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빌딩 #운영 #마인드셋
스타트업이 최고속력을 내려면,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 당장 1억원 투자금과 팀원 3명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면, 뭘 제일 먼저 할까?

만약 6개월 안에 제품 못 내면 회사 문 닫는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팀이 10명에서 50명으로 늘면서 모든 소통이 꼬이기 시작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 어떻게 일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일단 빨리 만들어야죠. 소통은 하면서 맞춰가요."

3개월 뒤, 팀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데도 똑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다면? 중요한 피드백이 슬랙 메시지에 묻혀버리고, 새 팀원 들어올 때마다 모든 걸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면? "우리 이거 어떻게 하기로 했었지?"라는 말이 회의 단골 멘트가 되었다면?

만약 그제서야 깨닫는다면 어떨까. 빨리 가려고 달렸는데 오히려 더 늦어졌다는 것을. 소통을 위해 포기한 구조가 결국 성장 속도를 멈췄다는 것을.

이 글은 그런 경험을 겪은 한 PM의 이야기다. 팀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결국 찾아낸 답에 관한 기록이다. 가장 빠른 팀들이 왜 '브레이크'를 가장 정교하게 설계하는지,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해보자.

 

처음엔 방법만 알려주면 알아서 할 줄 알았다.

팀이 10명 내외였을 땐 모든 일이 유연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팀 규모가 50명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일의 흐름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중복된 공유, 엇갈리는 요청, 놓치는 피드백… 커뮤니케이션 관련 이슈업이 늘었다.

“우리가 시스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버틸 수 없다.”

 

 

특히 협업 툴로 선택한 노션 사용법과 일의 요청 방식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사 초기부터 직접 만든 노션 템플릿을 제공하고, 어떻게 정보를 정리하고 공유해야 할지 세세하게 안내했다.

사용법을 몰라서 노션을 안 쓰는 거라 여겼기에 기술적인 교육부터 차근히 시작했다. 사용법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업무도 매끄러워질 거라고 믿었다.

일관된 방식만 잘 정착되면, 커뮤니케이션 리스크도 줄고 생산성은 올라갈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업무 우선순위를 팀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교육을 해도 팀은 그대로였다

시간을 들여 툴 교육도 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템플릿도 만들어뒀다. 하지만 팀원 70%는 여전히 익숙한 방식대로 일했다.

노션의 기초 사용법은 전달했지만, 그 이상으로 학습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존에 쓰던 문서, 기존의 소통 방식에 머무르며, 팀 내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정돈되지 않았다.

사용하는 문서도 각자 다르고,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보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는 방식이 엇갈리고,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한 요청이 반복됐다.

‘일을 위한 일’만 늘어났다.

특히, 새로운 팀원이나 프로젝트 담당자가 투입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정보가 흩어져 있으니,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보를 찾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미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고, 정작 중요한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내가 의도했던 ‘일의 효율화’가 오히려 팀의 피로도로 돌아왔다

 

방식은 강요할 수 없다, 익숙함을 넘게 해야 한다

돌이켜보니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변화를 요구하기만 했지,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도록 유도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뿐,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점에서 이 방식이 더 나은지에 대해 공감하게 만들지 못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각자가 속한 조직과 문화 속에서 형성된 사고 체계의 일부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 공유하는 방식 하나도 그들이 익숙한 문맥과 맥락에 기반한 것인데, 나는 그걸 하루아침에 바꾸길 기대했던 것이다.

새로운 툴과 방식은 곧 새로운 언어였다. 그 언어를 강제로 익히라고 한 것이 너무 높은 진입 장벽이 되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방식 자체를 강요하기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편리한지 왜 필요한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접근법을 아예 바꿔보기로 했다. 

 

도구를 주기보다, 먼저 “만들고 싶은 마음”부터 설계했다

“사람은 관찰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행동을 학습한다.”
– 앨버트 반두라, 사회학습이론

나는 기존의 기술 중심 툴 교육을 경험 중심의 실습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조직 커뮤니케이션, 운영 체계 자체를 일단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설을 세웠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1.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참여하게 만들 것
  2. 직접 해봤을 때 실질적인 효용을 체감하게 만들 것
     

교육 대상자는 세 그룹으로 나눴다:

  • 공격수: 마케팅, 세일즈 등 요청을 자주 하는 사람들
  • 수비수: 운영, 디자인 등 요청을 받는 사람들
  • 팀 리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팀을 조율하는 사람들


 

1. 흥미를 느끼게 만들기

온보딩 세션의 시작은 유쾌해야 했다.

그래서 업무 요청 실습을 (보통은) 터부시되는 이야기인 ‘빵 사오기’ 미션으로 구성했다.

좋아하는 빵 있으세요?
“이제 노션으로 저에게 빵을 사오라고 시켜주세요.”

이 가벼운 설정은 막 입사한 온보딩 인원들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었고,

팀원들은 노션 템플릿을 채우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식에 익숙해졌다.

 

2. 효용을 느끼게 만들기

#공격수 (마케팅/세일즈)

이들은 대개 ‘ASAP’한 요청을 자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명확하지 않은 요청이 결국 자기 리스크가 된다는 걸 체감시키는 데 초점을 뒀다.

  • 예: 요청서에 빵 종류, 이유, 시간, 전달 방식 등을 모호하게 쓰면,

    내가 되묻는다: “글루텐 프리도 괜찮나요?”, “고객용인가요, 본인용인가요?”
     
  • 이 과정을 통해, 모호하게 요청할수록 다시 설명하고, 다시 확인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걸 직접 겪게 만든다.

     

그들은 이 실습을 통해 
‘요청도 결국 내 일의 일부이고, 잘못하면 내 시간을 갉아먹는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수비수 (운영/디자인)



이들은 주로 요청을 받는 사람들이다.
요청이 불명확할 때, 스스로 판단해 진행하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입했다.

또한, 결과물과 피드백은 반드시 한 페이지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했다.

이 방식은 단순한 정리를 넘어서
1) 업무 이력의 맥락 보존,
2) 인수인계의 용이성,
3) 우선순위 파악까지 고려한 구조였다.

그 결과, 팀원들은 ‘명확하게 요청하고, 명확하게 되묻는 것’이 협업의 기준이라는 걸 체감했고,
그 안에서 소통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생겨났다.

 

#팀 리더


리더들은 여러 역할의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조율해야 하는 위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서순 진행과 병렬 진행 업무의 구분’, ‘역할과 타이밍 분배’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래서 세션의 시작은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으세요? 그곳에서 제가 빵을 사오도록 요청해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예를 들며 아래와 같은 업무 형태를 이해한다.

  • ‘항공권 예약 → 탑승 → 도착’은 순차 진행이 필요하고,
  • ‘빵 리서치’, ‘호텔 예약’은 병렬 진행이 가능하다.

 

이 흐름을 직접 구성해보면서

리더들은 병목 없이 일을 나누는 법, 역할과 시점을 어떻게 조율해야 일정이 흘러가는지를 체험한다.

그리고 노션 템플릿을 직접 구성해보며, 자신이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문서로 시각화하고, 구조화하는 경험을 통해

‘회사에서 강제하는 도구’가 아닌 ‘자신의 업무 역량을 강화하는 도구’로서의 가치를 체감하게 되었다.

(나 또한 덕분에 파리에서 도쿄, 케이프타운까지… 안 가본 나라가 없었다.)


 

흥미는 참여를 만들고, 효용은 습관을 만든다


이후 업무 프로세스 세션은 “지루한 온보딩 시간이 아니라 '회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세션”으로 자리잡았다.

입사 초기 팀원들은

“그 빵셔틀 세션 들으셨어요?”

라는 말로 기대감을 나눴고, 세션을 들은 후에는 노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추가 교육을 요청하기도 했다.

세션 이후, 팀원들은 업무 요청 시 글로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처럼 정착되었고, 소통량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 마케팅 팀은 인플루언서 콘텐츠 템플릿
  • 세일즈 팀은 채널/프로모션 템플릿
  • 운영 팀은 업무 매뉴얼이나 대응 프로세스용 템플릿 등을 활용하며 
     

조직 커뮤니케이션에 쓰이는 툴이 실제 업무에 시스템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템플릿을 제작하거나 요청하기도 했고, 나는 그런 요청들을 반영해 세션 퀄리티를 높이는 좋은 사례로 활용했다.

 

최고 속력을 내려면,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든 그 시작은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행동의 변화는 지시나 통제보다 스스로 효용을 느끼고 움직이게 만드는 설계에서 비롯된다.

결국 도구와 시스템은 협업을 돕는 훌륭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을 진짜로 작동하게 만드는 건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언어, 태도, 관점이다.

팀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팀이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스탠다드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정리하며, 어떻게 함께 일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물론 (내가 조직 운영에 적용했던) 이러한 문화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권하고 싶지는 않다. 

시스템은 그 자체보다, ‘적절한 시점’에서 도입될 때 의미가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한 적절한 도입 기준점은 두가지이다. 

  1. 하나는, 대표가 이 문화를 진심으로 믿고, 스스로 실행할 수 있을 때.
  2. 또 하나는, 팀 안에서 “이제는 체계 없이는 안 되겠다”는 피드백이 터져나올 때.
     

아직 팀이 작고, 생존이 우선인 조직이라면 시스템은 때로 ‘브레이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엑셀을 밟아야 할 시점에 브레이크를 잡으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브레이크야말로, 우리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더 멀리 갈 수 있게 해주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속도를 줄이고, 네비게이션을 확인하고, 충돌을 피하며 결국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정적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건 시스템과 구조다.

누구나 구조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지만, 구조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말의 방식에서 시작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감각과 리듬에서 자라난다.

조직의 커뮤니케이션과 시스템을 만든 경험은 단지 PM으로서만 실험한 게 아니라, 앞으로 내가 창업해 만들고 싶은 팀의 문화를 검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경험이 나와 비슷한. 전환의 순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같은 기준을 믿는 사람들과 다시 일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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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잘 읽었습니다.
글 재밌게 읽었네요.
베리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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