inhabitants of that domain are not as likely as software people to have already solved their problems with software, and (b) since you come into the new domain totally ignorant, you don’t even know what the status quo is to take it for granted.
Sam Altman 에세이에서:
Most people do whatever most people they hang out with do. This mimetic behavior is usually a mistake — if you’re doing the same thing everyone else is doing, you will not be hard to compete with.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경험을 하면 같은 사고를 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재료가 같은데 어떻게 다른 맛을 낼 것인가?
개인적으로 친구들이 남들이 가는 길을 가려고 할때마다 말리는 편이다. 흔히 가는 길이라는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시장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 했으니 생각하는 것도 비슷할 것이고 큰 차별성 갖추기 힘들기에 무한경쟁을 해야 한다. 그건 피곤할 뿐더러 매우 소모적이다. 한국의 대입 시스템에서 이미 겪어보지 않았는가. 반대로, 좋은 선택만 한다면 본인이 처한 상황에 비해 월등한 outcome을 낼 수 있다.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리바운드 잘 잡는 스킬 하나로 N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듯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스킬셋의 희귀한 조합 (rare combination of skills that other people don’t have) 을 가지고 있다면 대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매우 좋아하는 Garry Tan 영상: 링크). 투자자들이 Why You?라고 물을 때 이런 대체불가능한 강점 (unfair advantages) 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물 + 전기 (+potentially 디자인) 공부하는 건 나만의 무기 갖추기 위함이다. 나만 잘할 수 있는거 찾아야 한다.
글 읽는 모두가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되길. 함께 세상을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